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서울 마포구 연남동 예술마을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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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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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연남동”… 주민들 붓 들고 동네 한바퀴

기사식당 밀집 지역으로 알려진 서울 마포구 연남동이 최근 예술가들과 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예술 동네’로 변모하고 있다. 어두컴컴한 굴다리 입구가 지역 주민 70명이 직접 그린벽화로 거듭난 연남동 연남지하보도.
기사식당 밀집 지역으로 알려진 서울 마포구 연남동이 최근 예술가들과 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예술 동네’로 변모하고 있다. 어두컴컴한 굴다리 입구가 지역 주민 70명이 직접 그린벽화로 거듭난 연남동 연남지하보도.
“전 제 동생을 그리겠습니다….”

그림 그리기 수업(드로잉 아카데미)에 참여한 장병우 씨(64)가 지갑을 꺼냈다. “생각나는 물건이나 소지품을 그려보라”는 강사의 말에 그는 지갑 속 동생의 사진을 도화지 위에 올렸다. 그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장영희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의 오빠다. 장 교수가 소아마비를 극복하고 교수가 되는 동안 장 씨는 LG오티스 사장을 지낸 경영인으로 살아왔다.

마포구 연남동에 21년 동안 살면서 자신의 일상을 그린 것은 처음이었다. 동생 그림 외에도 그는 전선줄이 늘어진 골목길, 꼬부랑 동네 할머니 등을 ‘일기’ 쓰듯 담아냈다. 그림 한 번 제대로 그려본 적 없지만 ‘연남동 화가’가 된 장 씨. ‘기사식당’ 동네였던 마포구 연남동은 하루하루 그렇게 예술마을로 변해가고 있다.

○ ‘제2의 홍대 앞’을 꿈꾸는 연남동

1975년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분리된 연남동은 벚나무 감나무 등이 많은 전형적인 주택가였다. 택시기사들이 자주 드나들며 밥을 먹는다 해서 ‘기사식당’이 많은 동네로 알려질 뿐 서교동 상수동 합정동 등 이른바 ‘홍대 앞’ 문화로 대표되는 이웃 동네들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림으로 치면 ‘무채색’과도 같은 이곳에 최근 홍익대 앞에서 활동하던 예술가가가 하나둘 건너오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마을 주민들. 사진 왼쪽이 고 장영희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의 오빠 장병우 씨. 사진 제공 마포구.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마을 주민들. 사진 왼쪽이 고 장영희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의 오빠 장병우 씨. 사진 제공 마포구.

9년째 홍익대 앞에서 예술시장 ‘프리마켓’을 운영하는 ‘일상예술창작센터’가 대표적이다. 이 단체는 올해 초 자신들의 새로운 터전인 연남동에서 ‘새로운 예술’을 해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마침 연남동주민센터에서 동네 주민들 스스로 마을을 가꾸는 ‘연남 올레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제안을 받았고 곧바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예술아카데미를 열었다. 밥그릇 빚는 도자기 수업부터 동네 모습 찍는 사진 수업, 일상을 담는 그림 수업까지. 소재는 모두 ‘연남동 속 자신’이었다. 70명의 수강생은 첫 결과물을 연남지하보도에서 이뤘다.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을 타일에 담아 어두컴컴한 굴다리 입구를 화사하게 바꾼 것.

○ 세탁소 아저씨도 ‘예술’을 논하다

오래된 세탁소 앞 새로 생긴 갤러리, 재래시장 옆 조용한 북카페…. 굳이 주민들과 특별한 공공미술을 하지 않아도 연남동 곳곳에는 이미 ‘예술’이 녹아 있다. 그 중 최근 들어선 예술공간 ‘플레이스 막’은 신기하다 못해 뜬금없어 보인다. 현재 이곳에는 행위예술제인 ‘2010 서울 똥꼬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어지럽게 놓인 생수병, 깎다 만 연필…. 유기태 플레이스 막 대표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바로 앞 세탁소 주인아저씨가 이해할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이곳을 지나가던 동네 주민들은 갤러리 안으로 들어와 “밥 먹었어?” “이번 작품 뭐지?”라는 질문을 서슴없이 던졌다.

유 대표는 “홍익대 앞, 청담동, 인사동 같은 ‘뻔한 곳’이 아니라 사람 냄새나는 예술 불모지를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갤러리 앞 ‘세탁소 아저씨의 가죽 재킷 오래 입는 법’, ‘연남 돼지갈비집 주인아저씨의 양념 만들기’ 등을 내년 갤러리 예술제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예술은 특별한 쇼가 아니라 ‘분식집’처럼 익숙한 생활상 그 자체니까요.”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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