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복지모델을 찾아라]‘유럽 5개국 제도’ 현지 심층취재<中>‘경제와 복지’ 두 바퀴로 달리자

동아일보 입력 2010-09-30 03:00수정 2010-09-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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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직업훈련 받아야 생계비 보조하는 ‘워크페어’로
네덜란드 헤이그 시 고용복지센터에는 레스토랑 주방을 그대로 옮겨놓은 직업훈련실이 있다. 구직활동 중인 실업자들은 마치 현장에서 일하는 것처럼 훈련을 받는다. 홍선미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 서상목 경기복지재단 이사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박진우 노인복지시설협회장(오른쪽)이 훈련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헤이그=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 10년 전 카메룬에서 네덜란드로 온 수전 돈거 씨(33)는 헤이그 시 고용복지센터(CWI)에서 일주일에 두 번 요리 강습과 서빙 훈련을 받는다. 지난달 23일 헤이그 시청 사회보장국 직원들과 만나기 위해 방문한 CWI 회의실에는 케이크와 커피 등 여느 카페 못지않은 다과가 준비됐다. 바로 돈거 씨와 같이 직업 훈련을 받고 있는 실업자들이 직접 만든 것이었다. 직업훈련을 받는 동안 최저생계비와 실업급여를 매달 1200유로(약 185만 원)를 받는다. 케이크와 음료를 나르던 돈거 씨는 “여기서 취업을 위한 포트폴리오 작성과 면접 기술까지 교육받는다”며 “네덜란드 문화가 낯선 이민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훈련”이라고 말했다. 》
○ 고용과 복지 연계로 복지병 극복

네덜란드에서는 근로 무능력자가 아니면 직업훈련을 받아야만 생계비 보조를 받을 수 있다. 특히 27세 이하는 공공부조를 받을 수 없으며 학교에서 공부를 하거나 건강상 장애가 없는 한 일을 해야 한다.

톰 베슬위스 헤이그 시청 국제협력관은 네덜란드의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누구나 일할 권리가 있다. 일을 못할 상황이 아닌데도 일을 하지 않으면 복지혜택을 주지 않는다”고 요약했다.

1970∼1980년대 네덜란드는 ‘병든 네덜란드’라 불릴 정도로 복지병을 경험했으나 1990년대 들어 경제도 살리고 스웨덴과 맞먹는 복지국가로 거듭났다. 이는 근로를 유인하는 복지 때문으로 평가받는다. 서상목 경기복지재단 이사장(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네덜란드는 노동시장 활성화를 최고의 복지로 보고 있으며 복지급여는 노동능력 상실을 보상한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경제성장과 복지국가를 동시에 달성했다는 점에서 우리가 모델로 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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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 수급자는 재취업을 위한 다양한 의무를 부과받는다. 실업급여 수급자는 수급자격 심사가 시작되는 동시에 CWI에 등록하고 일자리를 추천받는다. 주로 공공분야 일자리들이다. 특별한 사유 없이 일자리를 거부하면 실업급여나 생계비 보조가 깎인다.

베슬위스 씨는 “헤이그 시의 실업률은 5%인데 금융위기를 겪은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매우 양호한 편이다. 단기, 중기, 장기, 청년 실업자로 대상을 세분해 실업급여와 고용 프로그램을 함께 제공한 것이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1982년 경영자 총수와 노동자대표가 맺은 ‘바세나르 협약’이라는 사회적 대타협이 있었다. 경영계와 노동계는 ‘바세나르 협약’을 통해 임금 억제와 노동시간 단축을 교환했다. 엄격한 정규직의 고용 보호를 완화시키는 대신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했다. 이후 여성 실업자의 75%, 남성 실업자의 40%가 파트타임 일자리를 통해 노동시장에 재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삼성 사장을 지낸 이창렬 삼성사회봉사단 사장은 “네덜란드는 고용이 최고의 복지임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 사회복지서비스 자체가 일자리


고용연계형복지(workfare)는 유럽 복지 국가 전체의 화두다. 독일도 2003년부터 노동시장 서비스 현대화위원회, 이른바 하르츠 위원회가 출범해 실업급여와 기초생활급여를 통합했다. 실직 전 소득을 보전해주는 실업급여 때문에 재취업하지 않는 장기 실업자가 늘어난다고 보고 실업급여를 현재 필요한 만큼만 주도록 바꿨다. 반면 기초생활급여는 상향조정했다. 독일도 이처럼 근로능력이 있다면 반드시 일을 해야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사회복지서비스 제공기관들이 일자리 창출의 중추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독일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 카리타스 연합회는 민간 사회복지기관이다. 전국에 의료기관, 요양시설, 탁아시설 2만6000여 곳을 운영한다. 카리타스 연합회가 만든 일자리는 50만 개에 육박한다. 돌봄서비스 종사자의 최저임금도 시간당 12유로로 법정 최저임금 8유로보다 높은 양질의 일자리다. 조성철 한국사회복지사협회장은 “독일 카리타스 연합회는 국내 사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의료기관이나 사회복지관과 같은 구조다. 사회복지분야 일자리가 국가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라는 것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 경제성장과 사회통합 동시에 달성

