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어린이대공원 이동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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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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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손잡고, 구렁이 두르고 ‘특별한 봉사단’이 찾아왔어요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중증장애인 복지시설 ‘늘 편한 집’에서 생활하는 한 장애인이 9일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이 연 ‘이동 동물원’ 행사에서 머리 위에 원숭이가 올라가자 즐거워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중증장애인 복지시설 ‘늘 편한 집’에서 생활하는 한 장애인이 9일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이 연 ‘이동 동물원’ 행사에서 머리 위에 원숭이가 올라가자 즐거워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어머머, 뱀이야!”

길이가 3m 가까이 되고 무게가 10kg이 넘는 버마비단구렁이가 9일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중증장애인 복지시설 ‘늘 편한 집’에 나타났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오근혜 씨(34)가 “무섭다”며 뒤로 물러섰다. 모두들 멈칫멈칫 하는 가운데 김미선 씨(32)가 용기를 냈다. 원래는 갈색이지만 알비노(멜라닌 색소결핍)여서 흰색과 노란색이 섞여 있는 이 비단구렁이는 미선 씨의 목 위에서 낯선 환경을 탐색하듯 연방 혀를 날름거렸다.

○ 작은 강당이 동물원으로 변신

“괜찮아요?” “시원해요. 좋아요!”

사육사의 물음에 김 씨가 짜릿한 느낌을 감추지 못하며 큰 목소리로 답했다. 이 비단구렁이는 서울 어린이대공원이 이날 연 ‘생생(生生) 이동동물원’ 행사에 데려온 동물이다.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은 2008년 8월부터 장애인이나 보육원생 등 동물원을 방문할 기회가 적은 소외계층을 찾아가 이들이 동물을 보고 만지며 즐길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날이 열한 번째 봉사활동이다.

뒤이어 지체장애 1급인 김의 씨(68)와 정병영 씨(50)가 전동휠체어에 앉은 채 뱀을 나란히 목에 걸고 ‘인증 샷’을 찍었다. 암컷 긴팔원숭이는 정 씨의 머리 위에 올라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목을 팔로 안으며 애교를 부렸다. 지적장애가 있는 이상임 씨(32)는 잠시 망설이다 고슴도치에 덥석 손을 댔다. 이 씨는 고슴도치 가시가 사실 빳빳한 털이라는 것을 알고 고슴도치를 쓰다듬으며 환하게 웃었다.

‘늘 편한 집’에는 중증장애인 45명이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표범무늬육지거북이 왕관앵무새 토끼 등을 손으로 만지고 미어캣 프레리독 캥거루쥐 등 13종 50여 마리의 동물을 관람했다. 지체장애 1급 최원일 씨(61)는 “동물원에 가본 지 얼마나 오래됐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가만히 있는 뱀은 본 적이 있는데 실제 만져보니 굉장히 부드러워서 놀랐다”고 말했다.

“거북이 이겨라! 토끼 이겨라!”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토끼와 거북의 경주. 거북이는 탁자 위를 열심히 달려가는데 토끼는 당근의 유혹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경주는 2번 모두 동화처럼 부지런한 거북의 승리로 끝났다.

○ “원숭이도 멀미해요”

이동동물원 초기에는 경험 부족으로 해프닝도 많았다. 한 보육원에서는 새끼 염소가 어미를 찾으며 우리를 뛰쳐나가 직원들이 간신히 붙잡기도 했다.

직원들에게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차멀미다. 동물 중 유인원 종류나 예민한 녀석은 사람처럼 멀미를 한다. 한번은 다람쥐원숭이 한 마리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먹은 것을 토하고 다녀온 뒤에도 하루 동안 아무것도 안 먹고 늘어져 있기도 했다. 지금은 멀미가 덜한 녀석들을 골라 데리고 다닌다. 조정욱 동물원 수의과장은 “먹이주기 체험도 있고 배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막기 위해 갈 때는 빈속으로 차에 태운다”고 말했다.

초반 인기를 모았던 새끼사자나 새끼호랑이는 덩치가 커져버려 출연 목록에서 빠졌다. 맹수의 본능이 발동할 우려가 있어서다. 다음 달 크리스마스 즈음에 예정된 봉사활동에는 새로운 새끼사자가 시설 생활 어린이나 장애인 앞에 나설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대공원 직원들은 사육사를 제외하면 모두 휴무일이었다. 봉사에 나선 조래철 어린이대공원 동물원 대리(52)는 “원래는 쉬는 날이지만 장애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오길 잘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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