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현직교사-딸 문제유출 의혹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2일 03시 00분


영어선생님 딸에게 영어과외 받았다
35점이 한달만에 83점으로 올랐다

사진은 기사와 상관 없음. 동아일보DB
사진은 기사와 상관 없음. 동아일보DB
현직 고등학교 교사가 자신의 학교에 다니는 학생을 상대로 과외교습을 하는 딸에게 학교 시험문제를 유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1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잠실동 Y고 3학년에 재학 중인 A 양은 지난해 상반기 이 학교 영어교사의 딸인 대학원생 조모 씨에게서 과외를 받은 뒤 학기말 영어시험에서 85.8점을 받았다. 지난해 1학기 중간고사에서 받은 56.8점보다 29점이나 오른 것. 과목 석차 역시 186등에서 41등으로 뛰어올랐다.

점수에 만족한 A 양은 친한 B 군에게 조 씨를 소개했다. 지난해 9월부터 조 씨에게서 과외를 받은 B 군 역시 한 달 뒤 치른 2학기 영어 중간고사에서 1학기 중간고사에서 받은 35.5점보다 무려 50점 가까이 오른 83점을 받았다. 과목 석차는 전교 300등에서 71등으로 올랐다.
시험문제-과외내용 ‘판박이’… 학교측 “우연의 일치일 뿐” ▼
문제제기 교사 담임직 박탈


조 씨가 과외수업 때 골라준 문제가 학교시험에서 그대로 나오자 이상하게 여긴 B 군은 학교 측에 이를 알렸다. B 군은 학교 측에 “문제가 유사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과외선생님이 학교 영어 선생님과 함께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게 됐다”며 “알고 보니 모녀 사이라 시험문제를 미리 빼내준 것 아닌가 의심했다”고 말했다. B 군의 부모는 “조 씨가 학교 교사 딸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고 심지어 이름도 가명을 써서 상상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영어 시험문제의 사전 유출 의혹을 제기하자 문제를 냈던 2학년 영어교사 4명이 직접 해당 학생의 과외 교재와 공책을 분석했다. 그 결과 ‘영어1’ 과목 24문항 중 21문항, ‘심화영어회화’ 과목 17문항 중 14문항이 문제 유출을 강하게 의심할 만큼 매우 비슷한 것으로 분석됐다.

서술형 문제의 정답 3개가 그대로 공책에 적혀 있는가 하면 학교 교사가 창작한 지문에서 출제한 문제의 정답도 학생들 공책에 과외교사 필체로 적혀 있었다. 당시 교사들은 “서울시교육청에서 권장하는 창의력 개발 유형의 문제를 다수 출제했기 때문에 이런 식의 ‘족집게 과외’는 사전 유출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학교에 진상 파악을 요구했다. 조 씨는 의혹이 불거진 직후인 지난해 11월 말 돌연 과외를 그만뒀다.

이에 대해 해당 영어교사와 학교 측은 “우연의 일치”라고 주장했다. 해당 영어교사는 “딸이 내 학교 학생을 가르치는지 전혀 몰랐다”며 “(성적이 잘 나온 것은) 딸이 3년 치 시험 문제를 모조리 분석해 최선을 다해 가르친 결과”라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조 씨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휴대전화가 착신 금지 상태여서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 학교 교장은 “시험지의 직접적 유출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2009년 서울시교육청이 선정한 ‘사교육 없는 학교’로 언론에도 ‘학원이나 과외 없는 학교’로도 소개된 바 있어 현직 교사가 시험문제를 유출한 것으로 확인되면 상당한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된 학교는 2009년부터 정부에서 공교육 강화 프로그램 지원비로 연간 약 1억 원씩 최근까지 3억 원가량을 지원받았다. 교장은 “사교육 방지에 앞장서야 할 교사가 딸이 과외교습을 하도록 내버려 둔 책임을 묻기 위해 해당 교사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 학교는 최근 이사회를 열어 학생들의 문제 제기에 동조했던 교사들에게 ‘경찰서에서 참고인 진술을 한 내용을 모두 적어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이 요구를 거부한 한 교사는 담임교사 지위를 박탈당했다.

유출 의혹은 학부모 사이에서 거센 반발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내신 1, 2점 차로 등급이 갈리는 강남권이라 학생은 물론 학부모도 민감한 상황이다. 지난해 12월에는 한 학부모가 학교 홈페이지에 ‘학교에서 이 의혹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으면 직접 고발하겠다’는 글을 올렸지만 20분 만에 누군가에 의해 삭제됐다. 한 교사는 “이 사건 이후 갑자기 성적이 뛴 친구가 있으면 ‘혹시 족집게 과외를 받은 게 아니냐’고 아이들 사이에 의심하는 분위기가 생겼다”며 “문제 제기를 했던 학생들도 평소에 비해 많이 위축된 모습”이라고 전했다.

B 군의 아버지는 “비록 고등학생이지만 옳지 않은 일을 당당하게 문제 제기한 아이의 태도에 부모로서 자부심을 느낀다”며 “어른의 실수로 인해 아이가 또 한 번 상처를 받지 않도록 진상이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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