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다함께]경북 문경 ‘베트남 새댁’ 양선아 씨 여섯 식구의 친정 나들이 따라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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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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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자, 얼굴 좀 보자” 폐암 할아버지 눈물 뚝뚝

2년 5개월 만에 고향을 찾은 양선아 씨의 가족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위). 11일 새벽 베트남 고향집에 도착한 양 씨는 날이 밝자마자 아버지와 함께 2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묘소를 찾았다. 동나이=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2년 5개월 만에 고향을 찾은 양선아 씨의 가족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위). 11일 새벽 베트남 고향집에 도착한 양 씨는 날이 밝자마자 아버지와 함께 2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묘소를 찾았다. 동나이=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레팡라이 씨(69)는 말없이 손자 발만 만졌다. 볼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11일 오전 2시 반(현지 시간) 베트남 동나이 현 권띤 야칸 마을. 폐암 투병 중인 레팡라이 씨는 힘든 줄도 모르고 한국으로 시집 간 딸과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막내 손자를 기다려왔다. 하지만 막상 딸과 손자를 보니 말문이 막혔다. 딸을 본 건 2년 5개월만이지만 첫 손자의 얼굴을 본 건 처음이었다.

양선아 씨(31·여)는 그런 아버지를 조용히 바라만 봤다. 한국으로 귀화하기 전 그의 이름은 레티미뚱. 그의 뺨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국에서 17시간 걸려 새벽에 도착한 고향집에서는 아버지와 형제들이 밤도 잊고 양 씨 가족을 맞이했다. 100여 가구가 모여 있는 야칸 마을에는 어둠이 짙게 깔렸으나 가족들이 반갑게 상봉한 양 씨 집에서만 불빛이 흘러나왔다.

○ 17시간 여정 끝에 도착한 고향


10일 오전 11시. 양 씨의 남편 우갑구 씨(47)는 자신의 1t 트럭에 가족들을 태웠다. 양 씨와 윤화(7·여), 윤정(6·여), 윤희(4·여)를 비롯해 막내 상수(1)까지 가족 6명은 경북 문경시 가은읍을 출발해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분홍 체크무늬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양 씨는 새로 산 빨간색 스니커즈를 신고 나왔다. 신발에는 미처 떼지 못한 사이즈 표시 스티커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우 씨는 부인이 만들어 준 두건을 쓴 채 하늘색 셔츠 단추를 두 개나 풀어 한껏 멋을 냈다.

2009년 2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셋째 윤희와 허겁지겁 베트남을 다녀왔으니 2년 5개월 만에 다시 찾는 고향이었다. 라면 다섯 박스와 김치, 초코파이 등을 트럭에 싣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양 씨는 “눈을 감았다 딱 뜨면 바로 베트남에 도착해 있으면 좋겠다”며 “출발시간이 왜 이렇게 더디게 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베트남 호찌민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이날 오후 10시 반. 공항 밖에는 언니와 오빠, 형부 등 가족 12명이 양 씨를 기다렸다. 양 씨가 1남 11녀 중 여섯째이니 형제들과 그 가족까지 합치면 12명도 많은 편은 아니었다. 가족들은 호찌민에서 150km 정도 떨어진 동나이 현 권띤에서 승합차를 빌려 공항으로 마중 나왔다.

10인승 승합차에는 양 씨의 가족과 운전사까지 19명이 꽉꽉 들어찼고 양 씨는 쉴 새 없이 베트남어로 언니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호찌민 시에서 정원 초과로 공안 단속에 걸렸을 때에도 양 씨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다음 날 양 씨는 눈이 충혈되고 목도 쉬었다. 밤새워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한숨도 못 잤단다. 양 씨는 돼지를 잡아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 뒤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 묘지를 찾았다. 양 씨는 “오리며 닭, 돼지 등을 키워 12남매를 기른 어머니가 고생만 하다…”라며 말끝을 흐렸다.

