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치기-끌망… 연근해 물고기 씨마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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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쓸이 불법조업에 어민들 한숨

 26일 밤 전남 여수 앞바다에 선박 두 척이 나타났다. 선박들은 길이 500m가량의 그물을 끌고 다니며 고기를 잡았다. 이른바 불법 ‘미니 권현망’ 조업이다. 촘촘한 그물로 작은 치어까지 싹쓸이하기 때문에 허용되지 않는 방식이다.

 최근 육지와 가까운 바다에서 일부 국내 어선들의 불법 조업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27일 전남 여수시 국동항에서 만난 김광수 한국낭장망협회장(60)은 “싹쓸이 불법 조업이 10년만 지속되면 한국 바다에서 물고기 씨가 말라 버릴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장 연근해에서 작업하는 영세 어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이른바 낭장망 어민들이다. 낭장망은 해안선에서 2∼3km 떨어진 해상에 고정형 그물을 설치해 작은 물고기를 잡는 것이다. 낭장망 어민들은 올 들어 급증한 기업형 불법 조업 탓에 어획량이 급감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어촌에서는 견디다 못해 생업을 포기하고 떠나는 어민도 속출하고 있다.

 김 회장은 “전남 여수와 고흥에서만 영세 어민들이 연간 5∼10명씩 어촌을 떠나 도시 근로자가 되고 있다”며 “불법 조업이 전국 어촌마을을 황폐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민들은 “큰 물고기의 먹이인 멸치와 새우까지 모기장 같은 그물로 싹쓸이하면 우리 바다에서 물고기가 사라질 것”이라며 “우리도 중국 어선처럼 남의 바다에서 ‘도둑 조업’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고 있다.

 과거 국내 어선의 불법 조업은 대부분 금지구역 위반이었다. 최근에는 그물 등 장비를 개조하거나 선박 크기 및 구역별로 정해놓은 조업 방식을 임의로 바꾸는 수법이 많다. 넓은 갯벌이 있는 경기 지역 앞바다에서는 갈퀴 대신 고압분사기를 이용한 불법 행위가 성행하고 있다. 고압분사기를 쏴 갯벌을 초토화한 뒤 개불이나 조개를 잡는 일명 ‘펌프망’이다.

 남해에서는 기계로 바다 수면을 때려 고기를 모는 일명 ‘뻥치기 조업’이 극성이다. 원래는 돌이나 나무만 사용해야 한다. 경북 동해안에서는 일명 ‘이중 불법조업 작전’이 등장했다. 어선 한 척이 불빛을 밝혀 오징어를 모으면 대형 어선이 싹쓸이하는 것이다. 또 부산 근해에서는 조류에 그물을 표류시키는 방식 대신 끌고 다니는 일명 ‘끌망 조업’이 기승을 부린다. 대부분 사용이 금지된 조업 방식이다.

 어민들은 이런 형태의 불법 조업을 하는 기업형 선박이 서해와 남해에만 300여 척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어민들은 5, 6년 전부터 불법 조업이 늘어나다가 2014년 해경 해체 후 급증했다는 의견이다. 해경의 자체 수사 능력이 약화되고 중국 어선에 단속이 집중된 탓으로 보인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해경은 연간 불법 조업 7000∼8000건을 단속했다. 그러나 2014년 1292건, 2015년 3127건, 올해는 11월까지 3802건에 머물고 있다.

 단속돼도 대부분 벌금형에 그쳐 불법 조업이 근절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어민들 사이에서는 “법을 지키면 물고기 한 주먹, 법을 어기면 물고기 한 가마니를 잡는다”는 농담까지 돌고 있다. 올해 고등어와 멸치 참조기 꽃게 오징어 등 공식 집계된 연근해 어업 생산량이 처음으로 100만 t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신갑년 한국수산자원보존회장(79)은 “불법 조업으로 수천만 원의 수입을 올리는데 적발됐을 때 벌금은 100만∼300만 원에 불과하다”며 “느슨한 단속과 처벌이 우리 바다를 황폐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여수=이형주 peneye09@donga.com / 정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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