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 너도나도 “사교육 폐지” 외치는데… 사교육 선행학습 ‘극과 극’ 고3 두 학생의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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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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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단체인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이 ‘선행학습 규제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 시안을 최근 공개했다. 사교육 기관은 초중학교 수학 사회 과학과목을 학교 진도보다 1개월 이상 앞서 교육할 수 없고, 초등학생 이하에게 토익 토플 텝스 등 공인외국어시험 대비 프로그램을 가르칠 수 없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다음 달까지 최종안을 만든 뒤 정기국회 기간에 국민 서명을 통해 법안 발의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여야 대선 주자도 ‘사교육과의 전쟁’을 교육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은 17일 “대입 전형을 단순화하고, 학교 공부만으로 대학 진학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은 초중고교 학생의 지나친 선행학습을 규제하는 제도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또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는 대입에서 논술고사를 폐지하고, 외국어고와 자율형사립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정세균 민주당 의원은 “헌법을 개정해서라도 반드시 사교육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주장했다. 사교육 문제가 교육계를 넘어 정치권에서도 뜨거운 논쟁의 대상으로 부각된 셈이다. 당사자인 고3 수험생은 어떻게 생각할까. 사교육과 선행학습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가진 두 명의 공부법을 들여다봤다. 》
▼ “진도 겉핥기 아닌 개념 선행학습은 큰 도움 됐죠” ▼

■ 필요한 만큼 학원 다닌 대원외고 권영호 군

서울 대원외고 3학년 권영호 군(사진). 성적이 전교 15등 정도다. 중학교 시절에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지난달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고사에서는 언어 수리 외국어 영역 모두 만점을 받았다.

권 군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의 선행학습이 공부에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무턱대고 진도만 나가지 않고 스스로 내용을 되새기는 방식의 선행학습이 어려운 개념을 확실하게 익히는 데 도움을 줬다고 얘기한다. 고등학교에서 다른 과목을 공부할 여유시간이 생긴 점도 선행학습의 장점이라고 본다.

학원을 다닌 기간은 길지 않았다. 수학학원은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1학년 때만 다녔다. 영어학원은 6개월 이상 다닌 적이 없다. 두세 달씩 다니다 그만두고 다시 다니길 반복했다.

왜일까? 급하게 진도만 나가는 선행학습의 문제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권 군은 “선행학습을 하면서 진도를 앞서 나가고 문제를 많이 푸니까 잘 모르면서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영어의 경우 학원을 다니면서 배운 내용을 방학 동안 스스로 공부했다. 말 그대로 선행학습이라서 급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권 군은 생각한다. 그럼에도 권 군은 수능 외국어 영역 문제를 풀 수 있는 문법과 독해 실력을 중학생 때 쌓았다.

수학도 마찬가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매일 수학 학습지를 풀며 스스로 공부한 권 군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2년 동안 학원에서 고등학교 부분을 공부했다. 이후에는 혼자 공부했다.

권 군은 “이왕에 선행학습을 하려면 한 과목이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아주 깊이까지는 아니더라도 개념을 확실히 파악해야 공부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통해 자기 걸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교 공부와의 조화도 중요하다고 권 군은 설명한다. 선행학습도 넓게 보면 학교 공부를 위해서이고, 내신점수가 중요하니까 학교 공부를 중심에 두고 선행학습은 남는 시간에 했다. 실제로 외고 입시가 끝난 중학교 3학년 말에 문제집을 활용해 고교 수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권 군은 자신의 필요에 따른 알찬 선행학습이라면 거부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미리 해둔 공부의 장점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수학에서는 수열, 급수, 극한 등의 개념을 배울 때 이런 점을 느꼈다. 수열에서 시작해 급수, 극한으로 이어지는 개념은 고교 수학에서 가장 어려운 미분이나 적분까지 이어진다. 이런 개념 중 하나라도 놓치면 수학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권 군은 “극한 등을 배울 시기는 다른 과목에서도 공부할 내용이 많은 시기다. 미리 틀을 잡아두니 공부가 한결 쉬웠고 다른 과목을 공부할 시간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단계 더 어려운 내용을 공부하면서 오히려 흥미를 느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 수학이 쉬워서 큰 재미를 못 느끼다가 학원에서 어려운 내용을 공부하면서 흥미를 느끼게 됐다.

