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오원춘 사건’ 방지… 경찰 제작 112신고접수 새 매뉴얼 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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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성폭행 당한다고요?” 반복 → “몇층인가요, 불은 켜져 있나요?”
피해자 위치 파악-안전확보 최우선… 11월말 전국 신고센터-일선署 배포

“여기 못골놀이터 전의 집인데요. 지금 성폭행당하고 있거든요.”

“못골놀이터요?”

지난해 4월 중국동포 오원춘(43)이 저지른 살인 사건 당시 신고를 접수했던 경찰과 피해 여성 A 씨가 나눈 문답의 일부다. A 씨가 전화기를 놓치기 전 80초 동안 접수원과 A 씨는 12차례 문답을 나눴지만 그중 9차례는 이처럼 “지금 성폭행당하신다고요?” 등 이미 A 씨가 말한 내용을 되묻는 질문이었다. 접수원이 불필요한 질문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오원춘의 인상착의 및 말투, 집의 위치 등 주요 단서를 구체적으로 물었더라면 오원춘이 A 씨를 살해하기 전 해당 주택을 경찰이 찾아낼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경찰에는 상황별로 대처할 구체적인 매뉴얼이 없었다.

경찰청 생활안전과는 ‘112 신고 접수 지령 매뉴얼’을 이달 말 전국 112신고센터와 일선 경찰서 및 지구대에 배포할 예정이라고 13일 밝혔다. 신고 접수부터 지령 및 사건 처리까지 담은 세부적인 내용의 매뉴얼은 처음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매뉴얼 제작위원으로 참여했던 정인환 경장과 함께 오원춘 사건의 신고전화 대화록을 분석해 ‘새 매뉴얼을 적용할 경우 당시 결과가 어땠을지’ 적용해 봤다. 이는 112 접수원 13명이 매뉴얼 제작을 위해 7월 말 경기 용인시 기흥구 경찰대에서 2주간 합숙할 당시에도 주요하게 논의된 내용이다.

①반복 질문 ‘NO’=매뉴얼에는 신고 위치와 가해자의 인상착의를 묻는 표준 질문지가 반영됐다. 건물 형태와 층수, 방의 크기, 대문 색깔 등과 가해자의 말투 및 인상착의를 물어 출동 경찰이 신고 장소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묻도록 했다. 당시 접수원이 정확히 질문해 ‘다세대주택 1층, ○○색 대문에 ○○색 방문’으로 신고 장소를 좁히고 ‘중국 말투를 쓰는 머리가 벗어진 40대’로 오원춘의 인상착의를 특정했다면 초동 탐문에서 경기 수원시 팔달구 지동 오원춘의 집을 찾았을 개연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②피해자 안전 확보가 최우선=당시 A 씨는 “아저씨(오원춘)가 나간 사이 문을 잠갔다”고 알렸지만 접수원은 “문 잠갔어요?” 등 질문만 반복했다. 매뉴얼대로 범행이 진행 중인지, 외부로 피신이 가능한지 등을 먼저 물었다면 “경찰이 곧 도착할 테니 가해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추가 잠금 장치가 있는지 보라”는 식의 안내가 가능했다.

③목소리 끊겼는데 “여보세요”만 반복 ‘NO’=당시 A 씨가 전화기를 떨어뜨린 뒤 6분 16초간 비명이 들렸는데도 경찰은 “주소가 어디냐”고 묻기만 했다. 새 매뉴얼에서는 신고자가 갑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경우를 ‘불완전 신고’로 분류하고 대응 방법을 1쪽 분량으로 구체적으로 적어 놓았다. 정 경장은 “신고자가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면 전화기를 두드려 ‘예’ ‘아니요’를 신호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④지령 및 수색 체계화=당시 경찰은 출동 지령을 내리며 신고 장소가 ‘집 안’이라는 핵심 단서를 빠뜨려 초동 탐문에 실패했다. 새 매뉴얼에서는 긴급 가택 수색 요령 등이 포함됐다. 당시 A 씨가 신고한 대로 수원시 팔달구 지동초등학교에서 못골놀이터 사이 825m 거리의 주택 내부를 우선 수색하며 ‘중국어를 쓰는 40대 남성이 사는 집’을 수소문했다면 더 빠른 수색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성폭행 매뉴얼#오원춘 사건#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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