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다함께/2부]<4>한국어-모국어 교육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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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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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서툰 어머니가 교육… 한국어 부진이 학습부진으로

《 7일 오후 강원 원주시의 한 중학교 도서관. 이 학교 2학년인 다문화가정 자녀 박모 양(15)을 위한 별도의 한국어 수업 시간이다. 박 양의 한국어 실력이 늘지 않자 학교 측이 지역 아동발달센터를 통해 한국어 교육을 시키는 것. 이날 수업 교재는 ‘심청전’이었다. 박 양이 심청전을 읽으며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이나 단어를 표시해 두면 언어치료사가 이를 설명해 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박 양은 동냥젖, 오막살이, 삯바느질, 패물 등의 단어에 밑줄을 그었다. 》
○ 한국어 안 되면 학업 흥미 잃어

중도입국한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충북 청원군 오창면의 비인가 대안학교인 새날학교에서 10대 청소년들이 받아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 청원=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중도입국한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충북 청원군 오창면의 비인가 대안학교인 새날학교에서 10대 청소년들이 받아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 청원=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박 양처럼 한국어가 또래에 비해 부진한 다문화가정 자녀가 적지 않다. 어릴 적부터 외국인 어머니와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니 생긴 현상. 박 양 역시 중국인 어머니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날 수업에서 “개의 새끼를 뭐라고 하죠?”라는 질문에 박 양은 “개새끼”라고 답했다. 언어치료사가 어떤 단어에 대해 설명하면 이를 맞히는 방식에서도 박 양은 쉽게 정답을 말하지 못했다.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호기심), 아버지 형의 자녀(사촌), 필요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요구)…. 언어치료사가 평가한 박 양의 한국어 수준은 또래에 비해 3년 정도 늦다. 박 양은 영어를 제외한 대부분의 과목 성적이 하위권이다.

원주시 모 초등학교에 다니는 다문화가정 자녀 곽모 군 형제도 매주 수·목요일 별도의 한국어 교육을 받는다. 2일 오후 2학년인 동생 곽 군(9)의 수업 시간. 언어치료사가 “직업이 뭔지 알아요” 하고 묻자 곽 군은 “돈을 넣을 때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갑’으로 잘못 알아들은 것. 직업에 대해 설명한 뒤 “어떤 직업들이 있을까요”라고 묻자 곽 군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선생님, 경찰, 의사 등 직업에 대해 나열하자 그때야 곽 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문화가정 자녀는 유아기에 한국어가 서투른 어머니에게 교육을 받기 때문에 언어 발달이 늦어진다. 결혼 이민 여성 대부분이 자녀 교육에 관심이 크지만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지는 못한다. 문제는 한국어 부진이 다른 과목의 학습 부진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의사소통에는 무리가 없지만 한국어 어휘력이 떨어지다 보니 교과서의 문장 이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언어치료사 장윤미 씨는 “한국어가 안 되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해 풀기가 어렵기 때문에 성적이 떨어지고 자연스럽게 학업에 흥미를 잃게 된다”며 “심한 경우 정서 불안정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언어는 시기를 놓치면 따라잡기가 어렵기 때문에 한국어가 부진한 다문화가정 자녀는 어릴 적부터 별도의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같은 학생들에 대한 실태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다 이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학교별로 방과후 수업을 통해 별도 학습이 진행되지만 부진한 과목을 중심으로 진행돼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한편에선 다문화가정 부모들의 소극적인 태도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금숙 강원도교육청 장학사는 “부모들이 다문화가정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며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재용 진주교대 교수(국어교육과)는 “다문화가정 자녀는 미숙하고 어눌한 말투와 더듬거리는 글 읽기로 친구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받을 수도 있다”며 “이들을 위한 원활한 한국어 습득과 한국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사각지대에 놓인 중도입국 자녀들


“자, 이제부터는 받아쓰기를 해볼까. 비행기 공장, 떡 공장, 카메라 공장….”

8일 오후 충북 청원군 오창면의 새날학교(교장 곽근만 목사) 2층 한국어 고급반 교실. 수업을 맡고 있는 영어교사 출신의 최찬소 씨(58)가 단어를 말하자 10여 명의 남녀 청소년이 일제히 공책에 한 단어씩 받아 적기 시작했다. 최 교사가 20여 개의 단어를 부른 뒤 채점이 시작됐다. ‘O’(정답)와 ‘X’(오답)가 나올 때마가 환호성과 아쉬운 탄식이 연방 교차했다.

이 학교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위한 비인가 대안학교다. 11∼22세의 20여 명이 한국어 위주의 수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보통의 다문화가정 자녀들과 다른 ‘중도 입국 자녀’. 중도 입국 자녀는 한국인 남자와의 재혼으로 이주한 외국인 여성이 5∼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본국에서 데려온 자녀를 말한다. 현재 이곳에는 중국과 필리핀, 몽골, 러시아 등에서 온 중도 입국 자녀들이 짧게는 1∼2개월, 길게는 2년 가까이 무료로 공부하고 있다.

