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와 짜고 가짜 매출채권 담보… 4년간 13개 금융사 속여
경찰, KT ENS 부장 긴급 체포
KT 자회사의 간부직원이 협력업체와 짜고 허위로 서류를 꾸며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에서 3000억 원을 부당 대출 받아 가로챈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경찰과 금융감독원은 부당 대출 경위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금융감독원은 KT 자회사인 KT ENS의 부장급 직원 김모 씨(51)가 2010년부터 가짜 매출채권을 발행해 이를 담보로 13개 금융사로부터 모두 3000억 원(잔액 기준)의 허위 대출을 받은 혐의를 포착하고 관련자들을 수사기관에 고발했다고 6일 밝혔다. KT ENS는 유·무선 네트워크의 설계·구축·운용 업무를 하는 회사로 53개 KT 계열사 중 매출액 기준으로 10위 안에 든다.
금감원에 따르면 김 씨는 협력업체들과 공모해 KT ENS가 통신장비 등을 납품받은 것처럼 가짜로 세금계산서와 매출확인서를 만들었다. 이들은 페이퍼 컴퍼니인 자산유동화회사(SPC)를 통해 이 서류들을 근거로 매출채권을 발행했다. 이어 이 채권을 담보로 2010년부터 올 1월까지 하나은행 KB국민은행 NH농협은행 등 3개 은행에서 2200억 원, 10개 저축은행으로부터 800억 원을 대출받았다. 금감원은 대출금 중 일부가 기존 대출금을 갚는 ‘돌려 막기’에 쓰인 것을 확인하고 대출로 챙긴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KT ENS 측은 이날 “(은행들이 담보로 보유한) 매출채권을 발행한 적이 없고 지급 보증한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씨가 제시한 대출 서류에는 KT ENS의 인감이 찍힌 것으로 금감원 조사결과 확인됐다. 피해를 입은 한 은행 관계자는 “KT ENS 측에 관련 서류 발행 여부와 만기 날짜 등을 확인한 뒤 대출을 내줬다. 범인과 은행 직원과의 연루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인감, 채권 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KT ENS의 허술한 내부 통제가 사고를 불렀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2월에는 KT 본사 직원이 회사 인감을 도용해 가짜 어음을 상품권 할인업자에게 내주고 40억 원 상당의 상품권과 현금을 받아 챙기다 검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KT 측은 “일부 직원이 저지른 개인적 범죄”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경찰은 이날 오후 늦게 김 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긴급체포하고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 중이다. 경찰은 또 사기 대출에 연루된 6개 협력업체 대표들에 대해서도 출국금지를 요청할 방침이다. 김 씨는 현재 대출 경위와 돈의 사용처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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