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된 황래하 씨 “北에 계신 어머니 오실까봐… 북향집에 창을 크게 내었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9일 03시 00분


열 살때 이산가족 된 강화 교동도 황래하 씨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내달 3일 오후 6시 40분 첫 방송

60여 년간 어머니와 고향을 가슴에 품어온 황래하 씨의 사연에 출연자들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왼쪽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브로닌 씨, 황 씨의 편지를 대신 읽는 연기자 박선영 씨, 가수 현미 씨, 황 씨, 개그맨 남희석 씨. 채널A 촬영진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강화=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60여 년간 어머니와 고향을 가슴에 품어온 황래하 씨의 사연에 출연자들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왼쪽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브로닌 씨, 황 씨의 편지를 대신 읽는 연기자 박선영 씨, 가수 현미 씨, 황 씨, 개그맨 남희석 씨. 채널A 촬영진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강화=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집을 지을 때 아예 작심하고 창을 크게 냈어요. 그러면 혹시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실까 했는데….”

낮인데도 거실 안이 어둑어둑했다. 2002년 지은 이 집은 북향으로 지은 터라 낮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이 거실에서 황래하 씨(71)는 전기장판을 깔고 잠을 청한다. 혹시 북에 계신 어머니가 오늘은 꿈에 나타날까 하고.

18일 오후 인천 강화군 창후리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20여 분. 작은 섬 교동도에서 만난 황 씨는 “방이 어두워야 창밖이 잘 보인다”며 켰던 불을 다시 껐다.

“그땐 금방 평화(종전)가 온다고 그랬지.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1950년 7월. 열 살이었던 황 씨는 부모 형제 8명과 함께 목선을 타고 황해도 연백리에서 이곳 교동도로 넘어왔다. 급하게 넘어온 터라 살림살이가 없었고, 며칠 뒤 어머니가 누나와 여동생을 데리고 “마당에 묻어둔 놋그릇을 들고 오겠다”며 다시 목선을 타고 황해도로 넘어갔다. 막내아들 황 씨의 머릿속에 40대 초반으로 기억된 어머니의 모습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저기 보이는 산이 봉화산이에요. 저기 동상 보이는 곳이 예전에 우리 집 밭이 있던 곳이고….” 황 씨와 교동면 서한리 망향대에 올랐다. 3.3km 떨어진 북한 땅이 눈에 들어왔다. 황 씨는 손가락으로 척척 가리키며 북한 땅을 설명했다.

“추운데 왜 여기 나와 계세요.” 황 씨에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가수 현미 씨와 개그맨 남희석 씨, 연기자 박선영 씨,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방송인 브로닌 씨였다. 이들은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황 씨를 찾아왔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는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이산가족들을 직접 방문해 북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물품 등을 모아 ‘소망의 전당’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특별 게스트인 현미 씨 역시 열세 살 때 대동강을 건너 피란 온 뒤 1998년 북한에 있는 여동생과 상봉한 바 있다.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마다 종종 망향대에 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겠지만….” 현미 씨는 뒤돌아 눈물을 훔쳤다.

황래하 씨는 ‘혹시 북에 계신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2002년 북향으로 집을 지었다. 그는 매일 이 창쪽으로 머리를 두고 잠을 잔다. 강화=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황래하 씨는 ‘혹시 북에 계신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2002년 북향으로 집을 지었다. 그는 매일 이 창쪽으로 머리를 두고 잠을 잔다. 강화=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황 씨의 품에서 편지 한 통이 나왔다. 간밤에 적은 두 장 분량의 ‘어머니 전 상서’. 박선영 씨가 대신 읽었다. “어머니, 잃어버린 지 60년이 되다 보니 막내 래하는 지쳤습니다. 고향이 지척인데….” 박 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브로닌 씨의 코가 빨개지고 남 씨도 울음을 참으려는 듯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브로닌 씨는 “고향이 바라보이는데도 엄마와 가족이 멀리 있다는 말에 가슴이 아프다”며 눈가를 훔쳤다.

“실향민은 점점 나이가 들어 가는데, 북에 있는 가족들에게 이렇게라도 마음을 전할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지…”(현미 씨), “이 방송을 통해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휘둘리지 않고 북에 있는 가족들과 서신이라도 주고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남희석 씨).

출연진은 망향대를 내려와 황 씨 집을 방문했다. 분위기를 바꿔 동네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노래마당과 게임이 벌어졌다. 황 씨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놀아봤다. 이곳까지 찾아와줘 고맙다”며 활짝 웃었다. 1970년대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교동 마을시장의 모습과 황 씨의 이야기, 마을 사람들이 어우러진 즐거운 저녁 한때의 모습은 다음 달 3일 오후 6시 40분 채널A에서 처음 방송된다.

강화=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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