권 군의 어머니 장미혜 씨(48)는 “선행학습이 학원을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면 학원에 끌려다니면서 ‘수박 겉핥기’식 공부만 하는 경우가 많다”며 “자녀들이 학원을 다니면서 너무 어렵거나 힘들다고 얘기하면 잘 들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선행학습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면 학원을 쉬게 하고 학습 상황을 점검하라는 뜻이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 “학교 야자때 선생님 괴롭혀가며 바로바로 해결” ▼

■ ‘나홀로 공부’에 익숙한 안동 풍산고 강다정 양

언어 수리 외국어 사회문화 모두 만점. 경북 안동 풍산고 3학년인 강다정 양(사진)의 지난달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 성적이다.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모의고사를 10차례 치렀는데 언수외 모두 1등급을 놓치지 않았다.

강 양은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 풍산고는 기숙형 자율학교. 모든 공부는 학교수업(오후 6시까지)과 야간자율학습(오후 7시∼11시 반)에 의존한다. 강 양은 “중1 때 한 달 동안 학원에 다녔는데, 자잘한 걸 외우게 하고 문제만 계속 풀게 했다. 나 혼자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강 양의 부모도 “공부는 네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하면 된다”며 동의했다.

혼자 공부하는 데 익숙했지만 고등학생이 되니 수학은 막막했다. 전국에서 상위 4% 이내에 드는 학생들이 모인 만큼 고교 교육과정을 미리 배우고 입학한 친구들이 적지 않았다.

강 양은 수학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쏟기로 했다. 정규 수업과 야간 보충수업에서는 이론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마다 문제 할당량을 주고 앞에 나와 설명토록 하는 방식이 도움이 됐다. 친구들 앞에 서니까 더 열심히 풀고 질문하기도 편했다.

야간자율학습 때는 EBS 수능완성과 수능특강, 고난도 문제에 한두 시간을 썼다. 문제를 풀다 막막한 개념이 나오면 교과서를 펴고 복습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선생님을 괴롭히다시피 계속 질문해서 바로바로 해결했다.

많은 학생이 언어의 문학작품 정리를 학원에 의존한다. 강 양은 철저히 학교 수업에서 해결했다. EBS 문제집을 풀다가 모르는 작품이 나오면 그때그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비문학은 매일 2지문씩 보면서 글의 구조를 살피는 데 중점을 뒀다. 강 양은 “학원에서 배우는 단순한 문제풀이 기술로는 어려운 과학·기술 지문이 나왔을 때 막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어영역의 문법은 수업시간에 마무리하려고 했다. 대신 자습 때 독해지문을 풀면서 모르는 문법이 나오면 문법책으로 돌아가 다시 정리했다. 취약한 듣기 문제는 매일 들었다.

역사를 좋아해서 사회탐구 선택과목으로 국사와 한국근현대사를 택했다. 학원 강의 없이 역사의 흐름을 정리하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교과서에는 생략된 내용이 많았다. 선생님에게 교사용 지도서를 빌려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유용하게 쓴 방법은 가상 드라마 만들기.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이 사건을 겪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대사로 만들어 역할놀이를 하면 굳이 외우지 않아도 이해가 됐다.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은 ‘선행학습 규제에 관한 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이달 초부터 100일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 블로그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은 ‘선행학습 규제에 관한 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이달 초부터 100일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 블로그
혼자 공부하는 만큼 강 양은 자투리 시간을 알뜰하게 쓰려 했다. 10분간의 쉬는 시간에는 수학문제 2, 3개를 풀거나 영어단어를 외웠다. 단어의 뜻만 외우는 데 그치지 않고, 단어가 들어간 문장을 통째로 이해하려 했다.

강 양은 밤을 새워 공부하지 않는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바로 기숙사에 돌아와 씻고 밤 12시에서 오전 1시 사이에는 잠을 청했다. 무리하면 다음 날 공부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교육과 선행학습에 대한 생각은 확고하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도움 받으면 된다, 하지만 학원 때문에 혼자 공부할 시간을 뺏기면 안 된다, 학원에서 배운 건 강사의 공부에 지나지 않는다….

강 양은 학부모들에게도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사교육에 대한 맹신을 조금만 놓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자녀가 혼자 할 수 있다고 하면 믿고 맡겨 주세요.”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사교육#선행학습#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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