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점 ‘홍익문고’ 시민들이 철거 막은지 1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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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계절, 깊어가는 시름

본보 2012년 11월 24일자 A10면 PDF.
본보 2012년 11월 24일자 A10면 PDF.
1960년 박인철 씨(2009년 작고)는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신촌로터리에 홍익문고를 세웠다. 이후 다른 가게는 수없이 바뀌었지만 홍익문고만은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서점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부장으로 일하던 아들 박세진 씨(45·사진)가 이어 받았다. 지난해 11월 재개발계획으로 철거 위기에 놓였을 때는 시민들이 지켜냈다. 일주일 만에 5500여 명이 철거 반대 서명에 동참하는 작은 기적을 이루자 철거 계획은 무산됐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4일 오후 3시경 홍익문고를 찾았을 때 서점 안은 한산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둘러보았지만 손님은 모두 7명뿐. 녹색 유니폼 차림의 직원이 더 많았다. ‘홍익문고 지키기 주민모임’ 대표를 맡았던 양리리 씨(37)는 “문화적 가치를 생각하면 서점을 지킨 것은 잘한 일이지만 힘들게 서점을 경영하는 박 사장님 처지를 고려하면 과연 잘한 일인지 후회도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홍익문고의 매출액은 지난 1년 동안 10% 이상 줄었다. 많은 사람이 홍익문고 지키기에 나섰지만 서점에 얽힌 추억만 되새김질했을 뿐 책 구매 운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박 사장은 “그래도 시민들 지지 덕분에 서점을 지켜낼 수 있었다. 처음 서점을 물려받았을 때는 아버지의 뜻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서점 100년 역사를 꼭 채우겠다는 사명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홍익문고는 이제 주변 문화를 선도하는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박 사장은 서점 5층 창고를 세미나실로 개조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무료로 개방했다. 자발적인 독서모임 ‘틈새’와 ‘시사톡’이 조직돼 매주 모임을 열고 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도서관위원회’ 같은 시민단체 회의도 여기서 열린다. 이들은 모임이 있을 때 책을 자주 구입해 서점에 힘을 보탠다.

서대문구청도 올해 안에 홍익문고 앞 연세로의 170m 구간에 국내 유명 작가들의 핸드프린팅 동판을 설치하는 ‘문학의 거리’를 만들 예정이다. 홍익문고도 매달 독서토론회와 백일장을 열어 힘을 보탤 계획이다. 박 사장은 “홍익문고 지키기에 힘을 보탠 시민 덕분에 문학의 거리가 조성됐다. 문학과 서점이 잘 조화를 이뤄 거리도, 서점도 다시 살아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10년 전인 2004년 1월 30일 홍익문고 창업자인 박인철 씨는 동아일보 오피니언면 발언대에 ‘온-오프라인 서점 함께 사는 길’이란 글을 쓴 바 있다. 인터넷 서점의 왜곡된 상술로 지역사회에 문화를 전하는 실핏줄 같은 중소 서점이 도산 위기에 놓였다는 내용이었다.

2003년 말 2247개에 달했던 서점은 2011년 말 1752개로 급감했다. 할인경쟁을 앞세워 중소 서점을 위협했던 인터넷 서점도 요즘 매출액이 줄고 있다. 중소 서점이 줄어들면서 사람과 책 사이의 거리가 그만큼 멀어진 탓이라는 게 출판계의 분석이다. 박 사장은 “도서정가제를 꼭 시행해야 동네 서점이 살아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독자들이 동네 서점에서 책을 읽고 만져봐야 자기에게 맞는 책을 골라 볼 수 있어요. 맞지 않는 책을 그저 싸다고 사서 읽다간 오히려 책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동네서점#홍익문고#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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