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렬 부장판사가 올린 글 전문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26일 04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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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법원가족들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저는 너무나 화가 나 있습니다.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어느 영화인지 잘 아시지요? 안 그래도 여러 가지 일로 억울하고, 마음 편하지 않았는데, 그 영화와 관련해서 그동안 너무나 편치 않았습니다. 소위 언론계 종사자라고 우기면서 자기들 편한 대로 전혀 사실과 다른 소설을 쏟아내고 모함을 해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 편승하거나 스스로 소설을 써 가지고 악의적인 선전을 하는 사람들, 입장표명이나 거취표명을 하라고 악다구니를 써 대는 사람들...

일부러 외면했습니다. 참았습니다. 제게 왜 할 말이 없겠습니까? 책으로 써도 될 만큼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말을 한다고 하면, 일단 영화를 보고 난 다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도 보지 않은 상황에서 영화와 관련된 언급을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의 주제가 사법부의 권위주의적 모습을 고발하는 것이라 하더군요. 재판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실수와 잘못이 당연히 있을 것이고, 그런 실수와 잘못을 다시는 하지 않도록 재판 전이나, 재판 후나 항상 반성하고 고민하고 있는 마당에, 사법부의 잘못을 깨우쳐 주겠다는 영화를 마다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착각하는 것일 수 있겠으나, 영화와 관련해서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밝힌다면 영화의 흥행에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참아야하는 이유 중의 하나였습니다. 꼭 흥행에 성공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를 함께 보고, 사법부가 잘못한 것에 대해 지적과 질책을 하셔야 하고, 이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울러, 영화가 잘 되어야 출연배우에게 출연료가 지급된다고 하더군요. 안성기 씨나 문성기 씨나 모두 제가 좋아하는 배우이고, 정지영 감독님도 그 분의 작품들을 통해 호의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분입니다. 제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지만, 제 행위로 인해 그 분들의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전혀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관객이 1000만 명, 적어도 100만 명이 될 때까지는 참자고 생각했습니다.

영원히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 생각은 그 영화와 같은 제목의 책이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기 이전부터 가졌던 것입니다. 입장표명이니, 거취표명이니 이런 것은 정치인들이나 하는 것이지, 정치인도 아닌 제가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무엇보다 제가 그 사건에 관해 다시 언급을 한다면, 필경 김명호 교수님의 이런 저런 소송수행상의 잘못 때문에 패소를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 될 것인데...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그 분은 제가 한 판결 때문에 상처를 한 번 받은 분이니, 저에게는 그 분의 잘못을 언급함으로써 그 분에게 다시 상처를 가할 권리가 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쏟아지는 온갖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절했었습니다.
게다가 패소한 당사자가 테러를 했다는 이유로, 또 그것이 사회의 이목을 끌었다는 이유로, 판결의 결론에 이르게 된 이유와 경위를 판결문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밝히게 된다면, 앞으로 패소한 사람들은 판결문을 읽어보지도 않은 채 판사에게 테러를 하려고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숨길 수 없는 솔직한 마음은, 차라리 억울함과 답답함을 속으로 삭이고 말지, 괜히 말 한 마디 했다가 저도 석궁을 맞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품위 없게도 요즘 유행하고 있는 표현을 빌리자면... 저는 무척 쫄고 있습니다...

