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유일의 포도와인산업특구인 충북 영동군에는 농가형 와이너리 44곳이 있다. 와이너리마다 특유의 제조법을 연구 개발해 ‘44색(色)’의 와인향이 무르익고 있다. 샤토미소 와인을 생산하는 ‘도란원’의 안남락 대표가 직접 만든 와인을 자랑하고 있다. 영동=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우리 땅에서 난 우리 포도, 한국형 와인, 새로운 맛의 가치창조.’
13일 오후 충북 영동군 매곡면 옥전리의 농가형 와이너리(winery·포도주 양조장)인 ‘도란원’. 안남락 대표(52)의 안내를 받아 1층 시음장에 들어서자 향긋한 와인향과 함께 벽에 붙어 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귀농해 부모님이 짓던 포도농사를 이어 받은 지 12년, 와인을 제조한 지 4년째인 안 대표는 “‘우리 포도로 우리 입맛에 맞는 정말 좋은 와인을 빚겠다’는 처음의 다짐이 변치 않기 위해 늘 저 글귀를 되새긴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포도 주산지이자 2005년 전국 유일의 포도와인산업특구로 지정된 영동군이 ‘대한민국의 보르도’로 커나가고 있다. 농가형 와이너리 육성을 비롯해 와인아카데미, 와인축제 등 다양한 와인산업 육성 정책이 착착 진행되면서 ‘대한민국 와인 일번지’의 꿈이 현실화되고 있다.
○ 농가형 와이너리 100개 육성
전국 포도 생산량의 13%를 차지하는 영동군은 포도와인특구로 지정된 뒤 농가소득원을 다원화하고 와인을 관광 상품화하기 위해 농가형 와이너리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영동군은 2008년부터 와인제조 경험이 풍부하고 일정 규모의 품종별 포도를 재배하는 농가를 선정해 와인 제조기반시설을 지원하고 있다. 와이너리에 뽑힌 농가에는 와인 1000L 이상을 만들 수 있는 파쇄기, 착즙기, 스테인리스 발효 숙성 탱크, 와인 이송펌프, 여과기, 코르크 충전기, 캡슐수축기 등을 설치해 준다. 농민들은 영동포도클러스터사업단에서 운영하는 ‘와인아카데미’에 참여해 주류제조 이론 및 실습 등 와인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기초부터 배울 수 있다. 특색 있는 와인 개발을 위해 선진지를 돌아보는 기회도 준다.
정기종 영동군 포도팀장은 “현재 44개인 농가형 와이너리를 해마다 늘려 100개까지 육성할 계획이다”라며 “와인 생산판매에만 머무르지 않고 체험관광과 숙박을 할 수 있는 와이너리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와이너리에 선정된 농가들은 영동군의 지원에 만족해하고 있다. 안남락 대표는 “와인은 포도처럼 수매를 하지 않아 농가에서 판로를 찾아 팔아야 했다”며 “지자체의 체계적인 도움 덕분에 제조부터 판매까지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프랑스 보졸레 시 시장도 인정
44개 농가형 와이너리는 각자 고유의 와인 맛을 자랑하고 있다.
도란원 안 대표는 2년 전 주류제조면허를 딴 뒤 ‘샤토미소’라는 이름의 와인을 해마다 1만 병씩 생산하고 있다. 이 와인은 지난해 영동와인축제에서 대상을 거머쥐었고 10월 대전서 열린 국제푸드&와인페스티벌에도 출품돼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달 영동을 방문한 프랑스 보졸레 시 장폴 셰마랭 시장 일행도 맛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요즘 참나무(오크) 통 대신 대나무를 이용한 와인 숙성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직접 키운 포도에 효모만 사용해 빚어낸 와인을 속이 빈 대나무 통으로 빨아들인 뒤 숙성시키는 방식으로 국산 와인의 시고 떨떠름한 향을 없애고 부드러운 맛을 강화했다. 시음 결과 좋은 반응을 얻었고, 본격적인 시판은 2년 뒤부터 할 계획이다. 안 대표는 “장인정신으로 빚고 있는 영동 와인이 세계적인 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때가 조만간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컨츄리농원(대표 김마정)은 ‘농가형 와이너리 1호’로 3대째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서태평양 미크로네시아로 강제징용을 당한 김 대표 아버지가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 스페인 사람들과 지내며 와인제조법을 배운 뒤 광복 후 돌아와 포도를 키우다 1965년부터 와인을 빚기 시작했다. 지금은 손자 덕현 씨(30)가 이어받았다. 덕현 씨는 “방부제인 아황산칼륨을 넣지 않고 자연침전법을 채택해 안토시아닌 등 영양분이 풍부하다”며 “와인 마개도 소비자들이 손쉽게 여닫을 수 있도록 천연 T타입 코르크 마개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 농장 와인은 올 5월 대전에서 열린 ‘2012 국제 소믈리에 협회 총회 및 경기대회’에서 공식 만찬주로 선정됐다.
정구복 영동군수는 “영동 와인산업 발전을 위해 와인터널과 와인테마마을 조성, 와인연구소 설립, 선진국 견학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44색(色)의 맛과 볼거리, 체험거리가 있는 영동의 농가형 와이너리를 찾으면 한국형 와인의 진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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