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는 아빠를, 兄소방관은 동생 소방관을, 우리는 義人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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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평택 가구단지 화재진압중 소방관 2명 순직

고 이재만 소방장
고 이재만 소방장
이달희 씨(72·목사·경기 평택시 서정동)는 3일 아침 동네 목욕탕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걷다 보니 한 가구전시장 2층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불이 났구나’ 하며 걱정스레 지켜보고 있자니 곧 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도착했다. 소방관들이 다급히 내리는데 작은아들 이재만 소방장(39)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를 쳐다본 아들은 말 한마디 건넬 틈도 없이 눈짓만을 남기고는 곧바로 동료 소방관 3명과 함께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근심스레 쳐다보던 이 씨는 곧이어 후속 소방대원들이 도착하고 물대포가 쏟아지자 안도하며 목욕탕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들과의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 긴박했던 순간, 그리고 죽음


3일 오전 8시 47분 경기 평택시 송탄소방서에 ‘서정동 참숯가구전시장에서 연기가 난다’는 다급한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119구조대에 출동명령이 떨어졌고, 이 소방장과 한상윤 소방교(31)를 포함한 구조대원 4명이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휴일 아침이었지만 혹시 있을지 모를 시민을 구조하기 위해 휴대용 소화기만 들고 불길로 뛰어들었다. 2분 뒤 펌프차와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했고 구조대원 7명도 추가 투입됐다. 건물 밖에서는 물대포가 세차게 물을 쏘아가며 불길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잠시 주춤하던 불길은 이내 다시 거세게 요동쳤고 20분 만에 전 대원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3분 뒤 인원을 점검해보니 2명이 부족했다. 누군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가구공장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자체 구조대를 편성해 무너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붕괴 20분 만에 한 소방교를 발견했으나 이미 주검이었다. 이어 35분 뒤 이 소방장이 잔해에 깔린 채 숨져 있는 것이 발견됐다. 불은 1시간 10분 만에 진화됐지만 몸을 아끼지 않던 젊은 소방관 2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 나라 위해 몸 바쳤지만 쌍둥이와 배속 아이는 어떡하라고…


유가족이 전한 두 사람은 효자이자 가족을 사랑한 가장이었다. 부인(39)과 두 아들(11세와 9세)을 둔 이 소방장은 소방관이 된 이후 박봉을 쪼개 매달 부모님께 30만 원씩 용돈을 드렸다. 한 소방교는 아이들과 노는 걸 좋아했고 부인을 위해서는 자주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한 소방교의 아내 강영경 씨(29)는 4일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평택시 송탄중앙장례식장에 마련된 남편의 빈소를 지켰다. 숨진 당일 미처 챙겨주지 못한 아침이 마음에 걸려 휴대전화로 통화한 게 작별인사가 됐다. “아침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하니까 ‘괜찮다’며 제 몸이나 잘 챙기라고 했어요. 그러곤 1시간 뒤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지성, 지완 쌍둥이 아들(4)을 둔 강 씨는 지금 임신 5개월째다. ‘별이’는 남편이 지어준 태명이다. 강 씨는 “남편은 생명이 오가는 힘든 일을 하면서도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며 “자리를 지키는 게 마지막 도리”라며 울먹였다.

한 소방교가 숨진 당일에는 송탄소방서로 캠핑용 테이블이 배달돼 동료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부인 강 씨는 “얼마 전에 아이들과 함께 캠핑을 다녀온 뒤 자주 다녀야겠다며 남편이 주문한 것”이라며 “아이들과 자주 놀아주면서 김치볶음밥을 잘 만들었다”고 말했다. 빈소를 지킨 큰형 상철 씨는 “지난달 중순 어머니가 계신 충남 청양에서 온 가족이 모여 김장을 할 때 본 것이 마지막이 됐다”며 눈물을 흘렸다.

○ 형제가 걸어온 소방관의 길


이 소방장은 형 재광 씨(41)와 함께 형제 소방관이다. 재광 씨는 경기 화성소방서 소방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동생의 적극적인 권유로 공직에는 1년 늦게 입문했다. 형제는 초중고교는 물론이고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졸업했고 군 복무도 가까운 부대에서 해 서로 면회를 다니기도 했다. 재광 씨는 “재만이는 평생을 함께한 친구 같은 동생”이라며 “평소에 자기 몸을 돌보지 않아 항상 조심 또 조심하라고 당부했었는데 우직한 동생이 끝내 먼저 하늘나라로 가버렸다”면서 서럽게 울먹였다.

아들의 죽음 직전을 지켜봤던 이 씨의 충격은 컸지만 의연한 모습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이 씨는 “자식들에게 ‘목사인 나는 사람의 영혼을 구할 테니 너희들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라’고 항상 얘기했다”며 “국가의 아들로서 부끄럽지 않게 죽었으니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 구조대원 교육시킨 베테랑, 1계급 특진 추서


1996년 임용된 이 소방장은 최근까지 경기도소방학교 화재현장팀 전임교관으로 구조대원을 훈련시켜 온 16년차의 화재진압 베테랑 소방관이다. 2006년 소방방재청장상을 받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각종 상을 받았다. 한 소방교도 2004년 임용된 뒤 경기도지사 표창을 수상하는 등 모범적인 구조대원으로 꼽힌다. 사건 당일 현장을 지휘했던 송탄소방서 작전담당 신계성 소방경(54)은 “항상 구급현장에 먼저 달려가고 가장 나중에 빠져나오는 헌신적인 구조대원이었다”며 “미처 구조해내지 못한 게 한스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은 4일 장례식장을 찾아 고인의 숭고한 넋을 위로하고 정부를 대표해 이 소방장은 소방위로, 한 소방교는 소방장으로 각각 일계급씩 특진 추서했다. 장례식은 5일 오전 10시 송탄소방서장(葬)으로 치러진다. 한편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최근 5년간 화재현장에서 숨진 소방관은 33명이며 부상자는 1609명에 이른다. 올해는 6명이 순직했다.

평택=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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