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준수” 외치는 노동硏조차 인턴에 최저임금 안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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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251곳 분석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야근했는데 최저임금 못 받았습니다. 공공기관에서조차 이런 대접을 받으니 슬펐죠.”

 올해 초 한 공공기관에서 인턴을 했던 대학생 김모 씨(26)는 “공공기관이라 더욱 신뢰했는데 첫 달 월급을 받고는 황당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본보와 이종구 새누리당 의원이 12일 공공기관 251곳을 대상으로 인턴 임금을 분석한 결과 최저임금(시급 6030원)보다 적게 주거나 유급휴일 적용을 정식 직원과 차별한 공공기관이 아직도 12곳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법과 올 2월부터 시행된 ‘일경험 수련생(인턴)의 법적 지위 판단과 근로조건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간제 근로자와 사실상 동일한 일을 하는 인턴에게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주면 엄연한 불법에 해당한다. 신분을 이유로 인턴에게 합리적 근거 없이 차별을 하는 것도 시정사안이다.

 한국노동연구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강원대병원, 세종학당재단 등 4곳은 최저임금법을 위반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최저임금 미준수 개선 방안 등을 내놓는 등 노동정책을 개발하는 연구기관이면서도 인턴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았다. 가장 낮은 시급(5742원)을 책정한 세종학당재단은 다른 기관보다 6만여 원 적은 월급을 줬다. 1년을 인턴으로 일했다고 하면 최저임금법에서 규정한 것보다 약 72만 원 적게 받는 셈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일급 4만9000원에 유급일 25일을 곱하는 방식으로 고졸 인턴에게 매달 122만5000원을 줬다. 하지만 유급일이 25일인 달은 2월과 4월밖에 없다. 나머지 10개월에 대해 유급일을 26일로 계산하면 최저임금보다 적은 5861원이 나온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본보가 취재에 나서자 뒤늦게 고졸 인턴에게 미지급분 20여만 원을 소급해 정산했다고 밝혔다.

 한국법제연구원, 한국마사회 등 공공기관 8곳은 유급휴일을 인턴들에게 적게 준 것으로 드러났다. 근로기준법 제55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일주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법제연구소 등은 이 조항을 적용하면서 직원에게는 2일, 같은 일을 하는 기간제 근로자와 인턴에게는 1일의 유급휴가를 줬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법(기간제법)’은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 근로자와 비교해 ‘임금과 기타 근로조건 등’에서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유급휴일과 관련한 차별은 기타 근로조건의 차별에 해당된다.

 이번에 불법 또는 탈법 사례가 확인된 공공기관 12곳 외에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취재가 시작되자 직원과 인턴의 유급일 차이를 없앴다. 일반적으로 인턴에게 유급휴일을 덜 인정함으로써 줄이는 비용은 인턴 한 명당 매달 20만 원 정도로 조직 전체로 보면 월 1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최저임금만 받는 인턴에게 이 비용조차 아끼려다 보니 자연스레 ‘청년인턴 착취’라는 비판이 나온다. 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한국남부발전 등 26곳은 담당자들이 인턴에게 지급하는 시간당 급여 계산 방식조차 제대로 몰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런데도 공공기관은 애매한 ‘공공기관 인력운영 가이드라인’을 내세우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서 내놓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임금을 책정할 때는 시중 노임 수준, 업무 난이도, 기관별 예산 상황 등을 감안해 기관별로 자율성을 주고 있다. 이렇다 보니 사실상 기간제 근로자와 같은 일을 시키면서도 ‘견습생’ 혹은 ‘수습기간’이라는 이유를 붙여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주는 기관이 발생하는 것이다.

 인턴을 단순한 ‘비정규 근로자’나 ‘임시직’이라고 여기는 국내와 달리 선진국에서는 관심 직무를 경험하고 익힌다는 인턴의 본래 취지를 살려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는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이 협력해 현장실습 모델을 운영한다. 인턴 기간을 최대 6개월로 제한하고 2개월 이상 일한 인턴에 대해서는 임금의 최저한도가 사회보장급여의 15% 이상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독일은 인턴이 미래 직업을 찾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는 규정을 따로 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근로기준법과 청년인턴 고용에 대한 인식 개선과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소영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조달계약에서 최저임금 미지급 공공기관을 배제하는 등 지금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지영 jjy2011@donga.com·김단비·한기재 기자
#최저임금#공공기업#노동자#미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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