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토종 구렁이, 치악산서 되살아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4일 03시 00분


서식환경 파괴와 잘못된 보신문화로 국내에서 씨가 마른 토종 구렁이(멸종위기종)의 모습. 치악산국립공원사무소 구렁이 복원팀은 전국에서 모은 구렁이 성체와 독자적인 인공증식 방법을 활용해 새끼 6마리를 이달 말 치악산에 방사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서식환경 파괴와 잘못된 보신문화로 국내에서 씨가 마른 토종 구렁이(멸종위기종)의 모습. 치악산국립공원사무소 구렁이 복원팀은 전국에서 모은 구렁이 성체와 독자적인 인공증식 방법을 활용해 새끼 6마리를 이달 말 치악산에 방사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한반도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구렁이를 되살리는 프로젝트가 본격 추진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멸종위기종인 구렁이 새끼를 이달 말 치악산에 방사할 계획”이라고 3일 밝혔다. 정부는 2004년부터 멸종위기종 복원사업을 벌여 왔지만 지리산 반달가슴곰, 소백산 토종 붉은여우 등 주로 포유류가 대상이었다. 파충류는 복원이 까다로운 데다 일반인에게 혐오 대상으로 인식돼 복원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 사라진 설화 속 구렁이 복원


토종 구렁이를 본격적으로 복원하는 데는 ‘치악산 설화’가 한몫했다. 설화에 따르면 과거 강원 원주 적악산(赤岳山)을 넘던 한 젊은이가 구렁이를 화살로 쏘아죽여 꿩을 살려줬다. 이후 젊은이가 구렁이에게 위협을 당하자 꿩이 머리로 상원사 종을 쳐 젊은이를 구했다는 이야기다. 이후 적악산은 꿩 치(雉)자를 넣어 치악산(雉岳山)으로 바뀐 것으로 전해진다.

2009년부터 설화 속에 등장할 만큼 많았던 구렁이를 복원하자는 지역 내 목소리가 커지면서 복원에 탄력을 받게 됐다. 토종 구렁이는 한반도에서 가장 큰 뱀으로 길이가 2.5m나 된다. 수명은 25년 정도다. 국내 설화에도 자주 출현하는 이유는 숲 속뿐 아니라 민가 돌담, 제방 돌 틈에도 서식하는 데다 독이 없고 사람을 공격하지 않아 풍요의 상징으로도 여겨졌기 때문이다.

구렁이가 멸종 위기에 빠진 것은 1970년대부터다. 공단 관계자는 “산림지역 파괴로 서식지를 잃은 데다 잘못된 보신문화가 유행하면서 뱀 밀렵이 성행해 수만 마리에 이르던 구렁이 수는 현재 전국적으로 3000마리 내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 까다로운 구렁이 복원

이번에 방사하는 개체는 2010년 태어난 새끼 6마리다. 치악산국립공원사무소 구렁이 복원팀은 “방사하기 전까지 국내에 구렁이 복원 사례와 연구가 부족해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밝혔다.

복원팀은 2009년부터 구렁이 성체(成體)를 찾아 전국을 누볐지만 찾기 어려웠다. 어렵사리 강원대에서 멸종위기 증식사업용으로 키우던 구렁이 5마리를 분양받았다. 지난해 6월에는 충북 충주시 동량면의 한 농가에서 “축사에 구렁이가 나타난다”는 제보를 받아 일대를 조사한 끝에 성체 5마리를 확보했다.

하지만 복원 초기 구렁이 성체를 온전히 키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구렁이는 폐가 약해 온도가 조금만 낮거나 환기가 되지 않으면 호흡기 질환에 걸렸다. 결국 성체 4마리가 폐사했다. 복원팀이 어항 형태의 사육상자(3.3m²)를 만든 후 상태를 분석해 최적의 환경(온도 20∼23도·습도 50∼60%)을 찾아내 폐사를 막았다. 그래도 증식은 쉽지 않았다. 암컷과 수컷을 한 사육상자에 넣어도 교배가 이뤄지지 않았다. 암컷이 낯선 장소에서는 교배를 거부했다. 암컷을 한 달가량 홀로 사육상자에 살게 해 환경에 익숙해지도록 한 뒤에야 교배에 성공했다.

부화율을 높이기 위해 인공부화기도 개발했다. 기존 인공부화기 내에서 알이 자꾸 썩는 현상이 발생한 탓이다. 부화기 내부가 80∼90%의 높은 습도를 유지하면서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져 알을 썩게 했다. 공단 측은 “인공부화기 천장을 건조하게 하는 방식으로 알을 부화해 지난해 23마리를 증식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 생태계 균형을 잡는 역할

방사될 구렁이 몸에는 초소형 무선발신기가 삽입된다. 안테나가 달린 길이 20cm짜리 발신기를 구렁이 배설강(排泄腔·배설관 창자의 끝 부분) 부위에 심은 후 방사하면 추적 장치를 통해 반경 1km 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이용욱 치악산국립공원사무소 생태담당관은 “위치 추적으로 구렁이 새끼의 서식처와 이동경로 등 생태 적응 과정을 규명할 것”이라며 “2022년까지 100마리를 복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00마리는 구렁이가 외부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번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개체수다.

구렁이가 복원되면 생태계 조절자의 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구렁이는 다람쥐, 들쥐 등 설치류(齧齒類)를 주로 잡아먹는다. 이 담당관은 “한반도 온난화로 들쥐의 번식이 빨라져 질병 확산과 농작물 피해가 심화하고 있다”며 “쥐약을 쓰면 다른 생물의 2차 피해가 발생하지만 구렁이는 부작용 없이 들쥐 과다 번식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설화#구렁이#멸종위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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