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 살해범’, 약초꾼 신고로 55일만에 잡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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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자매 살해범, 약초꾼 신고로 55일만에 잡혔다
■ 김홍일 부산 함박산서 검거

울산 20대 자매 피살사건의 용의자가 55일 만에 경찰에 검거됐다. 범인이 경찰 수사를 조롱하듯 도피행각을 벌이는 동안 피해자 부모와 친구들이 직접 나서서 전단을 뿌리고 시민들의 협조를 호소한 결과 마침내 꼬리가 잡힌 것이다.

○ 산에서 잠자다 시민에게 발견돼

56일간 도피 중이던 김홍일은 13일 오후 약초를 캐는 배모 씨(75)의 신고로 꼬리가 잡혔다. 배 씨는 이날 낮 12시경 부산 기장군 정관면 함박산에서 영지버섯을 캐려고 등산로가 아닌 곳을 다니다가 김홍일을 발견했다. 당시 김홍일은 마대를 뒤집어쓰고 잠을 자고 있었다. 산불 감시원으로도 활동하는 배 씨는 ‘직업적인 본능’으로 “왜 여기서 자느냐. 누구냐”고 물었고 김홍일은 “노숙자”라고 말한 뒤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이 청년이 최근 수배 전단에서 본 ‘울산 자매살인사건’의 용의자 김홍일과 닮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배 씨는 즉시 휴대전화로 부산 기장경찰서에 신고했다. 김홍일은 배 씨를 만난 뒤 다시 사라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커피캔에서 김홍일의 지문을 확보하고 경찰특공대, 수색견 등을 투입해 함박산 일대를 대대적으로 수색했다. 김홍일은 5시간여 후인 이날 오후 5시 반경 인근 함박산 청소년수련원 근처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김홍일은 이 사건을 수사해온 울산중부경찰서로 압송됐다.

김홍일은 2009년 피해자들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구이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숨진 언니 이모 씨(27)를 알게 됐다. 김홍일은 당시 백화점에서 일하던 이 씨에게 끌렸다. 경찰은 “김홍일이 부산에서 친구와 만나던 중에도 이 씨가 ‘어머니 가게에서 술 취한 사람이 행패를 부린다’고 전화하면 바로 택시를 타고 오는 등 헌신적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홍일은 이 씨가 올 6월경 “그만 연락하라”고 통보하자 괴로워하며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다시 사귀기를 애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발생하기 하루 전인 7월 19일. 통장에서 20만 원을 인출한 김홍일은 부산에서 성매매를 한 뒤 술을 마신 채 20일 울산으로 왔다. 오전 3시 15분경 울산 중구의 한 다세대주택 2층에 있는 이 씨 집에 베란다를 타고 침입했다. 당시 이 씨의 부모는 식당에서 일을 하느라 집에 없었고, 방에는 이 씨와 동생(23)만 자고 있었다.

사건 발생 당시 언니 이 씨는 오전 3시 17분경 119구조대에 전화해 “동생이 남자의 흉기에 찔려 죽어간다. 살려 달라”고 신고했다. 119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동생은 물론이고 언니도 흉기에 찔려 숨져 있었다. 경찰은 “김홍일이 동생을 언니로 오인하고 살해한 뒤 언니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들어가 추가로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홍일은 경찰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 지리 익숙한 모교 뒷산서 56일간 은신

김홍일은 범행 시 옷차림 그대로였으며 수염이 자랐으나 얼굴과 옷은 비교적 깨끗했다. 김홍일은 7월 23∼24일경 함박산(591m) 은신처로 들어가기 전 신용카드, 체크카드, 200만 원이 든 급여 통장, 휴대전화를 자신의 차량에 버려두고 갔다. 함박산을 선택한 것은 자신이 다니던 대학 뒷산(걸어서 30∼40분 거리)이라 지리에 익숙해서다. 6분 능선 등산로에서 100m가량 떨어진 숲 속 나무 밑에 은신처를 잡은 김홍일은 마대자루에 들어가 56일간 생활했다.

김홍일은 범행 전 인터넷에서 일본의 ‘자살 숲’으로 알려진 주카이(樹海) 숲을 수차례 검색했다. 범행 뒤 이곳에서 자살을 시도하려다 포기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은신 기간 부산에는 태풍 등의 영향으로 20일가량 크고 작은 비가 내렸지만 김홍일은 숲 속에서 버텼다.

○ 허점투성이 경찰 수사

범행 후 김홍일은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국도와 고속도로를 통해 강원도로 간 뒤, 범행 이틀 뒤인 7월 22일 오전 고속도로를 거쳐 부산으로 갔다. 이 과정에서 주유소 2곳에서 기름을 넣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범행 사흘 뒤인 23일에야 그를 공개수배했다. 그나마 수배전단에 실은 김홍일의 사진도 피해자 친구들이 확보해 포털사이트에 올린 사진보다 선명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피해자 친구들은 경찰의 수배전단에 자신들이 확보한 사진을 대신 붙여 전단을 다시 인쇄하기도 했다.

또 김홍일은 수배 중 자신이 인터넷에 남긴 댓글을 지웠지만 경찰의 뒤늦은 확인으로 인터넷 접속 장소 추적에 실패했다.

[채널A 영상] 울산 자매 살인범, 심정 묻는 질문에 묘한 웃음 지으며…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울산 자매살인#김홍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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