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美합동단속반과 협력해 성매매업소 업주-광고업자 검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9일 20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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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밖에 안 남았는데….’

13일 오후 6시 서울 금천구의 한 아파트단지. 미국 성매매 업소의 인터넷 광고를 대행해준 김모 씨(38)를 검거하기 위해 잠복근무하던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이충희 팀장과 수사관들의 마음은 초조해졌다. 평소 거의 외출을 하지 않던 김 씨는 이날 경찰이 잠복한 지 4시간이 다 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와 미국 검찰, 국토안보부, 국세청, 국무부, 우편물검역소 등 5개 정부기관으로 구성된 합동단속반은 미국 뉴욕, 뉴저지 등에서 성매매 업소를 운영한 한인 업주와 성매매 여성, 인터넷 광고업자를 붙잡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손발을 맞춰왔다. 국제범죄수사대는 한국어로 된 증거 분석을 돕기 위해 미국에 3명의 수사관을 파견하기도 했다. 한미 수사당국은 용의자들이 모바일 메신저로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동시에 검거하지 않으면 단속정보가 새어나갈 수 있어서였다. 고심 끝에 정한 합동 검거작전 시각은 이날 오후 7시(미국 시간 오전 6시)였다.

오후 6시 30분경 휴대전화 기지국 위치상 서울 마포구에 있던 김 씨가 남쪽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 방향이었다. 경찰은 2014년 3월부터 지금까지 미국 성매매 업소 29곳의 인터넷 광고를 대행해준 혐의(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김 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상태였다.

같은 시각 미국에 파견된 국제범죄수사대 소속 강지윤 경사는 미국 합동단속반과 함께 뉴저지 주에 사는 김 씨의 어머니 함모 씨(63)의 집을 수색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함 씨는 아들을 대신해 매주 성매매 업소를 돌며 1곳당 75~150달러(약 86만~172만 원)의 광고료를 수금해온 혐의였다. 강 경사는 한국 상황을 묻는 미국 합동단속반 관계자에게 “문제없다”고 답했지만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김 씨가 늦게까지 나타나지 않으면 수개월 동안 준비한 합동 검거작전이 무산될 수도 있었다.

오후 6시 50분경 김 씨가 드디어 자신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현관 앞에서 체포된 김 씨는 처음에는 태연한 표정을 짓다가 영장 내용을 읽어주자 뒤늦게 혐의를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같은 시각 미국 합동단속반은 김 씨의 어머니인 함 씨와 성매매 한인 업주 5명, 성매매 여성 40명, 광고업자 2명 등 48명을 검거했다. 함 씨의 집에서는 성매매 업소로부터 받은 것으로 보이는 여러 개의 돈뭉치가 발견됐다. 성매매 여성은 20, 30대 한국인으로 대다수가 90일 동안 체류할 수 있는 관광비자로 미국에 건너간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경찰이 해외 수사당국과 정보를 공유하고 현지에 수사관을 파견해 합동 검거작전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미국 수사당국은 현지 성매매 업소의 광고 사이트 서버가 한국에 있고 김 씨 등 피의자 일부가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한국 경찰에 먼저 공조수사를 요청했다. 이렇게 시작된 공조수사는 10개월 만에 결실을 맺었다.

국제범죄수사대 관계자는 “해외 수사당국과 공조한 첫 합동 검거작전이 성과를 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 씨를 구속한 경찰은 한인 성매매 여성들이 국내로 송환되는 대로 사법처리하는 한편 이들을 현지에 내보낸 브로커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14일 오전 1시 15분경 경찰이 압수한 김 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미국 성매매 업소 관계자가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메시지였다. 다급했는지 띄어쓰기도 엉망이었다. ‘지금 맨해튼 다쳤어요. 광고 전부 내려주세요.’ 검거 직전까지 광고주와 대화창구로 쓰던 모바일 메신저 채팅창은 여기서 끝났다.

김호경기자 whalefish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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