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경북]호미곶의 아침 해처럼… 노벨상의 꿈이 떠오른다

  • Array
  • 입력 2012년 7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설레는 과학경북의 꿈

경북 포항 영일만 호미곶에 떠오르는 장엄한 일출. 포스코 신화에 이어 노벨 과학상이라는 과학 금메달의 꿈도 솟아나고 있다.
경북 포항 영일만 호미곶에 떠오르는 장엄한 일출. 포스코 신화에 이어 노벨 과학상이라는 과학 금메달의 꿈도 솟아나고 있다.
‘바닷가에서 오두막 집을 짓고
사는 어릴 적 내 친구
푸른 파도 마시며 넓은 바다의
아침을 맞는다
누가 뭐래도 나의 친구는
바다가 고향이란다
갈매기 나래 위에
시를 적어 띄우는
젊은 날 뛰는 가슴 안고
수평선까지 달려나가는
돛을 높이 올리자 거친 바다를
달려라 영일만 친구야.’

《가수 최백호 씨(62)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30여 년 전 발표한 노래인데 지금 불러도 힘이 나고 마음에 든다”고 했다. 명예포항시민인 최 씨는 “호랑이 꼬리라고 하는 영일만 바다,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니 대한민국의 시작이고 힘의 출발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 대한민국의 에너지, 영일만 호미곶


경북 포항 영일만 호미곶 바다는 사시사철 독특한 힘을 뿜어내지만 그중에서도 태양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한여름이 가장 어울린다. 해를 맞는 영일(迎日)과 호랑이가 꼬리를 흔들어대는 호미(虎尾)곶! 동해 수평선 위로 솟아나는 해를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고산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완성하기 위해 이곳을 일곱 번이나 찾아 국토의 가장 동쪽임을 확인했다. 16세기 풍수지리학자 남사고는 한반도를 호랑이가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으로 보면서 백두산은 호랑이의 코, 이곳은 꼬리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호미곶에서 가장 먼저 솟는 해를 맞이하는 느낌이 다르다. 육당 최남선도 호미곶 일출이야말로 해맞이 최고 명소라고 했다.

동물 꽁무니에 붙어 조금 나와 있는 부분이라는 사전 풀이로는 ‘꼬리’, 특히 호랑이 꼬리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호랑이는 꼬리를 움직이며 무리를 지휘하고 몸의 균형을 유지하며 속도를 조절한다. 끝부분을 살짝 말아올린 꼬리를 이리저리 흔드는 모습이 없다면 호랑이가 아무리 어슬렁거려도 볼품이 없어 보이지 않을까.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시대 ‘연오랑세오녀’ 이야기는 사실 여부를 떠나 ‘영일’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점이 중요하다. 훗날 이 영일의 기운은 영일만 호미곶에 포항제철소가 들어서는 역사적 계기가 됐다. 왜 하필 이곳에 불가능하다던 제철소가 우뚝 들어섰을까?

제철소 건립이 가시화되면서 입지 후보로 여러 곳이 거론됐지만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1927∼2011)은 영일만을 주목했다. 경남 양산 출신인 그는 포항과 직접적인 인연은 없다. 그런데도 ‘바로 이곳이다!’고 직관한 이유는 ‘迎日’, 즉 해를 맞이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해는 곧 불(火)이고 빛(光)이다. 호랑이 꼬리의 힘줄에 해당하는 지리적 의미도 한몫했다. 2세기 신라 때 연오랑세오녀 부부가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제철기술도 전해줬다는 이야기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포항종합제철소는 영일만의 역사적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 연오랑세오녀의 영원한 햇빛

영일만 신화의 상징인 포스코 포항제철소. 지리적으로 호미(호랑이 꼬리)의 힘줄에 해당하는 곳에 자리 잡았다.
영일만 신화의 상징인 포스코 포항제철소. 지리적으로 호미(호랑이 꼬리)의 힘줄에 해당하는 곳에 자리 잡았다.
연오랑세오녀 부부가 일본으로 간 뒤 신라 땅에는 해와 달이 사라졌다. 이를 걱정한 나머지 세오녀가 짠 비단을 가져와 ‘해를 맞이하는’ 제사를 하늘에 올리자 해와 달이 다시 밝아져 신라 사람들이 마음을 놓았다는 이야기. 이는 그저 전설이 아니라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영일만 호미곶에 살아 숨쉬고 있다. 해맞이 기운을 품고 들어선 포항제철소뿐 아니라 제철소를 바탕으로 설립돼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성장하는 포스텍(포항공대)을 봐도 그렇다.

