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전체가 예술’ 베네치아, 주민 1인당 관광수입만 年1000만원[양정무의 미술과 경제]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1일 2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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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에 웃고 우는 베네치아
십자군 원정때 약탈-무역 독점… 막대한 부 쌓아 건축-미술 발전
도시 인구 25만명밖에 안되는데… 관광업의 GDP 기여액 2.5조원
“방문객 너무 많아 도시입장료”… 당일치기 관광객에 5유로 부과

《‘오버 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던 베네치아가 결국 도시 입장료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관광 성수기인 4월 25일부터 7월 14일까지 주말과 공휴일에 방문하는 당일치기 관광객에게 하루 5유로씩 부과하고, 내년부터는 이를 더 확대할 예정이라 한다. 숙박 시설을 이용할 경우 숙박료 안에 관광세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별도로 도시 입장료는 내지 않아도 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세계 각국에서 밀려오는 관광객으로 막대한 관광 수입을 올리면서도 ‘오버 투어리즘’ 몸살을 앓고 있다. 이에 
4월 25일부터 당일치기 방문객에게 도시 입장료 5유로(약 7400원)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5유로 지폐에 산마르코 성당과 
광장의 전경을 합성한 모습.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세계 각국에서 밀려오는 관광객으로 막대한 관광 수입을 올리면서도 ‘오버 투어리즘’ 몸살을 앓고 있다. 이에 4월 25일부터 당일치기 방문객에게 도시 입장료 5유로(약 7400원)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5유로 지폐에 산마르코 성당과 광장의 전경을 합성한 모습.
오늘날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북부의 관광도시에 불과하지만, 오랜 기간 독립적인 국가를 유지하면서 지중해 해상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누렸던 곳이다. 길게 보면 로마제국이 몰락하는 5세기부터 나폴레옹 군대에 의해 도시가 함락하는 1797년까지 1400년 가까이 되는 기간이다. 특히 4차 십자군 전쟁이 시작하는 1201년부터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해군을 레판토 해전에서 격퇴하는 1571년까지 400년간 유럽 최강국 중 하나였다. 이 시기 베네치아 본토 섬뿐만 아니라 오늘날 베네토로 알려진 이탈리아 동북부 지역과 동지중해의 요충지를 지배하는 해상제국을 건설했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근대 유럽 역사에서 가장 먼저 해상무역을 통해 일류 국가를 건설한 베네치아는 17세기 네덜란드나 18∼19세기 영국의 롤모델이었다. 당시 영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존 러스킨은 베네치아의 도시를 답사하고 “위대한 국가는 세 권의 자서전을 쓴다. 한 권은 행동, 또 한 권은 글, 나머지 한 권은 미술이다. 어느 한 권도 나머지 두 권을 먼저 읽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중 미술이 가장 믿을 만하다”라며 특히 베네치아의 미술을 높게 평가했다. 그의 선언은 과장이 아니다. 실제 베네치아 도시 자체가 예술이기 때문이다.

베네치아 화가들은 도시의 아름다움을 대형 화면에 담아 자랑했다. 젠틸레 벨리니가 1496년에 완성한 ‘산마르코 광장의 행진’이라는 그림도 폭 7.5m, 높이 3.7m의 대작이다.

종교단체가 성물을 들고 광장을 행진하면서 많은 사람이 등장하지만, 사실 이 그림의 진짜 주인공은 배경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산마르코 성당이다.

산마르코 성당에 이르렀으니 이제 이 도시의 운명을 가른 4차 십자군 원정에 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산마르코 성당을 장식하는 화려한 유물과 조각상이 바로 제4차 십자군 원정 때 가라는 성지는 안 가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해 함락시키고 가져온 약탈품들이다. 베네치아는 당시 원정으로 가장 큰 이득을 봤다. 영토와 재물을 얻은 것은 물론 지중해의 무역권까지 독점했다.

이런 부를 바탕으로 베네치아는 르네상스 건축과 미술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지금 우리가 관람하는 도시 전체의 예술적 풍모는 그때 완성됐다.

사실 베네치아는 독특한 자연환경 때문에 일찍부터 많은 사람이 관광하고 싶어 하는 곳이었다. 갯벌 같은 낮은 땅을 돋우어 만든 도시가 베네치아다. 정확하게는 진흙 갯벌 위에 수백만 개의 나무 말뚝을 박고 잡석을 다져 넣어 땅을 돋운 인공섬이다. 야코포 데 바르바리가 1500년에 기획한 ‘베네치아 전도’는 폭 280cm, 높이 135cm로 크기도 압도적이고 여기에 어마어마한 디테일로 도시의 골목길까지 상세히 담는다. 놀라운 것은 오늘날 모습과도 별 차이가 없어 요즘 베네치아 사람들도 이 판화에서 자기 집을 찾아낼 정도라고 한다.

베네치아 공화국이 사라진 뒤에도 도시와 예술은 남아 이곳 사람들을 상업적으로 먹여 살렸다. 하지만 시에 따르면 지난해 관광객은 2000만 명에 이른 반면, 도심 인구는 1951년 17만5000명에서 최근 4만9000명 미만으로 줄었다. 문화재를 지킬 사람은 줄고 관광객이 주인 도시가 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유네스코는 베네치아를 세계문화유산 위험 구역으로 권고했다.

고심 끝에 고안한 입장료가 오버 투어리즘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입장료가 시행된 첫 11일(4월 25일∼5월 5일) 동안 시는 총 97만7430유로(약 14억 4800만 원)를 번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베네치아 여행, 관광 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 연간 2조4700억 원대(2022년 기준) 기여를 할 정도로 이 도시의 관광 수입은 막대하다. 거주민(25만여 명) 1인당 연간 1000만 원의 관광 수입을 올리는 셈이다. 상업의 도시 베네치아가 단순히 돈벌이를 위한 관광의 도시로 보일까 걱정스러운 마음도 든다. 베네치아의 과거를 존중하는 미술사학자로서 5유로의 도시 입장료가 베네치아의 진입을 막는 장애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왕이면 베네치아를 더 많이 배우고 느끼게 하는 학문적 오기의 자극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가져 본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관광객#베네치아#오버 투어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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