1980년대 서구 복지국가들은 공통적으로 과도한 복지지출에서 비롯된 복지국가 위기를 경험하면서 복지 패러다임을 ‘소비’에서 ‘투자’로 전환했다. 복지를 인적 자원 개발을 위한 투자로 보고 ‘사회투자국가’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빈곤한 개인에게 사후적으로 소득을 보장해 주는 대신 빈곤해지기 전에 예방적인 투자를 한다. 복지비용을 절감하고 노동력의 질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 필리프 스타크 프랑스 국립가족수당금고(CNAF) 국제협력관은 “2050년 유럽에선 지금보다 가족과 고령 관련 사회복지비용 4.2%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프랑스는 3%만 증가한다. 복지는 미래세대에 부담을 덜어주는 선제적 투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경제성장과 사회복지가 대립되는 개념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복지정책은 산출 없는 투자, 비효율적인 투자로 보기 때문이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신상진 한나라당 의원은 “내년 예산안에 양육수당 소득하위 70%까지 확대 지급, 노인장기요양보험대상자 4급 확대 등이 모두 좌절됐다”며 “복지와 경제가 선순환을 일으킨다는 사회적 합의가 없다면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의 예산안 싸움은 매년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준영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유럽의 복지는 양질의 인적 자본을 형성하고 이것이 다시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작동하는 방식”이라며 “심각한 양극화에 직면한 한국이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복지를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기사에 등장하는 전문가들은 취재기자와 함께 지난달 17∼24일 프랑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에서 유럽 복지 시설과 제도를 둘러봤습니다.


▼ 복지-고용 연계 왜 안되나…
“교육-의료비 지원 날아갈라” 일 안하는 한국

청소 대행업체를 운영하는 이모 씨(50)는 회사 대표로 있지만 아직도 기초생활수급자다. 그의 회사 월급은 94만8000원. 3인 가족 최저생계비인 110만919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사실 월급을 최저생계비 이상 가져갈 수도 있지만 그러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한다.

이 씨는 “기초생활수급자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교육비 의료비 지원이 사라지는 것이 너무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이 씨 아들은 올 4월 아데노이드 비대증으로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이 씨에게 청구된 의료비는 입원비 수술비를 합쳐 모두 220만 원. 이 씨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주는 의료비와 위기가정 긴급지원비를 받아 돈을 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는 이 씨 본인의 병원비도 적지 않다.

올해 기초생활수급자는 157만 명. 이들 중 이 씨처럼 근로능력이 있는 저소득층은 28만 명에 이른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자영업에 종사하는 저소득층 중 4인 가족 기준으로 소득이 월 165만 원을 넘으면 교육비와 의료비 지원이 끊기기 때문에 소득을 줄이는 일이 허다하다”고 말했다.

근로능력이 있거나 소득이 일정 수준을 초과할 수 있어도 기초수급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한국 복지 정책의 현주소다. ‘고용’과 ‘복지’가 겉돌고 있는 것이다.

저소득층에서 고용과 복지의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지지 못하는 요인은 기초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간 복지 혜택 차이다. 의료비 지원을 보면 기초수급자의 의료비는 모든 질병에 지원되는 데 반해 소득이 20% 많은 차상위층의 의료비는 희귀질병일 때만 지원된다. 그렇다 보니 소득과 일자리가 있어도 기초수급자에서 차상위층으로 올라서려고 하지 않는다. 복지 혜택이 많은 기초수급자의 수는 2006년 150만 명을 넘어선 이후 매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에야 고용과 복지 연계 정책에 눈뜨기 시작했다. ‘일을 통한 탈(脫)빈곤’ 정책을 내년부터 추진키로 했다. 정부는 기초수급자가 차상위층에 해당하는 소득을 올릴 경우에도 2년 동안 의료비와 교육비를 계속 지원하는 등 탈빈곤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사업에서 혜택을 보는 층은 저소득층 목돈마련 통장인 ‘희망키움통장’ 가입자뿐이다. 이 통장 가입자는 올해 5000가구. 내년에 1만5000가구로 늘릴 계획이지만 탈빈곤 대상자의 5%에 불과하다.

김종대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이사장은 “차상위층의 근로의욕을 꺾지 않도록 기초수급자와의 복지 혜택 차이를 줄이는 것이 시급하다”며 “고용 정책과 상생하는 복지 정책에는 예산을 집중 투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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