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대구 중구 성내동 중앙한약방. 입구와 건물 외벽에는 한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간판 대신 신체 부위별 침(鍼)자리를 표시한 그림이 내걸려 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환자 증상에 따라 약 짓는 방법을 쓴 한약 처방전이었다. 특이한 모양 때문에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돌아봤다.
박신호 대표(46)는 “한약을 파는 곳이 아니라 늘 사람들이 휴식하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이곳에 오면 이야깃거리가 넘친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박 대표의 변화 움직임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우선 지난달 말부터 주위에 있는 다른 업종 상점들과 손잡고 무료 고객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사람이 찾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약방을 살릴 수 있다는 기본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각 상점에 일일이 취지를 설명하고 동참을 구했더니 흔쾌히 허락했다”고 설명했다. 방식은 간단하다. 제휴한 상점을 이용한 고객은 중앙한약방 건강상담과 약차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헐리우드 헤어샵(미용실) 행복제면소(국수전문점) 미소씨티(스크린골프) 약전삼계탕 동아전복 청도식당 종로숯불갈비 진골목식당 국일따로국밥 등 9곳이 참여했다. 이들 상점에는 한약방 위치와 상담시간, 전화번호 ‘고객감사 서비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중앙한약방 박신호 대표(왼쪽)와 부친인 박재규 원장이 손님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약차를 만들고 있다. 대구=장영훈 기자 jang@donga.com실제 안내문을 보고 찾는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10일 오후에는 국수를 먹고 한약방을 찾아온 30대 여성이 상담을 받았다. 얼굴에 붉은 종기가 나는 피부질환이 고민이라는 그는 “약령시는 무조건 뭘 사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찾을 수 없었다”며 “홀가분하게 상담 받고 약차도 먹어서 좋았다. 조만간 어머니와 함께 한약처방을 받아야겠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아이디어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예전 약령시에 오면 늘 한약냄새가 났던 추억을 살리기 위해 ‘한약향기샤워’라는 사업 구상도 하고 있다. 이 역시 돈을 들이는 것이 아니다. 약 달이는 시간을 공지하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몸에 좋은 약 기운과 향을 선사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한약방이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커피전문점과 카페 같은 느낌으로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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