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적응 역량을 키우자]<2>호주―뉴질랜드에서 배운다

동아일보 입력 2010-09-14 03:00수정 2010-09-1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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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 받아 쓰고… 썼던 물 다시 쓰고… ‘물 걱정’ 잠갔다
호주 멜버른 시청사 내부. 페인트칠을 하지 않은 천장에 태양열로 가동되는 난방용 관이 그대로 노출돼 있다. 실내는 조명을 최소화해 한낮에도 다소 어두웠다.
호주 남부 해안에 있는 빅토리아 주 주도(州都) 멜버른 시. 지난달 24일 찾은 이곳 시내 도로 양쪽에 서 있는 가로수 아래 지하에는 빗물을 받아 사용할 수 있는 장치가 매립돼 있었다. 시가 운영하는 잔디 운동장과 골프장 등의 땅 밑에도 사용한 물을 받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물 부족에 시달리면서 이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다.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지역경쟁력센터와 환경정책평가연구원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는 지난달 21일부터 29일까지 호주(쿠링가이, 멜버른), 뉴질랜드(웰링턴, 오클랜드, 크라이스트처치)를 찾았다. 이들 도시 대부분이 해안에 자리 잡고 있지만 산악 면적 등 지리적 요인과 인구구조 등 경제사회적 요인에 따라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과 피해가 국지적으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었다.

○ 생활 속의 적응 노력

멜버른 시내의 고층 빌딩 사이에 자리 잡은 8층 높이의 시청사. 최근 새로 입주한 이 건물 외벽은 태양광 패널로 뒤덮여 있었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한낮인데도 다소 어두웠다. 직원들이 책상에 놓인 작은 스탠드를 이용하느라 실내등을 거의 켜지 않은 때문이었다. 사무실 천장에는 태양열로 가동되는 난방용 파이프가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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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경쟁력센터와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가 최근 실시한 ‘국내 16개 광역자치단체 기후변화 영향 및 적응역량 평가’에서 가장 큰 특징은 기후변화의 영향이 ‘국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멜버른을 포함해 호주, 뉴질랜드의 도시와 지역도 기후변화의 영향이 다양했다.

물 부족과 폭염이 주 관심사인 멜버른은 중앙정부의 가이드라인이나 재정적 지원을 기다리지 않고 지역주민과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해 지역 특성에 맞는 적응 대책을 생활 속에서 실행하고 있었다. 부산시와 인구 규모가 비슷한 멜버른 시에는 기후변화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직원만 10명에 이른다. 이들은 시 전체 빌딩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만2000여 동의 상업용 빌딩을 ‘그린 빌딩’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건물 옥상에는 정원을 조성하고, 새로 짓는 건물은 빗물을 저장해 재사용하는 설비를 하도록 했다. 폭염과 물 부족에 적응하기 위한 대책이다. 기후변화 적응 업무 담당자 랠프 플레이러 씨는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한 데이터를 구축하고 각 가정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행동 계획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지역사회와 연계 협력 필수

호주 남동부 해안의 시드니 도심에서 차로 30분가량 떨어진 인구 11만여 명의 작은 지자체 쿠링가이 카운슬. 도로를 따라 늘어선 낮은 건물 뒤편으로 광활한 관목림 속에 주택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은 산불이 최대 위험 요소다. 전체 가구의 30%가 넘는 1만3000가구가 관목림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가뭄이 이어지면서 대규모 산불이 자주 발생하자 지자체가 나서서 지역 내 대학, 주민 등과 연계해 2007년 본격적으로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대학에서는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기후변화의 양상을 조사하고, 소지역 단위로 나눠 어떤 위험에 어떤 주택이 노출돼 있는지 등을 파악했다. 기후변화 업무 책임자인 제니퍼 스콧 씨는 “상당수 주택이 숲 속에 있어 산불 발생 시 위험에 노출돼 있고 다른 주택들도 대부분 태풍에 취약한 벽돌로 지어져 있다”며 “이 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위험 발생 시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쿠링가이 카운슬은 기후변화의 영향에 따른 잠재적인 위험 요소를 파악하고, 적응 대책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지역 내 대학과 전문가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직접 의견을 제시하며 계획 수립 단계에서부터 참여했다.

호주 멜버른 시가 운영하는 공원과 운동장, 골프장 등의 지하에 매설돼 있는 물 재사용설비. 잔디에 뿌린 물이 지하로 스며들면 이 물은 지하에 매설된 물탱크, 정화장치 등을 거쳐 다시 사용된다(오른쪽). 호주 멜버른 시내 도로 옆 가로수 지하에는 빗물을 최대한 오랫동안 가둬둘 수 있는 장치가 매립돼 있다(왼쪽). 기후변화에 따른 물 부족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 시민들 이해-참여 중요

지자체가 기후변화 적응을 위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지역민과의 소통과 교육이다. 기후변화 영향이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어떤 적응 노력을 해야 하는지, 왜 예산을 사용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주민들의 이해와 동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꾸준한 노력 덕분에 최근 쿠링가이 카운슬이 지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식 조사에서 응답자의 87%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적응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대부분 동의했다. 쿠링가이 카운슬은 매월 2차례씩 지역 주민과 전문가 등이 참석하는 워크숍을 열어 지역에 맞는 기후변화 적응 대책을 토론한다.

