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효과적인 금연정책은 담뱃갑 경고그림-광고 규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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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아직 못 끊으셨나요]<1>청소년 흡연부터 막아라.
보건의료 전문가 20인 설문

“담뱃값 인상으로 담배 규제 정책이 완성됐다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여전히 한국은 담배 규제 수준이 약하다.”(서홍관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

“담뱃값 인상과 금연구역 확대 같은 조치는 시간이 지나면서 무감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효과가 오래가는 담배 규제 정책이 필요하다.”(백유진 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연초부터 △담뱃값 인상 △음식점 내 흡연 전면 금지 △금연치료 건강보험 적용 등 강도 높은 담배 규제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국내 보건의료 전문가 10명 중 7명은 여전히 한국의 담배 규제 정책이 국제적인 수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

20일 동아일보는 담뱃값 인상 등 올해부터 정부가 추진 중인 담배 규제 정책들이 ‘시행 100일’을 넘어선 것을 계기로 보건의료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보건의료 전문가 14명(70%)이 한국의 담배 규제 정책이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가입국들과 비교했을 때 ‘약하다’고 답했다. ‘강하다’고 답한 전문가는 없었고, 6명은 ‘보통’이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가장 필요한 담배 규제 정책(복수응답)으로 ‘담뱃갑 경고그림 삽입’(85%)을 꼽았다. 다음으로는 △담뱃값 추가 인상(75%) △담배 광고 규제(45%) △전자담배 규제(35%) 등을 뽑았다.

○ 경고그림이 흡연 막는 강력한 수단

전문가들이 국내 담배 규제 수준에 ‘짠 점수’를 준 이유는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꼽은 ‘담뱃갑 경고그림 삽입’ 조치가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폐암과 후두암 등 담배로 인해 앓을 수 있는 심각한 질환의 모습을 담뱃갑에 삽입하는 담뱃갑 경고그림은 가장 강력한 담배 규제 정책으로 꼽힌다. ‘세련된 담뱃갑 디자인’으로 인해 흡연에 대한 호기심과 욕구를 느끼는 경우가 많은 청소년과 20대 등 젊은 세대의 흡연을 막는 데 특히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선 담뱃갑의 앞면과 뒷면에 각 면적의 30% 이상을 경고그림으로, 경고문구까지 포함해선 면적의 50% 이상을 채워야 한다는 기준만 마련돼 있고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고 있다.

이성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글로벌 담배 회사들이 마케팅 전략의 중심을 청소년 및 젊은층 고객 확보에 맞추고 있다는 게 내부 자료 등을 통해 많이 나타났다”며 “더욱 적극적으로 담뱃갑에 ‘마케팅용 디자인’ 대신 ‘경고그림’을 담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담배 규제 정책은 젊은 세대에 맞춰야

실제로 최근 담배 규제 정책을 강화한 나라들 중 상당수가 청소년을 중심으로 젊은 세대의 흡연에 대한 관심을 줄인다는 취지에서 담뱃갑의 ‘마케팅 도구화 막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호주의 경우 2011년부터 담뱃갑 경고그림 삽입뿐 아니라 색상까지 짙은 올리브색으로 통일시켰다. 2013년부터 담뱃갑 경고그림을 도입한 아일랜드도 내년부터 젊은 세대의 흡연 유인 감소를 목표로 담뱃갑 규제를 더욱 강화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담뱃갑에 상표 표기를 금지하고, 제품명을 지정된 위치에 정해진 크기로만 표기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청소년 등 젊은 세대의 흡연에 대한 관심을 줄이기 위해선 담배 광고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한국의 경우 편의점을 중심으로 담배를 판매하는 장소에서 담배 광고와 제품(담배)의 노출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가 한국금연운동협의회를 통해 서울 지역 초중고교 300m 내에 위치한 편의점 969개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62.5%(606개)의 편의점에서 담배 광고가 외부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게 배치돼 있었다. 편의점 밖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게 담배를 진열한 곳도 59.3%(575개)나 됐다.

담뱃갑 못지않게 세련되고 멋있는 디자인과 모델들을 담고 있는 담배 광고는 청소년들에게 ‘흡연은 멋있는 행동’이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정유석 단국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많은 청소년 흡연자들이 상담 과정에서 ‘군것질하러 편의점 갔다가 광고를 보고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는 식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고 말했다.

○ 규제 효과 유지 위해 추가 규제 필요


일각에서는 담배 규제로 인해 올해 초부터 나타나고 있는 담배 반출량(국내 담배 제조사와 수입업체들이 국내 담배 판매 도·소매점들에게 공급한 양) 감소 등 긍정적인 효과를 이어가기 위해서도 담뱃갑 경고그림 삽입 같은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복지부에 따르면 1분기(1∼3월) 담배 반출량은 5억1900만 갑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44.2% 감소했다. 그러나 1월 1억5900만 갑이었던 담배 반출량은 2월 1억6000만 갑, 지난달 2억 갑을 기록하는 등 계속 늘고 있다.

서 회장은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을 비롯해 담배 광고 및 진열과 관련된 규제 등이 계속 추진되어야 담배 규제 정책으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가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설문에 답해주신 전문가(가나다순) ::


강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김성렬 순천향대 의대 교수 김현숙 신흥대 간호대 교수 명승권 국립암센터 가정의학과 교수 박순우 대구가톨릭대 의대 교수 백유진 한림대 의대 교수 서홍관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 신호상 공주대 환경교육과 교수 이기영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이성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부연구위원 이철민 서울대 의대 교수 임민경 국립암센터 암예방사업 부장 정영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생활습관병연구센터장 정유석 단국대 의대 교수 조문준 대한폐암학회 회장 조성일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조홍준 대한금연학회 회장 지선하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 함상근 한전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홍경수 한국건강증진재단 건강증진실장

이세형 turtle@donga.com·김수연 기자
#보건의료#금연#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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