[2030 세상/정성은]연애와 비슷한 취업 면접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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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정성은 프리랜서 VJ
정성은 프리랜서 VJ
올해 첫 면접을 보았다. 꿈에 그리던 한 방송국의 시사교양PD. 주위를 둘러보니 서류에 붙은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1년의 경력이 있어야 하는, 소위 ‘중고 신입’을 뽑는 경력직 공채였기 때문이다.

PD를 꿈꾸는 친구들은 진로에 있어 빠른 결정을 내려야 했다. 1년에 한 번 있는 방송국 공채에 다걸기(올인)를 해 1000 대 1의 경쟁률을 뚫을 것이냐, 아니면 외주 제작사 혹은 방송국의 파견직 조연출로 시작할 것이냐.

결국엔 같은 일을 할 것이다. 지금의 방송국은 동일한 프로그램을 방송국과 외주 제작사가 돌아가며 만드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조연출이라도 누구는 한 달에 100만 원을 받고, 누구는 서너 배의 월급을 받는다. 똑같은 일을 하지만 다른 대우를 받고, 다른 미래를 보장받는다. “자, 그래서 뭘 선택할래?”라고 물으면 현장으로 달려갈 채비를 하던 청년들도 다시 돌아와 책상 앞에 앉게 된다. 몇 년이 될지 모르는 시간의 시작이다.

하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 시험을 준비한 청년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자넨 졸업하고 뭐 했나, 아무것도 한 게 없네”라는 면접관들의 질문과 줄어드는 신입 공채의 문, 그리고 난무하는 ‘1년 11개월’의 계약직 채용이다. 그 공부를 해낼 자신이 없던 나는, 졸업 후 도망치듯 외주 제작사의 문을 두드렸고, 그 이력 한 줄로 오랫동안 시사교양PD만을 꿈꾸며 공부한 친구들을 제치고 면접의 기회를 얻었다.

급하게 꾸려진 면접 스터디. 각자의 경험담과 면접 팁을 얘기하는데 한 지원자가 친구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기자 지망생이던 친구는 누가 봐도 기자 하면 참 잘할 것 같은, 많은 걸 갖춘 친구였다고 했다. 하지만 유독 최종 면접에만 가면 떨어졌다고. 그래서 마지막 탈락 통보 땐 관계자를 찾아가 따졌다고 한다. 도대체 왜 떨어뜨렸는지 이유라도 가르쳐 달라고. 그러자 관계자는 솔직하게 말했다고 한다. “그쪽이 너무 절실해 보여서 그 점이….” 아니, 뭐? 너무 절실해 보여서 떨어뜨리다니? 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의민지 알 것 같았다. 면접은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연애와 비슷했다. 너무 간절하게 상대를 원하면 망치기 쉬운 연애처럼, 면접도 그런 게 아닐까? “너 아니어도 돼” 하는 긴장감도 조금은 미덕일까. 그리고 다음 해, 친구는 합격했다. 여기서 얻은 교훈으로, 우리들은 딱 이 정도의 마음을 가지고 면접장에 가기로 했다. “나 놓치면 누가 손해지요? 네가 손해지요!”

면접은 순조로웠다. 막히는 대화도 없었고, 난감한 질문도 없었다. 사상 검증도 없었다. 지원자들은 연령대도, 지원 동기도, 경력도 엇비슷해 보였다. 차이가 있다면 누구는 떨고 누구는 안 떨었다는 것 정도. 이 중 누군가는 붙고 누군가는 떨어질 것이다. 그 판단은 한 장의 이력서와 15분 정도의 짧은 대화, 면접관들의 ‘느낌적인 느낌’으로 결정될 것이다. 이 순간만을 바라 왔지만,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오랫동안 꿈꾸던 나의 ‘업’이란 것이, 생판 모르는, 오늘 처음 본 어른들에 의해 결정되다니.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회사에서 준 면접비 3만 원으로 혼자 밥을 먹으며 다짐했다. 여기서 붙든 떨어지든, 나의 인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아니, 달라지지 않을 수 있게 한번 방법을 찾아보자고. 스물아홉 살, 너무 늦은 게 아닐까 싶지만. 이곳은 헬조선이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내 삶의 방법론이 날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고. 찾아낸다. 그것을! 더 이상 인사팀 관계자들 손에만 내 운명을 맡길 순 ‘없숴욧’!!!
  
정성은 프리랜서 VJ
#취업면접#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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