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커피 한잔… 그리고 ‘자전거 토크’ 어때요?

  • 동아일보

■ 서울 자전거 카페 인기

《 16일 오후 9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주택가 골목. 무서울 정도로 조용한 이 골목에 얼마 전부터 고요함을 깨는 카페 하나가 들어섰다. 불빛은 대낮만큼 이글거린다. 조용한 주택가에 카페가 들어선 것도 드문 일이지만 이 카페 문 앞에는 자전거 한 대가 전시돼 있다. 신기한 건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골목 끝 쪽에서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리던 사람들은 ‘마진 플래닛’이라는 이름의 카페 앞에서 자전거를 멈춰 세운다. “우와, 자전거 카페네?”라며 놀라는 이들, 마치 자석에 끌리듯 헬멧을 벗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
○ 명소로 떠오른 자전거 카페들

‘바이시클 세트=토스트+바나나+아메리카노.’ 카페 앞에 자전거 한 대 놓인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한쪽 구석에는 급하게 자전거를 고쳐야 할 손님들을 위해 갖가지 장비 공구들이 빽빽이 자리했다. 자전거 동호회 사무실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전거 카페임을 ‘인증’하는 것은 메뉴도 한몫했다. 일명 ‘바이시클 세트’라 이름 붙인 메뉴는 토스트를 기본으로 한 커피 세트였다. 자전거와 별 관계가 없는 줄 알지만 피식 웃음이 난다.

카페 주인 이원호 씨(24)는 자전거 대회까지 나갈 만큼 ‘자전거 마니아’다. 그는 “이곳을 찾는 자전거 마니아들은 꼭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이곳에 와 바퀴에 바람을 넣거나 수리를 하고 간다”고 말했다.

카페가 많은 도시 서울. 카페들은 저마다 특이한 주제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그중 최근 떠오르는 주제는 ‘자전거’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 자전거로 하이킹을 즐기는 20대 젊은층을 겨냥한 자전거 카페들이 서울에 잇따라 들어섰다. 이 카페들은 자전거족들이 잠시 들러 차를 마시며 자전거도 정비할 수 있게 해놓았다.

자전거를 소품으로 세워 둔 서대문구 연희동 ‘마진 플래닛’(위)과 자전거, 헬멧,공구 등을 인테리어로 사용한 광진구 광장동 ‘벨로마노’ 등 최근 서울에는 자전거를 주제로 한 카페가 잇따라 들어섰다. 이들은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직장인과 20대 젊은층을 겨냥하고 있다. 김범석 기자bsism@donga.com 사진 제공 벨로마노
자전거를 소품으로 세워 둔 서대문구 연희동 ‘마진 플래닛’(위)과 자전거, 헬멧,공구 등을 인테리어로 사용한 광진구 광장동 ‘벨로마노’ 등 최근 서울에는 자전거를 주제로 한 카페가 잇따라 들어섰다. 이들은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직장인과 20대 젊은층을 겨냥하고 있다. 김범석 기자bsism@donga.com 사진 제공 벨로마노
의외의 장소에 자전거 카페가 있는 경우도 있다. 광진구 광장동에 위치한 자전거 카페 ‘벨로마노(Velomano·자전거 손)’는 강남구 청담동이나 대학가 주변에 있는 카페가 아니다. 카페 주인 서천우 씨(35)는 “광장동 자전거 테마공원이나 한강 둔치에 자전거를 타러 나오는 바이커들을 위해 이곳에 카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헬멧을 쓰고 오는 손님들에겐 500원 할인 캠페인도 벌인다.

○ ‘탈것’을 넘어 ‘문화’ 명소가 되려면

자전거 카페는 자전거 타기가 활성화된 일본이나 유럽 등지에서 생겨난 문화다. 국내에서도 ‘자전거=참살이’라며 자전거에 관심이 쏟아지자 자연스레 이를 주제로 한 카페가 생겨난 것. 최근에는 ‘르벨로’ 같은 자전거 숍들이 커피 기계를 들여와 카페 공간을 새로 만들기도 했다.

자전거 활성화 정책을 강력하게 내놓은 서울시 역시 지난해 7월 한남대교 남단에 20석 규모의 자전거 카페 ‘레인보우’를 만들었다. 이곳은 한남대교 자전거 연결로 진입부이기도 하다. 운영을 맡은 서울관광마케팅 관계자는 “이곳에 서울시내 자전거지도를 만들어 붙일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자전거 전용 도로가 부족해 자전거가 일상생활 깊숙이 파고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자전거 카페 역시 한때의 유행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원호 마진 플래닛 대표는 “자전거에 대한 인식이 ‘레저’가 아닌 생활의 일부분으로 확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까지 홍익대 앞에서 인기를 얻었던 한 자전거 카페는 2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 자전거, 지하철에선 아직 ‘찬밥’ ▼

자전거 전용도로 개설부터 최근의 출퇴근 시 공공자전거 대여 정책까지. 서울시의 자전거 사랑은 남다르다. 이러한 분위기는 자치구까지 이어지는 분위기다. 송파구는 최근 자전거 안전 지도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고 양천구는 이동 자전거 수리센터까지 만들어 주민들의 자전거를 무료로 고쳐주고 있다.

반면 ‘지하’에서의 자전거 정책은 유독 보수적이다. 최근 서울시는 지하철 내 자전거 휴대 탑승과 관련해 토요일까지 확대하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으나 투자심사 타당성 검사에서 ‘재검토’ 판정을 받았다.

올해 12월 토요일 확대를 목표로 추진되던 이 사업은 사실상 내년 이후로 미뤄진 셈. 현재는 일요일과 공휴일만 지하철에 자전거를 갖고 탈 수 있다.

이 사업을 추진해온 서울시 교통정책담당관실은 현재 자전거를 갖고 계단을 내려갈 수 있게 하는 경사로, 자전거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전용 출입구 등이 39개 역에만 설치됐는데 토요일 확대와 함께 167개 역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시범 실시와 달리 2단계 확대 시행은 토요일까지 자전거를 탈 수 있게 하기 위해 인프라 확충 차원에서 자전거를 들고 탈 수 있는 역사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113억 원의 예산을 요청했다. 이회성 재정담당관은 “사업성은 있지만 아직까지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이 전체 지하철 승객의 1%도 안 된다”며 “시간을 두고 차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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