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차가 시속 200km?… 평가 반영하자 ‘5분내 도착’ 허위보고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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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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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진압의 관건은 소방차의 신속한 출동이다. 소방당국이 ‘5분 내 도착’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방방재청이 집계한 전국의 소방차 ‘5분 내 현장 도착 비율’은 56∼97%. 통계가 사실이라면 매우 양호한 셈이다.

하지만 보통 17km 정도인 화재 현장에 도착하는 데 5분밖에 안 걸렸다면 이는 사실이기 어렵다. 시속 200km 이상으로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상당 부분의 소방차 도착시간이 실제보다 앞당겨져 허위 보고된 것으로 드러났다. 전남지역은 평균 시속 205km 속도로 달렸다고 하는 등 대부분의 농촌 지역에서는 시속 100km 이상의 속도로 달려 현장에 도착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소방차는 물과 사다리 등 중장비를 실은 대형차이기 때문에 탁 트인 직선 도로에서도 시속 80km 이상을 내기 어렵다. 신호등과 사거리, 교통정체가 심한 도시라면 속도를 내기란 더욱 어렵다.

현장에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멀리서 화재 현장의 연기만 보이면 화재 현장 도착으로 보고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런 허위보고는 소방방재청이 ‘출동 5분 내 도착’을 소방서 평가에 반영하면서 더 심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 농촌 소방차 시속 100km 이상 밟아 도착한 셈 ▼

○ 소방차 시속이 200km?

소방방재청이 14일 한나라당 유정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남지역 소방서에서 5분 내에 현장에 도착했다고 보고한 것은 모두 1146건. 평균 출동거리는 17km였다. 이 거리를 5분 만에 도착했다면 단순 계산으로도 소방차가 경주용 자동차처럼 평균 시속 205km로 달렸다는 얘기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평균 출동거리가 12.9km와 12km인 강원과 충북은 5분 내에 도착하기 위해 각각 시속 156km, 시속 144km로 달린 셈이다. 16개 광역시도 중 100km 이상으로 달린 곳은 이외에도 경북(141km), 충남(119km), 전북(107km), 경남(107km), 제주(105km) 등 8곳에 이른다. 도착시간은 최초 신고에서 현장 도착까지 걸린 시간. 통상 신고 받고 소방차가 출동하기까지는 1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소방방재청 기록대로라면 이보다 훨씬 빨리 달렸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시속 60km로 달릴 경우 5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5km 안팎에 불과하다. 하지만 8개 지역의 출동거리는 8.7∼17km로 사실상 5분 내 도착이 불가능한 거리. 이들 소방서는 전체 출동의 56∼82%를 5분 안에 도착했다고 보고했다.

이처럼 허위보고가 잦은 것은 ‘5분 내 도착’이 소방서 평가에 주요 항목으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소방방재청은 지난해 초 ‘화재와의 전쟁’을 천명하며 이 규정을 도입했다. 지방의 한 소방서장은 “5분 내 도착 여부는 외부에서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멀리서 연기만 보여도 일단 도착했다고 보고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편 평균 출동거리가 3.3km인 서울은 소방차 평균 시속이 40km였다. 대전이 시속 47km, 광주 51km, 대구 53km 등 출동거리가 짧은 대도시는 소방차가 시속 40∼50km로 달린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출동을 준비하는 데 통상 1분이 걸리고 또 도심 교통상황이 시골보다 혼잡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역시 상당히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있다.

○ “인프라 그대론데….”

5분 내 도착을 평가에 반영하다 보니 출동거리가 멀 경우 일부 소방관은 출동 때마다 목숨을 걸고 운전하게 된다고 토로하고 있다. 올 1월 경기 연천군에서는 출동 소방차가 앞 차를 추월하다 옆 차와 부딪쳐 여러 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기 과천시에서도 지난해 10월 교차로에서 소방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우회전을 하다 전복되는 사고가 있었다. 소방차 교통사고는 2008년 224건, 2009년 334건, 지난해 370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소방당국의 ‘5분 내 도착’을 점수화한 이유는 화재 발생 5분쯤 뒤 불길이 순식간에 확산되는 ‘플래시 오버(flash over)’가 일어나 빠른 출동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 의원은 “화재 조기 진압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제도 개선 없이 실적만 압박하는 것은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뉴욕과 일본 도쿄의 경우 현장 도착시간을 7분으로 권고하고 있지만 이를 업무평가에 반영하지는 않고 있다. 그 대신 소방파출소가 서울보다 2, 3배 많고 소화전도 2배 이상 촘촘히 배치돼 있는 등 소방 인프라 확충에 주력하고 있다. 뉴욕과 도쿄의 소방당국이 출동 도착시간을 명시하지 않고도 화재 관리를 잘할 수 있는 것은 소방인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세 도시의 인구는 비슷하지만 서울 소방인력은 5700명 수준으로 뉴욕의 1만7000명, 도쿄의 1만8000명과 비교해 3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윤명오 서울시립대 방재연구센터 교수는 “우리는 소방서가 적고 소화장비도 부족하다 보니 소방관들에게만 무조건 빨리 도착하라고 등을 떠미는 것”이라며 “스프링클러 등 자동소화설비를 충분히 갖춰 소방차에만 의존하지 않는 화재 대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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