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CBS방송 자회사인 애리조나 주 피닉스의 민영방송 KPHO-TV는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미군기지 캠프 캐럴(칠곡 기지)에 복무한 적이 있는 스티브 하우스 씨 등 주한미군 3명의 증언을 소개하며 “주한미군이 1978년 왜관 미군기지에 고엽제로 쓰이는 독성물질이 담긴 드럼통 250개를 땅에 묻었다”고 13일 보도했다. 이들은 이후 만성관절염과 청각장애 등을 겪었으며 이 중 한 명은 큰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캠프 캐럴은 1960년 5월 왜관읍 왜관리 일대에 만들어진 미군기지다.
캠프 캐럴에서 중장비 기사로 복무했다는 하우스 씨는 인터뷰에서 “1978년 어느 날 (기지에) 도시 한 블록 규모의 땅을 파라는 명령을 받았다”며 “위에선 그저 뭔가 폐기할 게 있다고만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파묻은 물질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밝은 노란색 또는 밝은 오렌지색 글씨가 적힌 55갤런(약 208L)짜리 드럼통이었다. 일부 드럼통에 ‘베트남 지역, 컴파운드 오렌지(Province of Vietnam, Compound Orange)’라고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컴파운드 오렌지’란 미군이 베트남전쟁에서 밀림을 제거할 때 사용한 강력한 제초제인 ‘고엽제’를 말하는 것이다.
하우스 씨는 현재 고엽제 후유증으로 알려진 당뇨병과 신경장애를 앓고 있다고 했다. 그는 “최근 중대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며 “하지만 간 상태가 좋지 않아 수술을 받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방송은 하우스 씨와 함께 이곳에서 복무한 로버트 트라비스 씨의 증언도 소개했다. 그의 증언도 하우스 씨와 일치했다.
현재 웨스트버지니아에 살고 있는 트라비스 씨는 “창고에는 약 250개의 드럼통이 있었다”며 “여기에 ‘에이전트 오렌지 화학물질(chemicals type Agent Orange)’ ‘1967년 베트남’이라고 써 있었다”고 밝혔다. ▼ “드럼통 묻을 때 고엽제 새나와” “정화하는데 50년 걸릴 것” ▼
그는 “드럼통을 일일이 손으로 밀어 창고 밖으로 갖고 나왔다”면서 “드럼통에서 새나온 물질이 묻어 온몸에 붉은 반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땅에 묻은 그 물질은 여전히 그곳에 묻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 후 건강이 악화됐다며 현재 목과 등뼈에 관절염을 앓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병사 출신 리처드 크래머 씨는 “드럼통을 땅에 묻고 다리가 마비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드럼통을 묻은 뒤 밤새도록 발이 부어올라 걸을 수가 없었다”며 “이후 군 병원에서 두 달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주한미군이 잘못했다면 모두 깨끗이 청소하고 이에 연루됐던 군인들을 치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은 이들의 증언을 전하면서 캠프 캐럴 미군기지 주변에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 영향을 끼쳤을 여지도 배제하지 않았다. 환경공학을 전공하는 피터 폭스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당시 매장된 화학물질에 오염된 지하수를 관개에 이용했다면 오염물질이 음식 재료에 들어갔을 수도 있다”고 했다. 폭스 교수는 “유일한 방법은 물을 다 뿜어 올려 정화하는 것밖에 없다”며 “하지만 이렇게 하려면 50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이날 열린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환경분과위원회에서 미군 측에 사실 확인을 촉구한 결과 “현재 미군이 과거 이력 등 관련 자료를 조사 중이며 현재까지는 해당 기록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향후 미군과 고엽제 관련 상호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며 “20일까지 조사 계획을 수립하고 캠프 캐럴 주변 지역에 대한 환경 영향 조사를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주한 미8군사령부는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한지를 결정할 것이며 조사가 필요하다면 반드시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8군사령부 공보관인 제프 부치카우스키 중령은 이날 e메일 보도자료에서 “(보도 내용에 대한) 관련 증언을 구체화할 수 있는 기록이 있는지 파악하는 한편 환경전문가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칠곡=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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