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싸움 말린 사람을 기소… 황당한 檢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12일 03시 00분


인적사항 착각 실수… 무죄선고… 싸운사람들도 “가담안해” 진술

지난해 7월 23일 밤 이모 씨(56)는 채모 씨(50) 등 직장동료들과 함께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들이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자 근처에서 술을 마시다 신경이 거슬린 김모 씨(28)가 다가와 “시끄럽다. 조용히 하라”고 시비를 걸었다.

나이가 한참 어린 김 씨의 말에 화가 난 채 씨는 김 씨의 멱살을 잡고 일어섰다. 채 씨는 김 씨를 밀고 당기다 머리로 얼굴을 들이받아 김 씨의 이를 부러뜨렸다. 김 씨도 이에 대응해 채 씨와 싸웠다. 싸움이 커지자 이 씨는 이들을 말리며 둘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채 씨와 김 씨를 연행했지만 이들은 순찰차 안에서도 주먹다짐을 했다.

사건을 송치 받은 서울중앙지검은 채 씨와 김 씨를 약식기소하기로 하고 싸움을 말린 이 씨에 대해서는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려 했다. 그러나 수사검사는 피의자들의 인적사항을 착각해 채 씨와 이 씨를 공동상해 혐의로 약식기소하고 김 씨를 기소유예 처분했다.

억울하게 기소된 이 씨는 이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8단독 이관용 판사의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이 씨는 “단순히 싸움을 말리기 위해 밖으로 끌고 나갔을 뿐 폭행에 가담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채 씨도 “이 씨는 싸움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했고, 김 씨 역시 “이 씨가 내 몸을 손으로 잡아 밀쳤지만 말리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채 씨에게는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지만 “이 씨가 김 씨를 고의로 폭행했다는 공소사실은 증거가 없다”며 이 씨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고 11일 밝혔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경찰이 이 씨도 김 씨를 밀고 당겼다고 조서에 기록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했기 때문에 이 씨를 기소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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