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억을 한국으로…중국 관광객 마음을 잡아라]<3>‘3無가이드’를 가이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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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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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만 할줄 알면 된다”… 가이드 60~70%가 無자격

《#장면1. (중국인 관광객 20여 명을 태운 관광버스 안) “제주 성산일출봉은 사화산(死火山)이지만 혹시 분출할지도 몰라 모래 같은 것을 퍼 와 메웠다고 합니다.” 유창한 중국어로 설명하는 관광통역안내사(가이드)의 말에 제주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은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성산일출봉을 향해 사진기 플래시를 터뜨리면서 “모래를 어떻게 부었을까” “한국 사람들은 역시 대단해” 하며 수군거리기도 했다.

#장면2. (경기 수원시의 한 호텔로 향하는 관광버스 안) “수원은 서울이랑 바로 붙어 있습니다. 차가 막혀 시간이 좀 걸리는 것뿐이에요.” 중국어 가이드의 안내에 중년의 한 남성 관광객이 반박했다. “한국에 오기 전에 여러 가지 공부를 하고 왔다”며 “수원이 어떻게 서울과 딱 붙어 있냐. 얼렁뚱땅 넘어가지 말고 제대로 알려 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16일 오후 중국인 관광객 10여 명을 인솔한 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가이드)가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조선의 탄생과 경복궁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6일 오후 중국인 관광객 10여 명을 인솔한 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가이드)가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조선의 탄생과 경복궁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아무도 모르게 넘어갈 수 있었던 ‘장면1’은 마침 중국어를 할 줄 아는 관광버스 운전사에게 ‘딱’ 걸렸다. 그는 지난해 12월 이 사실을 문화체육관광부 국제관광과에 전화로 알렸다. “형편없는 중국어 가이드 때문에 한국에 대해 왜곡된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며 분개했다고 한다.

‘장면2’는 조선족 중국어 가이드 김영호 씨(가명)가 얼마 전 실제로 겪은 상황이다. 최근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 가운데는 소득이 많고 학력 수준이 높은 사람이 있어 함부로 얘기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들은 쇼핑이나 음식도 중요하지만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제대로 알고 싶어 하기 때문에 가이드들이 사실과 다른 설명을 하면 바로 항의가 들어온다.

대부분 단체 패키지 관광을 오는 중국인들에게 관광가이드가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가이드의 말과 행동이 한국에 대한 인상과 관광 만족도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종화 한국관광공사 중국팀 과장은 “장기적으로 볼 때 재방문율이 ‘0’에 가까운 저가(低價)관광 이용객보다 수준 높은 관광을 원하는 중국인을 끌어올 필요가 있다”며 “이 때문에 한국의 문화와 역사, 지역 정보를 제대로 원활하게 전달할 능력 있는 가이드가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 자격증 소지자가 냉대 받는 잘못된 구조


그러나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한국관광공사는 △국사 △관광자원 해설 △관광법규 △관광학개론 등 4과목의 필기시험과 한국어 및 해당 언어로 치러지는 면접시험에서 기준만 통과하면 언어별로 가이드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다. 지난해 영어 가이드는 116명, 일본어는 165명이 배출됐지만 중국어는 51명에 그쳤다. 최근 3년간 배출 현황도 영어 329명, 일본어 447명, 중국어 151명이다. 중국인 관광객은 계속 증가하는데 정작 가이드 자격증을 따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이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가이드 수를 살펴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자격증을 가지고 활동하는 가이드들의 모임인 ‘한국관광통역안내사협회’ 회원 중에서 일본어는 2100여 명에 이르지만 중국어는 200분의 1인 10여 명에 불과하다. 사실상 현장에서는 자격증이 필요 없다는 의미다. 중국어 가이드 이성춘 씨(가명)는 “자격증이 없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 자격증을 딴 사람은 언어능력이 부족해 오히려 관광객들과 의사소통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문화부 관계자는 “중국어의 경우 무자격 가이드가 너무 많아 정확한 인원조차 파악하기 힘들다”며 “60∼70%가 무자격자라고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자격자는 대부분 중국어와 한국어를 잘하는 조선족과 화교다. 이들은 말은 잘하지만 한글 이해력 등이 떨어져 필기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격증 취득을 아예 포기한다.

하지만 여행사들이 이들을 고용한다. 무자격자를 채용해도 지금까지는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행사들은 의사소통이 잘되면서 적은 비용으로 채용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 고정 급여도 없는 열악한 조건

자격증이 없는 조선족과 화교가 가이드를 맡다 보니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기본적인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조사에 따르면 일부 중국어 가이드는 “고려청자는 중국의 것을 베낀 것” “조선은 오랫동안 중국의 속국”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국을 찾은 관광객 앞에서 “한국보다 오히려 중국이 더 볼 것이 많다”고 이야기한 사례도 있었다.