첨단 과학연구에 필수적인 국내 유일의 방사광가속기(전자를 빛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여 다양한 빛을 만드는 빛 공장)가 포스텍에 들어선 것도 빛나는 성취다. 가동 16년 동안 과학기술 연구에 엄청난 기여를 한 이 3세대 가속기 옆에는 이보다 100억 배 밝은 빛을 만들 수 있는 4세대 가속기가 다음 달 착공할 준비를 하고 있다. 포스텍과 가속기는 영일만 호미곶의 해이며 빛이다.

영일만 호미곶은 이제 또 새로운 햇빛을 맞이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호랑이가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뛰는 가슴을 안고 거친 바다를 달려나가 붉게 솟는 태양을 움켜쥐려는 듯하다. 그 꿈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공계 인재들이 모여 연구실과 실험실에 밤낮으로 불을 밝히며 미래의 빛인 노벨과학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올해 5월 세계 수준의 기초과학연구를 이끌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산하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선정한 첫 연구단장 10명 가운데 4명이 포스텍 소속으로 가장 많다. 정부가 엄청난 연구비를 투입해 한국의 기초과학 연구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역사상 최대 프로젝트다.

‘노벨상 사관학교’로 불리는 독일의 자존심 막스플랑크재단(MPG)은 국제 파트너로 포스텍을 선택하고 영일만에 둥지를 틀었다. 1986년 개교한 포스텍이 불과 26년 만에 아시아를 넘어 명실상부 글로벌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하는 모습에 깊은 신뢰를 가졌기 때문이다. ‘한국형 스티브 잡스’를 양성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 지자체가 힘을 모아 올해 포스텍에 설립한 ‘미래IT융합연구원’과 ‘창의IT융합공학과’는 10년 동안 1700억 원을 투입해 완벽한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날갯짓을 시작했다.

○ 무르익는 노벨상의 꿈

포항시는 ‘과학자가 가장 살고 싶은 도시’를 가꾸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 도시 전체를 포스텍 캠퍼스처럼 만들어 과학자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연구에 몰입하도록 뒷바라지하려는 구상이다. 외국인 과학자들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외국인학교도 2014년 개교할 예정이다. 2014년 개통 예정인 고속철도(KTX)에 맞춰 서울∼포항을 오갈 과학자들이 정주(定住) 여건에서도 최고 수준을 느끼도록 하겠다는 의지다.

동빈내항(포항항)의 물길 잇기 사업은 포항의 얼굴을 크게 바꿀 것으로 보인다. 동빈내항은 1970년대 초반까지 포항의 젖줄인 형산강 지류가 흘렀으나 포항제철이 들어서면서 하류의 물길이 막히고 지류는 매립했다. 40년 가까이 물 흐름이 끊겨 동빈내항은 오염의 대명사가 됐고 골칫덩어리였다. 지난달 착공한 물길 잇기는 1.3km 구간의 매립지를 걷어내고 폭 20m, 깊이 2m가량 물이 흐르도록 만드는 것이다. 포항항은 1962년 6월 국제항구로 지정돼 꼭 반세기를 맞으면서 오염을 씻어내고 원래의 모습을 내년에 되찾는다. 쾌적한 철강도시를 만들기 위해 포스코도 이 사업에 적극 참여한다.

내년 10월이면 시내를 가로지르는 물길을 따라 보트와 미니 유람선이 다니는 유럽풍의 매력적인 모습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영일만과 호미곶에는 크루즈 유람선이 드나든다. 박승호 포항시장은 “과학연구가 실험실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도시 전체가 좋은 연구실 역할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세계적인 대학에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모여 생활하는 곳이라면 정주 환경도 세계 최고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런던 올림픽이 개막하는 27일 영일만에서는 포항국제불빛축제가 시작된다. 포스코와 포항시가 연오랑세오녀의 영일만 빛을 새롭게 맞이하는 행사다. 한국에서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틀림없이 ‘경북 포항 포스텍’일 것이라는 강렬한 빛이 영일만 호미곶에서 솟아나는 마음을 모은다.

연오랑세오녀가 태양 신화(神話)라면 이를 계승하는 포항제철은 제철 신화이다. 이제 포스텍이 노벨상이라는 과학 금메달을 따내는 과학 신화를 쓸 차례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신화는 초자연적인 허구가 아니라 정신이 추구하는 꿈을 이뤄가는 이야기”라며 “경북이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미래를 열어나갈 강력한 빛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지금처럼 솟구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권효 기자·철학박사 bori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