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영사 요구로 가짜 확인서에 공증”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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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사건 증거조작 파문]
선양영사관 공증담당자 檢 진술… 檢, 대공수사국↔영사관 전문 확보
李영사 “본부지시로 어쩔수 없었다”… 지휘라인 개입규명에 수사력 집중
유우성씨 12일 참고인으로 조사

이인철 주(駐)선양총영사관 영사가 국가정보원 대공수사팀의 요구로 ‘위장탈북자’ 유우성 씨(34)의 북한 출입경기록에 대한 가짜 확인서를 공증했으며, 이 과정에서 “중국으로부터 직접 받은 문서가 아니어서 공증을 해주기 어렵다”는 영사관 공증 업무 담당자에게 공증을 강요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서울시 간첩 사건 증거조작 의혹 수사팀(팀장 윤갑근 검사장)은 이 영사를 사문서위조행사죄 등의 혐의로 입건했으며, 이 영사에게 위조확인서를 요구한 대공수사국 간부를 확인하기 위해 10일 압수수색 때 대공수사국과 주선양총영사관 사이에 오간 팩스 전문을 확보했다. 검찰은 국정원 협조자인 조선족 김모 씨(61)에게서 가짜 확인서를 구한 국정원 블랙요원 김모 과장과 이 영사에게 가짜확인서 발급을 지시한 간부가 누군지 집중 수사하고 있다.

○ “이 영사, 가짜 알면서도 ‘자필 서명’”


간첩 혐의로 기소된 유 씨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국정원 대공수사팀에는 비상이 걸렸다. 대공수사국 요원이던 이 영사는 지난해 8월 중국에 급파됐다. 이 영사는 공식 루트로 유 씨의 출입경기록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자 김 과장의 비선인 조선족 김 씨를 이용해 문서 입수에 나선 게 ‘비극의 시작’이 됐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검찰 수사 결과 이 영사는 싼허(三合)변방검사참 명의로 발행된 ‘정황설명서에 대한 회신’이 가짜인지 알면서도 자필로 “유 씨 측이 제출한 서류가 가짜다”라는 확인서에 서명한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 유 씨의 다른 출입경 관련 증빙 서류에도 공증을 강요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주선양총영사관의 또 다른 영사 A 씨는 검찰 조사에서 “싼허변방검사참 문서는 중국 측으로부터 직접 받은 문서가 아니기 때문에 공증 도장을 찍어주기 어려웠는데, 이 영사가 계속 요구해 공증을 해줬다”고 진술했다.

이 영사도 “증거 확보에 어려움이 있고 협력자 등을 재촉하고 있는 중이라는 취지로 국정원에 중간보고를 했다” “본부 측의 거듭된 지시로 어쩔 수 없이 가짜 확인서를 보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 “외교 전문, 검찰이 원하던 핵심 자료”

검찰이 10일 국정원 압수수색에 나선 것도 이 영사와 관련한 중요한 단서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심혈을 기울여 이 영사와 국정원 대공수사국이 주고받은 전문을 ‘특정’해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았고 간첩수사보고서, 외교전문 내용 등을 확보했다. 증거 위조가 일어났을 당시 상황을 복원하기 위해서다.

공안 당국 관계자는 “이들 자료를 통해 이 영사가 유 씨 출입경기록과 관련해 어떤 자료가 필요하다고 했고, 대공수사국이 어떤 지휘를 내렸는지 파악할 수 있다”며 “검찰이 원하던 핵심 자료”라고 설명했다. 전문 원본은 ‘비밀’로 분류돼 압수할 수 없자 검찰은 일일이 열람한 뒤 출력했고, 이 때문에 압수수색을 마치는 데 무려 8시간이 걸렸다. 검찰은 외교통상부 전문 수·발신 내용과 압수한 전문 내용을 대조해 진위를 가려내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지휘라인의 개입 사실이 드러날 경우 국정원 2차장 산하 대공수사국 관계자들이 검찰에 줄소환될 것으로 보인다. 또 검찰이 확보한 일부 하드디스크에서 e메일 송수신 내용이 드러날 때에는 국정원의 수사를 지휘하고 재판에 관여한 검찰 측의 개입 여부와 과실도 드러날 수 있다.

○ “단 1명만 연루돼도 ‘남재준 국정원’ 치명타”

국정원 직원이 증거 조작을 알면서도 묵인했거나 적극적으로 지시한 정황이 드러나 형사입건될 경우 ‘남재준 원장 체제’의 국정원은 치명타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김 씨의 위조를 몰랐다는 입장을 밝히며 연루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정원 직원의 혐의가 구체적으로 밝혀져 입건되는 순간 남 원장이 용퇴를 고려해야 할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편 검찰은 피고인 유 씨를 12일 오후 2시 참고인으로 불러 증거조작 의혹에 대한 입장을 직접 들을 예정이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서울시 간첩 사건 증거조작#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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