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은 실종신고도 못해… ‘학업중단 학생 통계’로만 남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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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학대아동]
구체적 방지대책 세워야

“A 양은 정원 외로 학적관리 되고 있습니다.”(교육부)

“A 양의 친권자만 실종 신고가 가능합니다.”(경찰)

“A 양이 사는 곳은 빈집이에요.”(주민센터)

3년 넘게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감금과 폭행을 당하다 탈출한 A 양(11)을 더 일찍 지옥에서 구출해 내지 못한 것은 관련 당국들의 허술한 관리 시스템과 행정편의주의, 시민의 신고의식 부재가 낳은 복합적인 결과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허술한 관리와 권한 없는 행정절차

A 양은 교육부의 ‘2012년 학업중단 학생 통계’에는 들어있었다. 하지만 이후 2013년 및 2014년 통계에서는 빠졌다. 이는 교육부가 매년 4월 1일 취합하는 학업중단 통계가 전년도 3월 1일부터 당해 2월 28일 사이에 학교를 그만둔 경우에 한해 한 번만 집계되기 때문이다. 이후 몇 년간 계속 학교를 나오지 않아도 학업중단 학생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교육부는 이와 별도로 정원 외 통계를 따로 잡는다. 각 학교는 정당한 이유 없이 3개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학생에 대해서는 장기 결석에 따른 학업 유예자로 결정한 뒤 ‘정원 외’로 학적관리를 한다. 교육부는 이 통계 역시 발생 시점에 한 번만 집계한다.

이처럼 학업 중단과 장기 결석 모두 누적 통계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 시점에 한 차례만 통계로 잡기 때문에 A 양처럼 사각지대에 놓이는 아이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 결석 아동에 대한 대처 절차는 마련돼 있음에도 학교나 교사에게 실질적인 권한이 없어 실태 파악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A 양의 경우 학교 측이 관련 절차에 따라 일을 하기는 했다. 2012년 2학기 A 양이 장기간 학교를 나오지 않자 담임교사가 세 차례 가정방문을 했다. 하지만 “A 양 가족이 이사갔다”는 이웃들의 말에 발걸음을 돌렸다. 담임교사는 경찰에 실종 신고가 가능한지 문의했지만 친권자나 사회복지사만 신고를 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신고조차 할 수 없었다. 주민센터에도 문의했지만 “빈집”이라는 통보만 받았다.

결국 학교는 A 양을 ‘2012년 학업중단자’로 보고하고, 이후 장기 결석에 따른 학업 유예자로 분류해 학교의 나이스 시스템에 정원 외 학적관리자로 남겨둔 것이 마지막 조치였다. 의무교육을 받아야 하는 초등학생이 학교 측에 아무런 이유도 알리지 않고 학업을 중단했지만 교육당국은 이유를 끝까지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규정에 따라 장기 결석으로 인한 유예자로 처리하는 것으로 그쳤다. 교육당국이 장기 결석자인 A 양의 상황을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는 규정도 무시됐다.

A 양의 경우처럼 학년이 바뀌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이후 담임교사도 아이의 존재를 모르는 상태가 돼버린다. 법령상 정원 외 학적관리자는 학교장을 거쳐 시도 교육감에게 보고를 하도록 돼 있지만, 형식적인 보고 이후 실질적으로 이뤄지는 후속 대책은 없다. 아이는 사라지고, 사이버상의 정보로만 남는 것이다.

○ “내 일이 아닌데” 현저하게 낮은 신고

대학생 정모 씨(24)는 “과외를 하던 10세 된 여자 아이를 엄마가 시험을 못 봤다는 이유로 심하게 때리고 학대하는 것을 봤다”며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남의 가정일이라는 생각에 신고해야겠다는 생각까진 못했다”고 말했다.

주부 권지현 씨(39)도 옆집 아이가 한겨울에 속옷만 입은 채 쫓겨나 현관문 밖에서 10여 분씩 우는 모습을 봤음에도 “부모의 훈육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라는 생각만 했을 뿐 신고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아동학대 신고 비율은 외국에 비해 턱없이 낮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아동학대 발견율은 우리나라가 아동 1000명당 1명인 반면 미국은 1000명당 9명꼴이다. 실제 학대 발생률에 차이가 있다기보다는 신고 건수가 9분의 1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현재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아동학대를 크게 신체, 정서, 성 학대와 방임 등 4가지로 구분하고 구체적인 예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아동학대 상황을 발견했을 때 주변인이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

최윤용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대리는 “우리 눈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면 대부분 학대에 해당한다. 신고를 해도 교육을 받는 정도의 처분을 받으니 적극적으로 개입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으로 보기 힘들다.

이 때문에 아동학대에 대한 신고 의무를 법적으로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우리나라 역시 교사와 의료진 등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가 아동학대를 보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신고하지 않을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평이다. 미국의 경우 정당한 이유 없이 신고를 하지 않으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만 달러(약 12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몇 개 주에서는 2번 이상 신고를 누락하면 중범죄로 분류하기도 한다.

아동학대나 실종과 관련한 권한 및 법령, 담당자 등이 여기저기 산재된 것도 문제다. 아동복지법은 보건복지부, 아동학대처벌에 관한 특례법은 법무부, 학교 장기결석자 관리에 대한 규정은 교육부 및 교육청이 제각각 맡고 있어 개별 사안을 총괄할 기구가 없다.

이지은 smiley@donga.com·유덕영·김수연 기자
#실종신고#담임교사#아동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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