석궁테러사건을 보고 느낀 바 있어, 이후 다시 재판장 업무를 맡게 되었을 때 제 나름 제대로 된 재판을 해 보겠다고 왕복 네 시간이 걸리는 출·퇴근 시간이 아까워 1주일에 3, 4일을 집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채 찜질방 등지에서 잠을 자면서 일을 했다가 결국 당뇨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일로 인해 들게 된 머리부터 발끝까지 짓누르고 있는 묵직한 기분. 답답함. 스트레스... 건강은 갈수록 악화되었고, 간간이 웃을 일이 생겨도 시원한 웃음이 나오지도 않았으며, 기록을 읽기도, 판결이나 결정을 쓰기도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흰 것은 종이이거나, 모니터 화면이고, 까만 것은 글자인 것 같고... 할 일은 태산 같은데...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쓰신 유서를 최근 다시 접하면서 그 분께서 자살을 결심하셨을 때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명절을 지내고 출근해 보니, 몇몇 법원 가족분들께서 제게 메일을 주셨더군요. 아마 연휴기간 동안 그 영화를 보셨던 모양입니다. 내용을 보고서 너무나 분통이 터졌습니다. 다른 분들도 아니고, 법원에 몸담고 계신 분들이라면, 쉽게 접근 가능한 자료를 통해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확인하셨어야 할 텐데요... 전혀 존경하지도 않으면서 저를 존경한다느니 하는 수사를 쓰시고는, 누구의 지시를 받아 미리 결론을 내놓고 짜맞추기식 엉터리 판결을 했냐느니, 지시한 사람이 청와대라는 둥, 대법원장님이라는 둥, 삼성이라는 둥, 박홍우 원장님한테 한 마디도 못하고 시키는 대로 했다는 둥... 제가 썼던 민사사건판결문을 읽어 보시지도 않았다는 확신이 들도록 엉터리 사실관계를 기초로 이야기를 하시는 분에다가, 심지어는 민사사건에만 관여한 제게 왜 혈흔감정도 안 하고, 부러진 화살도 증거물로 안 나왔는데 중형을 선고했냐는 둥 도대체 제가 민사사건에 관여를 했는지, 형사사건에 관여를 했는지조차도 모르는 분까지 계셨습니다. 저보고 한미FTA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지 왜 언론플레이를 하냐는 분도 계시더군요. 법률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뻔히 아실텐데 공무원 시험은 어떻게 합격하셨는지... 이런 분들을 직장동료라고,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믿고 살았다니... 배신감에 치를 떨었고, 제 인내심의 한계가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북받치는 감정을 털어놓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글을 씁니다.

석궁테러사건과 관련해서 그 사건이 터진 직후에 게시판에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게시기간을 한 달인가로 했었기 때문에 그 글은 아마 더 이상 게시되어 있지 않을 것이고, 저는 그 글의 전문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 글을 보시지 못한 분들이나, 그 이후에 입사하신 분들께는 예의가 아니기는 하지만, 그 때 드렸던 말씀들은 모두 현재도 유효한 말씀들이구요, 이를 다시 반복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할 수 있는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많기는 하나, 딱 한 가지만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아... 서두가 길었습니다만, 서론으로 한 말씀만 더 올리겠습니다. 이것도 그 사건에 대해 더 이상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제가 드릴 말씀과 관련해서 저는 이제 실정법을 어기고자 합니다. 사건 발생 직후 썼던 예전 글에서는, 합의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는 법원조직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 우회적으로 합의과정의 극히 일부만을 암시했지만 이번에는 핵심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아무튼 그로 인해 제게 불이익이 가해진다면, 이는 달게 받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석궁테러사건의 원인이 된 교수지위확인 등 청구사건은 한 차례 결심이 되었다가 변론이 재개된 후 다시 결심되어 판결선고가 이루어졌습니다. 처음 그 사건이 결심된 후 이루어졌던 합의결과는, 원고, 즉 김명호 교수님 승소였습니다. 이 결론은 판사 세 명 사이에 이견없는 만장일치의 의견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판결초고 작성에 착수했는데, 예전 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예상치 않았던 큰 문제가 발견되었습니다. 청구취지가 '피고의 원고에 대한 1996. 3. 1. 자 재임용거부결정이 무효임을 확인한다'였습니다. 주지하시다시피 3.1은 삼일절이어서 법정공휴일인데, 그 날 재임용거부의 의사표시가 학교측으로부터 발신되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원고에게 도달되었을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기록을 샅샅이 뒤져보아도 그 날 위 의사표시가 발송 또는 도달되었다는 증거도 없었구요. 사건의 중요성에 비추어 보면, 결론에 관계없이 당연히 상고가 예상되는 사건인데, 원고승소판결을 했을 경우 학교측에서 이 점을 건드려 '1996.3.1에는 원고와 관련하여 아무 일도 없었다'는 식의 간단한 한 마디만 하여도 공들였던 탑이 너무나 속절없이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위 결정이 실제로 있었던 때를 확인하기 위해 원고의 추가변론이 필요했고, 변론재개를 거쳐 추가심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즉, 변론재개는 학교측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김 교수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변론재개 후에 당초의 결론이 뒤집히게 된 이유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김명호 교수님께 다시 한 번 상처를 드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석궁테러사건 이후에 항상 들었던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상고심에서 뒤집어지든 어떻든 간에 변론재개 없이 그냥 원고승소로 선고가 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석궁테러사건, 즉 형사사건의 진실에 대해서는 법원 가족 여러분들과 같은 처지입니다. 극소수의 분들을 제외한 법원 가족 여러분들이나 저나 모두 사건현장에 있지도, 형사재판과정에도 관여하지도 않았는데, 저인들 무엇을 제대로 알고 있겠습니까? 그런데, 김 교수님이나 그 변호인쪽에서 그런 주장을 한다더군요. 박홍우 원장님께서 자해를 하셨다고, 증거를 조작했다고... 저도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100% 아니라고 말할 입장은 아닙니다만, 이런 생각은 듭니다. 원고승소를 생각하셨던, 심하게 표현하자면 자신에게 석궁으로 테러를 가한 사람을 편들기까지 하셨던 분께서 무슨 이유로, 어떤 이득을 얻으시려고, 자해를 하고, 증거를 조작하겠습니까? 제가 주심을 맡아 썼던 판결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제대로 된 반박도 하지 못한 채 선정적인 용어를 써가며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보다는, 원고승소라는 결론을 다지기 위해 변론재개를 하였는데 도리어 그 결론을 뒤집게 된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공감하셨던 박홍우 원장님의 말씀에 더 믿음이 갑니다.

