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유 엄마 숨통이 트인 건 지유가 두 돌이 되던 무렵이었다. 아이가 ‘물~’하면 물을 달라는 건지, 물이 차갑다는 건지, 물을 마시기 싫다는 건지 알기 위해 엄마는 아이에게 거듭 물어야 했다.
그러던 지유가 24개월을 넘어서면서부터 ‘물 줘’ ‘물 차워’하며 짧지만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지유와 대화가 된다고 느낄 때마다 엄마는 ‘처음부터 이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엄마 욕심이다. 아이들은 뇌발달 단계에 따라 차근차근 말을 배우기 때문이다.
아이는 태어날 때 모든 언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하지만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고 집중하는 능력도 갖고 태어난다. 뇌는 적절한 자극을 받으면서 발달하는데, 아이는 끊임없이 들려오는 가족의, 주변의 말소리를 들으며 생후 12개월 정도까지 모국어 회로를 발달시킨다. 말을 하지는 못해도 말귀는 다 알아듣는 영아의 신통함은 모국어 회로가 부지런히 발달하는 중이라는 증거이다.
돌이 지나면서부터 아이는 ‘음마(엄마), 무무(물)’처럼 단어로 의사소통한다. 엄마만 알아들을 수 있던 옹알이를 넘어서 언어다운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 아이의 뇌에서는 말을 알아듣는 일을 담당하는 베르니케 영역이 부지런히 발달하며 단어의 소리와 단어가 나타내는 사람, 장소, 사물 사이의 관련성을 저장한다. 아이가 어색하나마 문장을 말하기 시작한다면 문법이 만드는 일을 담당하는 브로카 영역이 발달하고 있다는 신호이다. ‘내일 집에 갔어요’ ‘할머니 밥 먹어’처럼 아이들이 시제나 존칭을 어색하게 말하는 건 아직 브로카 영역이 발달 중이기 때문이다. 만3세를 전후해 발달하기 시작하는 브로카 영역은 만6세까지 발달한다. 이처럼 아이의 뇌는 잘 듣고 이해하는 능력을 먼저 발달시킨 후 표현하게 된다. 따라서 아이의 언어 발달을 돕고 싶다면 우선 다양한 언어를 많이 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에게선 좌뇌가 언어를 담당한다. 이해 담당 베르니케 영역과 표현 담당 브로카 영역도 좌뇌이다. 하지만 우뇌가 담당하는 말의 운율과 같은 감성적인 부분도 의사소통에서는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이다. 아이에게 애정과 관심없이 뇌발달 시기에 맞춰 온갖 소리와 단어를 들려준다 해도 소용 없다. 엄마와의 스킨십이나 상호작용 없이 DVD나 TV로 소리자극을 준다고 해서 아이의 언어 뇌가 잘 발달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언어 발달 과정에서는 상호작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선 아이에게는 기계음이 아닌 육성을, 마주 안은 채 얼굴을 보여주며 들려주어야 한다. 아기의 뇌에는 거울 뉴런이 있어 어른이 말하는 소리와 입 모양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마주 한 채 얼굴을 보여주며 말해야 이 뉴런을 활성화 시킬 수 있다.
자기공명영상(fMRI)로 아이의 뇌를 촬영해 보면, 낯선 남자가 말을 걸었을 때와는 달리 엄마가 말을 걸면 아이의 뇌가 꽃을 피우듯 활성화된다. 엄마의 상호작용은 언어를 배우는 데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언어지능에도 차이를 유발한다. 한솔교육연구원에서 18개월 영아의 어머니의 반응성 수준을 좋은 집단과 안 좋은 집단으로 나눠 42개월이 되었을 때 지능을 비교해본 결과, 상호작용이 좋은 집단의 언어성 지능이 10점 이상 차이가 났다. 48개월에 다중지능을 비교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상호작용만큼 중요한 것은 읽기 경험이다. 읽기는 뇌의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무언가를 읽을 때는 뇌의 여러 영역이 동시에 활성화되는데, 놀라운 것은 읽기가 끝난 후 며칠이 지나도 읽기와 관련된 영역들이 여전히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읽을 때보다 들을 때 더 많은 영역이 활성화된다. 또한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마치 보는 것처럼 뇌의 시각 영역까지 활성화된다.
말 잘 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남다른 표현을 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아이의 언어 발달 단계에 알맞은 방법으로 언어 감각을 자극해줘야 한다. 한 단어로 말하는 2세라면 사물의 이름을 노래나 운율에 담아 들려주며 호기심을 키워주자. 간단한 문장으로 말하는 3세라면 과학적이고 입체적인 놀이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자. 글자와 책에 관심을 보이는 4세라면 이야기책으로 한글을 쉽게 익히고 책 읽는 재미도 느끼게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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