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사상최악 확산]파주 구제역 축산농가 유영범-정부임 씨 부부, 소 도살처분에 망연자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25일 03시 00분


“큰놈은 2분… 암소는 1분만에… 121번 울었습니다”

텅빈 축사 인터넷에 ‘눈물의 구제역 살처분 일기’를 올려 많은 누리꾼의 심금을 울린 유동일 씨가 24일 아버지가 운영하는 경기 파주시의 부일농장에서 착잡한 심정으로 텅 빈 축사를 들여다보고 있다. 축사에서 살던 소 121마리는 21일부터 모두 9시간 반에 걸쳐 도살처분됐다. 파주=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텅빈 축사 인터넷에 ‘눈물의 구제역 살처분 일기’를 올려 많은 누리꾼의 심금을 울린 유동일 씨가 24일 아버지가 운영하는 경기 파주시의 부일농장에서 착잡한 심정으로 텅 빈 축사를 들여다보고 있다. 축사에서 살던 소 121마리는 21일부터 모두 9시간 반에 걸쳐 도살처분됐다. 파주=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24일 경기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부일농장’. 입구에는 생석회가 뿌려져 있고 ‘진입 금지’라는 큰 글씨가 쓰인 차단막이 쳐져 있었다.

농장주 유영범 씨(69)의 아들 동일 씨(37)는 “미리 이렇게까지 했는데…. 운이 없으려니 할 수 없네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비극은 19일 밤 12시 무렵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됐다. 수화기 너머 사람은 부인 정부임 씨(62)에게 자신을 파주시 축산과 공무원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예방 차원의 도살처분을 하셔야 합니다.”

정 씨는 믿을 수 없었다. 난데없이 한밤중에 전화해, 평생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도살처분을 하라니. 날이 밝자 재차 전화가 왔다. “이 집에서 구제역 소가 나오면 다른 축산농가가 모두 피해를 봅니다.”

벌컥 화부터 냈다. 자식처럼 키워온 멀쩡한 소를 죽인다고?

13년 전 부부는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9마리로 시작해 121마리까지 늘렸다. 유 씨는 부인의 이름에서 ‘부’자를, 큰아들 동일 씨의 이름에서 ‘일’자를 따서 농장 이름을 지었다.

소가 사료 먹는 걸 보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부부는 13년 동안 매일같이 여름엔 오전 5시, 겨울에는 오전 6시에 축사를 찾았다. 하루 일과는 축사의 톱밥을 갈아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얼마나 좋아하는데…. 새 톱밥 비비면서 뛰어다니는 걸 보면 막 춤추는 것 같았어. 아니다. 진짜로 춤을 췄어.”

유 씨가 주사기로 한 놈 한 놈 인공수정을 시키면 10개월 뒤에 송아지가 태어났다. 그렇게 태어난 소는 모두 정 씨가 직접 받아냈다. 그런 소를 죽여야 한다니…. 싸웠다. 소리도 질렀다. 눈물로 호소도 했다. 이유라도 알려 달라고 했다.
▼ “마지막으로 고급사료 줬습니다, 소 울던 농장엔 적막만이…” ▼

“12일에 9마리를 출하했어. 근데 그 소를 실으러 왔던 차가 구제역이 발생한 농가를 들렀었대.”

기가 막혔다. 축협에서 사료 값을 갚으라고 독촉해 어쩔 수 없이 내다 팔았던 건데 그게 화근이 될 줄이야….

20일 방역요원이라는 사람들이 농장을 찾아왔다. 죽여야 한다는 것도 무서운데 더 무서운 말을 했다. 축사의 시멘트 바닥을 깨고 묻자고. 소가 먹고 자고 했던 곳을 파고 거기에 묻자고…. 절대 못 한다고 했다. 내 새끼 121마리를 묻은 곳에서 살라니. 부부는 대꾸를 하지 않았고, 그들은 돌아갔다.

21일 오후 3시. 갑자기 소들이 울기 시작했다. 하얀 위생복을 입은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농장에 들어섰다. 주사기를 들고 온 그들을 보고 소들이 울어댔다. 어미소들은 자기 새끼를 찾아 뛰어다녔다.

“그 울음소리를 들으니 창자가 녹는 것 같더라고….” 인터뷰 내내 흔들림 없던 정 씨가 결국 눈물을 훔쳤다.

오후 5시가 되니 덤프트럭과 삽차(포클레인)가 왔다. 실감이 났다. 주저하는 부부에게 방역요원이 무릎을 꿇고 요청했다. “부탁드립니다.” 어머니도, 방역요원도 울었다. 부부는 동의했다.

방역요원들이 집 마당에 주사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신경안정제와 안락사 약물이 담긴 주사기 121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유 씨가 아들 동일 씨를 데리고 축사로 갔다. 가장 좋은 사료를 골랐다.

“잘 먹더군요. 마지막 밥인데도 잘 먹는 걸 보니 오히려 마음이 좀 놓이더군요.” 동일 씨가 긴 탄식과 함께 당시를 기억했다.

오후 7시부터 마당에 놓인 주사기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가늘고 긴 금속 바늘은 목의 혈관을 뚫고 들어갔다. 주사를 맞은 소는 잠시 돌아다니더니 갑자기 주저앉았다. 큰 놈은 2분, 암소는 1분, 송아지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부부는 방으로 들어갔다. 동일 씨만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봤다.

30대로 보이는 여자 방역요원은 “아무래도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 같다”며 울면서 주사를 놨다. 3일째 밤새워 주사기를 잡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중간중간 축사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구토를 했다.

밤 12시, 모든 것이 끝났다. 축사가 죽은 소들로 누렇게 뒤덮였다. 꼭 전쟁터의 시체들 같았다.

삽차가 축사 안에까지 들어와 죽은 소들을 덤프트럭에 옮겼다. 덤프트럭이 빠져나가고, 동원된 인부들의 방역복을 태우고, 남아 있는 소의 사료까지 실어 보내고 나니 오전 4시 30분. 9시간 반 만에, 13년 동안 지켜왔던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빚만 남았다. 2억1000만 원. 보상금을 준다지만 빚 갚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새로 소를 구입하는 자금을 빌려 준다지만, 부부는 다시 소를 들일 생각이 없다. 아니, 자신이 없다.

“못 길러. 그것들을 다 죽여 놓고 무슨 염치가 있어서 다시 송아지를 받겠어.”

다시 소를 키울 거냐는 질문에 정 씨가 고개를 흔들었다. 옆에서 말없이 지켜보던 유 씨가 고개를 돌려 시계를 봤다. 오후 6시 반. 밥을 줄 시간이다. 축사가 텅 빈 지 3일째지만 여전히 이 시간만 되면 시계에 눈이 간다. 밥을 먹일 새끼들을 모두 잃은 유 씨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우리야 다른 일을 하든 뭐 먹고살겠지. 근데 살아 있는 소들을 사람 잘못으로 이렇게 파묻지 말아야지. 소가 무슨 죄야….”

아들 동일 씨는 부모님이 땀과 눈물로 기른 소들을 묻어야 했던 심정을 글에 담았다. 그가 인터넷에 올린 ‘눈물의 구제역 살처분 일기’는 누리꾼들의 심금을 울렸다. 동일 씨의 글은 24일 오후까지 9만1500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8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지난달 29일에 처음 발생한 구제역으로 지금까지 전국 1750개의 농장이 부일농장과 똑같은 일을 겪었다.

파주=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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