이 학교 곽 교장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는 이들과 같은 중도입국 자녀가 2만여 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곽 교장은 “정확한 실태를 알 수 없지만 몇 년 전부터 급속히 늘고 있다”며 “그러나 이들을 위한 교육기회 제공은 소수를 제외하고 사실상 전무한 상태”라고 말했다. 현재 전국에 중도입국 자녀를 위한 교육시설은 2, 3곳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초 교육부터 받아야 하지만 일단 입국 뒤 나이에 맞춰 학교에 들어가다 보니 적응을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4년 전에 중국에서 온 조몽미 양(18)은 입국 뒤 고교에 들어갔지만 한 달도 안 돼 그만뒀다. 조 양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보니 학교에 다니는 게 의미가 없어 학교를 나왔다”고 말했다. 대신 입소문을 듣고 이 학교에 들어와 ‘가 나 다 라’부터 배우기 시작했고, 이제 듣고 이해하는 데는 큰 불편이 없게 됐다. 그는 “조금 더 실력이 나아지면 한국어 능력 시험도 보고, 검정고시도 볼 계획”이라며 “우리 같은 중도입국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시설과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학교도 사정은 열악하다. 소문을 듣고 입학을 문의하는 학생은 많지만 모두 수용할 형편이 안 된다. 지금의 건물도 딱한 사정을 들은 가수 인순이 씨가 무료 콘서트를 해 기탁한 돈과 개인 후원자 등의 도움으로 10년간 임대했다. 교사는 상근 6명과 비상근 5명인데 사실상 무보수나 다름없다. 3월에 충북도교육청에 정식 인가를 신청했지만 주변에 경매에 넘어간 모텔이 있는 등 여건도 좋지 않다.

곽 교장은 “한국의 초중고교생들이 외국에 유학 갔다가 적응을 하지 못해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경우가 많지 않냐”며 “한국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 자녀 못지않게 이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 “엄마나라 말 배우며 엄마나라 이해해요”▼
청주 ‘해피레인보우스쿨’

충북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해피레인보우스쿨’에서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엄마 나
라의 말과 문화를 배우고 있다. 충북이주여성인권센터 제공
충북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해피레인보우스쿨’에서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엄마 나 라의 말과 문화를 배우고 있다. 충북이주여성인권센터 제공
“아이들이 한국말을 잘 못하게 될까봐 집에서 일부러 일본말을 안 쓰고, 안 가르쳐줬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잘못 생각한 것 같네요. 얼마 전부터 ‘엄마 나라’ 말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이 정말 재미있어 하더군요.”

충북 청주시에 살고 있는 결혼이주 여성인 아라이 유키 씨(44). 한국 생활 14년째인 그녀는 두 아들 수훈(11·초등 5년)이와 수길(8·초등 3년)이가 요즘 들어 일본 문화와 말에 대해 물을 때마다 흐뭇해진다. 엄마 나라에 대해 관심이 없을 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부터 놀이나 음식 문화 등 일본과 관련된 다양한 질문을 수시로 쏟아낸다.

아라이 씨의 아이들이 엄마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다문화학교인 ‘해피레인보우스쿨’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사단법인 충북이주여성인권센터가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3월 26일 문을 연 이 학교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대상으로 ‘엄마 나라’를 교육하기 위한 배움터다. 한국말이 서투른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위한 정규 혹은 비정규 교육시설은 많지만 결혼이주 여성의 모국에 대해 가르치는 곳은 전국에 전무한 실정이다.

수업은 다국어 교실과 동아리 활동으로 진행된다. 다국어 교실은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반이며 청주에 살고 있는 결혼이주 여성들이 직접 가르친다. 동아리 활동은 태권도반, 축구반, 다문화체험 수업, 공예반 등으로 이뤄졌다. 학생 대부분이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반부터 오후 5시까지 교실 및 야외수업으로 진행된다.

당초 정원은 60명으로 시작할 계획이었지만 현재 78명이 수업을 듣고 있다. 한국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참여하기 때문이다. 전체 학생의 3분의 1가량이 부모가 한국 사람이다. 고은영 센터장은 “다문화가정과 한국 가정 자녀의 통합교육을 통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용준 군(10·초등 4년)은 “많은 다문화가정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외국말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다양한 나라의 문화도 알 수 있어 정말 좋다”고 말했다. 김병우 교장(54)은 “예전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다문화가정 자녀들에게 우리말과 문화에 무조건 적응시키고 동화시키는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며 “다문화가정 자녀가 (엄마 혹은 아빠 나라의) 모국어 교육을 통해 자아정체성과 문화적 주체성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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