어머니 묘지에서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던 그였지만 이내 씩씩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저녁에는 한국에서 준비해 온 재료로 김치찌개와 미역국을 끓여 아버지께 드렸고, 이튿날에는 집 근처 수이머 강으로 난생처음 아버지와 나들이도 다녀왔다. 남편 우 씨는 몸이 불편한 장인을 업고 수이머 강변을 거닐었다.

○ “고향 그리워도 아이들 잘 키울 것”

양 씨는 2003년 한국으로 처음 시집을 왔을 때 눈앞이 캄캄했다. 말도 안 통하고 음식도 입에 안 맞았다. 양파링과 새우깡으로 끼니를 때운 적도 있었다. 간장에 후추를 쳐서 반찬 삼아 밥을 먹었다. 목소리 큰 시어머니는 무서웠고 농사일은 적응이 안 됐다. 보리 파 등을 잡초인 줄 알고 한 무더기씩 뽑아 놓았다. 베트남에 가고 싶어 밤늦게까지 내내 울기만 하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 양 씨의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잘 키워야 했다. 혹시라도 엄마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을까 봐 2009년에는 귀화도 했다.

한 번에 700만 원 정도 드는 고향 방문 비용이 연 소득 2000만 원 수준인 양 씨 가족에겐 큰 부담이다. 언제 다시 고향에 올지 기약도 없다. 이번에는 농협문화복지재단(이사장 최원병)의 ‘농촌 다문화가정 모국방문사업’의 지원을 받아 온 가족이 베트남에 올 수 있었다.

24일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양 씨는 이번에는 친정 식구들과 헤어질 때 울지 않을 작정이란다. 양 씨는 “고향이 그립겠지만 나는 엄마이고 한국에도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어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며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면서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 농협 장학생 등 25명 동행 봉사활동 ▼

베트남 동나이 현 권띤 딴뚱초등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펼친 정혜진 씨(왼쪽)가 베트남 학생들과 함께 만든 손수건을 펼쳐 보이고 있다. 동나이=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베트남 동나이 현 권띤 딴뚱초등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펼친 정혜진 씨(왼쪽)가 베트남 학생들과 함께 만든 손수건을 펼쳐 보이고 있다. 동나이=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양선아 씨의 고향인 베트남 동나이 현 권띤에서는 한국에서 찾아온 대학생 봉사단이 봉사활동을 펼쳤다. 농협문화복지재단 장학생 10명과 고려대 사회봉사단 소속 대학생 15명이 8일부터 13일까지 양 씨 고향 마을에 있는 딴뚱초등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한 것. 학생들은 학교 시설을 보수하고 지역 주민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각종 교육, 문화 활동 등을 벌였다.

학생들은 화석 만들기, 태양열 자동차 만들기 등 교육 활동과 더불어 학교 벽에 페인트 칠을 새로 해주고, 낡은 책상도 바꿔줬다. 문화 혜택을 누리기 힘든 베트남 시골 어린이들을 위해 초등학교 교실에서 각종 만화영화 등을 상영했다. 학교 벽에는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를 상징하는 벽화도 그렸다. 봉사 마지막 날인 13일에는 마을 사람들을 초청해 전통혼례, 난타 등의 공연을 선보이고 음식도 대접하며 마을잔치를 열었다.

학생들이 베트남에 가기 전에 2주일 넘게 밤을 새우며 준비한 만큼 반응도 좋았다. 봉사단 버스가 학교에 도착하기 전부터 매일 동네아이들 60여 명이 아침부터 학교로 나와 봉사단을 기다렸을 정도다. 마지막 날 잔치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을 주민 150여 명이 학교를 찾아 함께 어울렸다.

이번 봉사활동에 참가한 정혜진 씨(22·여·연세대 3년)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막연히 가졌던 인종 편견 등을 버릴 수 있었다”며 “한국에 가서도 아이들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매이 고려대 사회봉사단 단장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은 학교에서 쉽게 배울 수 없는 사회와의 소통을 배울 수 있고, 현지에서 한국의 이미지도 높일 수 있어 학생들에게 뜻 깊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나이=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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