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대 청소년교육과를 2월에 졸업한 50대 황미숙 씨(여). 전공을 살려 청소년 상담사 시험을 준비했지만 수강하지 못한 과목이 시험과목에 2개나 있었다. 책을 들여다봐도 혼자서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시험을 포기할까 고민하던 차에 KOCW를 알게 됐다. 여기서 상담이론과 상담방법에 대한 동영상 강의를 무료로 들었다. 황 씨는 “책으로는 몰랐던 내용이라도 교수의 강의를 번갈아 듣다 보면 어느새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필기시험, 면접시험, 연수에 잇따라 합격하며 자격증을 받았다. ○ 무료 대학 강의로 ‘지식 나눔’
KOCW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이 2007년 대학 강의를 일반인에게 공개한 시스템이다. ‘Korean Open Course Ware’의 약칭. 이런 식의 강의 공개는 국내 처음이었다.
현재는 국내외 대학 100여 곳의 동영상 강의 4794개, 강의자료 18만1039개가 홈페이지(www.kocw.net)에 올라와 있다. 대학의 실제 강의를 15회 분량으로 만든 게 대부분이다.
가장 인기가 많은 내용은 세 가지다. 국내 대학의 전공별 수업, 스탠퍼드대나 매사추세츠공대(MIT) 같은 해외 유명 대학의 강의, 분야별 석학의 특강.
‘미리 보는 대학기초강의’ 코너는 5월에 생겼다. 학부의 전공강의와 교양강의를 중심으로 200여 종이 등록됐다. 대학생은 물론이고 진로를 탐색하는 중고교생에게도 유용하다.
2006년 숭실대에 입학한 김국진 씨는 이 코너를 이용해 자신에게 맞는 새 전공을 찾았다. 그는 성적에 맞춰 전공(수학과)을 선택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학교생활을 힘들어했다. 도망치듯 군대에 다녀온 뒤에도 복학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가 KOCW를 이용해 기계공학과로 옮겼다.
외국인 이용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6월에 생긴 ‘Let's Learn Korean’ 코너 덕분이다. 이주여성이나 재외동포를 위한 한국어 교육용 콘텐츠가 60여 개 있다. 한류 바람을 타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외국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온라인 강의 공개는 지식 나눔에 대한 대학의 사회적 책무감과 연관이 있다. 유네스코는 2002년부터 교육격차를 해소하자며 교육 콘텐츠 개방운동을 전개했다. 모든 대학 교육을 전 지구인이 무료로 공유하자는 취지.
온라인 강의 공개를 앞둔 서울대는 “사회 모두와 지식을 공유하는 봉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원준 울산대 교무처장은 “모두에게 공개되는 만큼 교수들이 강의를 더 열심히 준비하고 질을 높이려 신경 쓴다”고 말했다.
○ 저작권법 개정 필요
국내 대학은 지금까지 강의 공개에 폐쇄적인 편이었다. KERIS 관계자는 “강의는 자기 지식이라고 생각해서인지 공개되면 밥그릇을 빼앗긴다고 여기는 교수가 많았다. 일부는 자기 강의가 비교·평가받는 데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세계 유수의 대학이 강의를 잇달아 공개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2002년 MIT를 시작으로 하버드대, 예일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가 대학 강의를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했다.
특히 MIT는 올해 봄 학기부터 온라인 수강생이 유료시험을 통과하면 수료증을 준다. 12만 명이 온라인 강의에 등록해 이 중 1만 명이 5월에 중간고사를 치렀다. 스탠퍼드대, 프린스턴대,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미시간대는 1600만 달러를 들여 온라인 무료 강의를 5월에 공동 개설했다.
강의 공개가 더 확산되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점이 있다. 저작권법이다. 현재 저작권법 제25조(학교교육 목적 등에의 이용)는 ‘수업 목적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어떠한 저작물도 이용 가능하다’고 규정했다.
오프라인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강의를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는 경우를 교육 목적으로 볼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예를 들어 교수가 다른 학자의 글이나 이미지를 스크린에 비치게만 해도 저작권법에 위배될 수 있다.