2007년 기후변화 행동계획을 수립한 뉴질랜드 웰링턴도 시민의 이해와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뉴질랜드 북섬 남쪽 끝 해안에 자리 잡은 이곳은 해수면 상승과 폭풍성 해일이 가장 큰 관심사다. 기후변화 업무를 맡고 있는 크리스 캐머런 씨는 “적응 대책 수립 과정에서는 주민과 사업자가 의사결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며 “주민들과 대화하고 설득하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전했다.

특별취재팀

▼ 국내 지자체도 잰걸음 ▼

기상청이 폭염특보를 발령하면 서울시는 각 자치구와 함께 비상체제에 돌입한다. 노인 돌보미와 사회복지사는 곧바로 ‘폭염 취약 계층‘인 홀몸노인 등을 대상으로 안부전화를 한다. 노인들의 안전을 확인하면서 이들에게 폭염 시 행동 수칙을 다시금 숙지시킨다. 이는 최근 100년간 서울시의 기온 상승률이 전국 평균의 약 2배에 이르자 서울시가 마련한 기후변화 적응 대책의 하나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국내 지방자치단체도 잰걸음을 하고 있다. 한국은 국토 면적이 좁아도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산이 많아서 지역에 따라 기후변화의 정도가 다르다. 지자체별로 특성화된 기후변화 대응이 절실한 이유다.

제주는 ‘기후변화 적응도시 조성을 통한 세계적인 환경 모델 도시 구현’을 구호로 내걸고 기후변화 영향 평가 및 적응 모델 개발 계획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지리적 특성상 태풍 피해가 심한 점을 감안해 태풍과 폭풍, 해일의 강도를 관측하는 데에 역점을 두고 있다.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지역경쟁력센터와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가 시행한 ‘16개 광역지자체 기후변화 영향 및 적응역량 평가’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것으로 조사된 강원은 산지가 많은 지형에 맞춰 기후변화 대응책을 마련했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기후변화 실증단지와 대관령 풍력단지를 조성하는 ‘그린 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게 골자다.

경남은 기후변화 대응 종합 대책의 일환으로 온실가스 흡수를 위한 녹지네트워크를 10년간 조성하기로 했다. 전북은 새만금에 대규모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할 예정이다. 인천은 산사태에 취약한 지역(계양구와 부평구)을 대상으로 산사태 위험 평가 분석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별 기후변화 적응 대책이 대부분 실행이 아닌 계획 단계에 머물러 있어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기후변화 적응 대책과 관련해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지자체 내에서도 실행 주체가 모호한 점이 개선 과제로 꼽힌다.

▼ 호주-뉴질랜드 전문가 조언 ▼
“지역 날씨에 맞는 대책 지자체가 직접 찾아야”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협회(CSIRO)의 ‘지속가능한 생태계’ 분야 선임연구과학자 서성원 박사는 지난달 25일 기자와 만나 “개별 지자체가 기후변화 적응 대책의 우선순위를 정해 지역 특성에 맞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CSIRO는 5000여 명의 박사급 연구원이 전국에 흩어져 연구를 진행하며, 기후변화 연구자만 700여 명에 이른다.

멜버른 시내에서 30여 분 거리에 있는 CSIRO 내 회의실에서 서 박사를 만났다. 그는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기후변화 적응에 관한 일에 제대로 손을 대기 어렵다”며 “기후변화가 각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는 큰 틀만 제공하고 각 지자체가 지역 조건에 맞는 정책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CSIRO에서는 브리즈번, 퀸즐랜드 등 지역의 해수면 상승 등에 관한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서 박사는 자신의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여주며 “여기서는 기후변화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비용으로 산정해 주민들에게 알려준다”고 했다. 고지서에는 서 박사가 한 달 동안 얼마만큼의 탄소를 배출했는지, 전달에 비해 얼마나 더 배출했는지 등이 명시돼 있다. 서 박사는 “단순한 홍보가 아니라 이런 방법을 통해 자연스럽게 지자체와 주민이 소통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6일 뉴질랜드 웰링턴 시에서 만난 기후변화 적응 전문가들은 “주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고 기후변화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엔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IPCC)에서 일하다 최근 은퇴한 마틴 매닝 빅토리아대 교수는 “기후변화는 경제적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인 문제”라며 “적응 전략 수립 초기 단계에서부터 중앙정부와 주민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케리 프렌더개스트 웰링턴 시장은 “중앙정부의 지원과 관심을 위해 장관들을 만나 해수면 0.5mm 상승 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얼마나 될지 설명하고 다닌다”며 “주민들에게도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보다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적응 비용이 훨씬 적다는 점을 적극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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