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직원 어학 강좌된 역외탈세 인력 영어캠프

  • 동아일보

국회보고서 공공기관 혈세낭비 속속 드러나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나라살림이 당초 목적과 달리 엉뚱하게 쓰이거나 효과가 의문시되는 사업에 정부 마음대로 전용(轉用)된 사실이 국회 결산 과정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역외탈세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쓰기로 한 국세청 예산이 직원 영어회화 강좌에 쓰이고 별다른 홍보가 없어도 지원자가 몰리는 공공기관을 위해 별도의 채용박람회를 개최한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23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국세청이 지난해 국제조사 전문인력을 키울 목적으로 지난해 개최한 영어캠프가 사실상 현장 직원들의 ‘비즈니스 회화 강좌’로 활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은 지난해 11월 21일부터 12월 16일까지 4주간 7500만 원을 들여 본청 직원 48명을 선발해 역외탈세 등 국제업무에 투입할 인재양성을 위해 영어캠프를 실시했다. 하지만 교육 이수자 중 실제 국제조사 담당 직원은 2명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지방 세무서 등에서 역외탈세 등 국제업무와 무관한 일을 하는 7∼9급 직원이었다. 올 3월 기준으로 교육을 받은 48명 중 11명만 국제 관련 업무를 맡고 있었다. 교육 내용도 국제조사 업무에 특화된 영어교육이 아닌 일반적인 비즈니스 영어회화 프로그램 위주로 채워져 역외탈세 등 국제조세조사 업무와 별다른 연관이 없었다.

예결특위는 “국제조사를 위한 어학교육이라면 역외탈세정보 입수 등에 필요한 외국어 능력이나 업무전문성 배양에 초점을 맞춰 현직 위주로 교육이 진행됐어야 했는데 실제로는 일반직원의 어학교육과 차별성이 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세청 당국자는 “교육 참가자들은 모두 국제 업무에 관심이 많은 직원이고, 이들은 당장 관련 업무에 투입되지 않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국제조사 인력 풀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기획재정부가 81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지난해 12월 개최한 공공기관 채용박람회도 예산낭비 사례로 꼽혔다. 공공기관의 모든 채용정보는 재정부의 ‘잡 알리오’, 고용노동부의 ‘워크넷’ 등 정부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공개되고 있고, 공공기관에는 지원자가 크게 몰려 경쟁률이 수백 대 1이나 되는데도 정부가 공공기관 취업지원을 독려하는 박람회를 연 건 예산낭비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이 박람회는 당초 예산계획에 없던 사업이라 남아 있던 공공기관 관리예산을 이용해 행사를 개최했다.

법인화된 서울대 직원의 인건비를 정부가 일부 부적절하게 지원한 사실도 지적됐다. 서울대 교직원의 인건비는 대학 내 법인회계를 통해 지급해야 하는데도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 정부예산에 책정된 국립대학 인건비 예산에서 서울대 교직원 인건비의 일부를 지원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서울대 법인화법이 2011년 12월 27일부터 시행됐는데도 정부는 연말까지 인건비를 지원했다”며 “단 ‘5일분’이라 해도 부당하게 지급된 1억5900만 원의 인건비를 환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 일부 정부 출연연구기관이 항공 마일리지 관리규정을 마련하지 않아 해외 출장 시 발생하는 마일리지가 개인용으로 적립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무원 여비규정에 따르면 해외 출장 시 쌓인 항공 마일리지는 거둬서 다른 공무 출장용으로 써야 한다. 출연 연구기관 역시 해외출장 대부분 공무상 여행인 만큼 공무원 규정을 준용해야 하지만 규정에 허점이 있는 것이다. 국회 측은 “정부 출연연구기관들도 공무원 규정을 따라 공무 항공 마일리지 관리규정을 신설하고 이를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영어캠프#국회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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