이에 따라 KERIS는 강의를 공개한 대학에 ‘저작권 가이드라인’을 알려주고 강의자가 아닌 사람의 자료가 드러나지 않도록 유도한다. 홈페이지에 저작권 상담 코너도 마련했다.
KERIS 관계자는 “너무 화려한 강의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온라인 무료 강의에 저작권법을 엄격히 적용하지 않는데도 외국 교수들이 칠판에 쓴 글과 자신의 목소리로 강의를 구성하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온라인 강의공개, 제2금속활자라 할 만한 지식혁명”▼
■서울대 강의공개 이끌어낸 이기준 前총장
“최고 수준의 지식 콘텐츠가 제2의 금속활자를 만난 셈이다. 단순한 강의 공개를 넘어서 많은 국민이 지식을 쉽게 활용하고 토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서울대의 온라인 강의 공개를 이끌어 낸 이기준 한국공학한림원 명예회장(사진)의 얘기다. 이번 방안은 서울대 총장을 지낸 이 명예회장이 오연천 서울대 총장과 올 초에 협의하면서 시작됐다. 대학이 적극적으로 지식을 공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오 총장이 동의했다.
중세시대에 지식은 필사본 서적을 통해 소수에게만 전파됐다. 그래서 비싸고 귀했다. 금속활자의 등장은 이런 벽을 허물고 지식이 대중화되는 기반을 만들었다. 상아탑에서만 맴돌던 고급 지식은 인터넷이라는 날개를 달고 온라인 강의 공개를 통해 널리 퍼져 나가는 중이다. 이 명예회장이 온라인 강의 공개를 ‘제2의 금속활자’에 비유한 이유다.
그는 강의 공개가 대학 사회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내다봤다. 강의 공개가 자연스럽게 강의 평가로 이어져 교수 사회에 큰 자극이 된다는 말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2001년부터 강의를 공개하자 서울대가 비슷한 계획을 세웠지만 10년이 걸려서야 시작하게 됐다. 강의 공개에 반발하거나 불편해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아서다. 이런 점을 감안해 서울대는 학교 차원에서 교수들에게 강의 공개를 직접 요청하지 않고, 총동창회가 연구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강의 공개를 유도하기로 했다.
이 명예회장은 “자신들의 강의가 그대로 드러나면 교수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초기에는 어려운 이공계 강좌보다 많은 사람이 공감할 만한 인문학 강좌의 역할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울산대, 17개 정규 강의 조회수 25만… 고려사이버대, 모바일-유튜브로도 공개▼
■ 강의공개 사례 들여다보니
울산대는 정규 강의를 2009년부터 무료로 공개했다. 홈페이지까지 따로 만들었다. 당시 총장이던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이 직접 강의한 ‘미래사회와 과학기술’을 포함해 5개가 대상이었다.
강의 공개는 학기마다 늘었다. 지난 학기에는 17개의 정규 강의를 개방했다. 조회 수가 25만 번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많다.
공개된 강의는 모두 20회 안팎의 전공과목이다. 대학생과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울산대는 △영화를 볼 때 알아야 할 몇 가지 용어들 △한국인이 알아야 할 일본사 △한국의 명산과 영남 알프스 같은 교양강좌를 온라인을 통해 추가로 공개했다.
최원준 울산대 교무처장은 “교양강좌와 특강을 중심으로 짤막한 강좌를 더 늘려서 일반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고려사이버대는 2010년부터 ‘고려특강’을 통해 교수와 전문가의 강의를 공개했다. 평생교육에 기여하기 위해서다. 현재까지 110여 개 강의를 공개했다.
강의 시간이 최대 1시간 정도로 길지 않다. 주제 역시 △뿌리가 튼튼한 창업 △합격하는 입사지원서 작성 방법 △대인관계 대화법 등 실용적이다.
나홍석 고려사이버대 연구개발처장은 “인터넷 홈페이지와 모바일 홈페이지, 유튜브 등 다양한 통로로 특강을 공개하는 중이다. 앞으로는 4, 5회 분량으로 구성된 강좌를 더 많이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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