저는 법원에 몸담고 있는 사람의 하나로서 그 영화를 꼭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설령 억울한 생각이 든다 하더라도, 그 영화를 통해 던져지는 메시지를 곱씹어 보고, 제가 재판업무를 하는 동안 잘못했던 점에 대하여 반성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악성 당사자라고, 악성 민원인이라고, 권리구제가 아닌 오로지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기 위한 소 제기, 증거신청이라고 그 사람이나, 그의 행위를 무시한 적은 없는지,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 사람이 왜 이런 행위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본 일이 있는지 등등을 그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이 해 보았지만 또다시 해봐야 하겠지요. 사람들이 왜 그 영화에 열광하는지 그 이유에 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국가의 녹을 먹고 사는 저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건방진 말씀이지만, 법원 가족분들께서도 그 영화를 꼭 보시기를 권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욕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지 않거나, 반성하지 않으면 이제는 무조건 석궁을 맞을 것 같습니다. 어느 누구도 테러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지 않을겁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렇더라도 영화는 영화일 뿐 영화적 사실과 실제 사실을 혼동하지는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혼동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가족이라고 하는 우리끼리만이라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영화와 현실을 혼동하고 동일시하는 자유와 권리는 가졌을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권리는 어느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절대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수 없이 경험한 바대로 이 글도 알 수 없는 경위를 거쳐 외부로 유출되겠지요. 그리고, 이 글과 이 글을 쓴 저도 다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것이고, 안주감이 되겠지요. 이 글 중에서 일부 표현을 가지고 말꼬리를 잡고, 또 자기들 마음대로 소설을 쓰고, 자기들 입맛에만 맞춘 말과 글을 써 대겠지요. 저로서는 원치 않는 일이기도 하고, 명색이 부장판사라고 하는 사람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품위 없게도 이런 식의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을 따지기에는 너무나 지쳤습니다....

저한테 메일 보내신 분들... 제가 이렇게 드리는 말씀이 전혀 믿기지 않으시죠? 아니, 믿고 싶지 않으시죠? 당신들께 의미 있는 진실을 '객관적 진실'이 아니라, 당신들이 이미 써 놓은 소설에 부합하는, 당신들이 추구하려고 하는 목적에 맞아야만 하는 '주관적 진실' 일테니까요. 당신들께서는 그 동안 수없이 쏟아내었을 거짓말과 중상모략에 대해 반성이나 사과할 생각조차도 가지고 계시지 않을 것이고, 저 또한 당신들로부터의 사과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혹시 이 글을 보고 느끼시는 바가 있다면 당신들이 여기저기에 뿌린 거짓의 씨앗과 거기서 생긴 독을 품은 열매를 스스로 거두어 들이십시오. 그것조차도 하지 않으신다면... 당신들이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존엄성에 대한 저의 인식을 멈추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제가 화제거리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 간절합니다. 그것이면 족합니다.

절제라는 미덕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글이다 보니 난삽하네요. 그래도 마음은 한결 편해졌습니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불편함을 참고 읽어주신 법원가족분들께 사과와 감사의 말씀을 함께 드립니다.

창원지방법원 판사 이정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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