영어나 일본어 가이드의 경우 일당으로 수십만 원을 받지만 중국어 가이드들은 교통비와 식비 등 실비만 지급받는다. 여행사들이 저가관광 상품으로 출혈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이드에게 급여를 줄 여유가 없는 것. 가이드들은 어쩔 수 없이 사전에 커미션을 받기로 약속한 상점으로 관광객들을 안내해 쇼핑을 유도하는 ‘지정 쇼핑’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돈이 안 드는 ‘공짜 콘텐츠’에만 몰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청와대 앞의 무료 전시관 ‘청와대 사랑채’에는 매일 20여 대의 관광버스가 늘어서 있다. 거의 모두 중국인 관광객을 싣고 온 차량이다.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하는 여행사들이 대부분 포함된 ‘중화 및 동남아권 인바운드 여행협회’의 안현모 사무국장은 “현재는 ‘저가 관광+출혈 경쟁→질 낮은 무자격 가이드 양산→관광 만족도 저하’의 악순환 구조”라며 “‘한국 관광은 일본 관광보다 저렴해야 한다’는 중국인들의 인식을 깨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자격조건 엄격한 선진국


우리나라 가이드의 이 같은 현실은 지속적으로 가이드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온 관광 선진국과 크게 대비된다. 홍콩의 경우 자격증 소지자만 가이드 활동을 할 수 있는 ‘의무고용제’를 한 번도 폐지한 적이 없다. 홍콩관광산업협회에서 주관하는 189시간의 예비 교육과정을 거친 사람에게만 가이드 시험을 볼 자격을 주며, 시험에 합격해도 매년 20∼56시간에 해당하는 경력 가이드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또 교육과정 이수 내용과 가이드 활동사항 등을 평가받아 3년마다 자격증을 갱신해야 한다. 프랑스도 프랑스 전역을 안내할 수 있는 ‘전국 가이드’와 일정 지역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지역 가이드’로 자격증 등급을 구분해 가이드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제도가 비슷한 일본 역시 자격증을 가진 가이드만 활동하도록 하고 있으며, 경력 가이드를 위한 연수 제도와 자격증 갱신 제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 가이드 자격증 의무화 석 달 앞인데… ▼

주무부처 ‘오락가락’ 업계는 ‘나몰라라’
문화부, 시험 수준도 못 정해
업계선 “뭐하러 보나” 시큰둥


문화체육관광부는 9월부터 모든 여행사가 자격증을 가진 관광가이드만 채용하도록 관련법을 통해 강제할 계획이다. 그러나 치밀한 후속 대책 없이 막무가내로 접근해 오히려 ‘중국인 관광 대란’을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999년 이전까지는 관광진흥법에 중국인의 한국 여행을 위한 안내는 반드시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하도록 규정돼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시절 규제 철폐 차원에서 이 규정이 사라졌다. 그러다 10년 동안 무자격 중국어 가이드로 인한 문제가 커지자 문화부가 지난해 법을 다시 개정했던 것.

개정된 법은 지난해 9월 26일부터 적용됐지만 10년 동안 자격증을 딴 가이드가 거의 다 사라졌기 때문에 단속을 하면 여행사가 모두 붕괴될 지경이 돼 버렸다. 결국 문화부는 급한 대로 최소한의 요건을 갖춘 무자격 가이드 328명에게 1년 기한의 임시 자격증을 발급했다. 그 임시 자격증을 활용할 수 있는 기한이 불과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대책 없이 단속을 강행하면 가이드가 없어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수 없는 ‘중국인 관광 대란’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화부는 여전히 ‘오락가락’이다. 초단기 대책으로 9월에 치를 자격시험에서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수험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국사 시험의 난도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초등학교, 중학교 수준의 실력이면 풀 수 있는 문항”이라고 문화부 스스로 주장해 왔으면서 어떻게 수준을 더 낮출 수 있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국사나 관광법률 등의 과목을 중국어로 출제하는 방안은 한국을 제대로 이해하는 우수한 가이드를 확보하려는 시험 자체의 목적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행사와 가이드들은 개정된 법에 따라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노력하기는커녕 “문제가 너무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특히 문화부가 별도의 교육과정을 개설해 9월 치르는 시험에 대비하도록 배려했지만 현재 수강자는 100여 명에 불과하다. 임시 자격증을 가진 가이드가 328명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대다수 무자격 가이드가 자격증 취득에 안이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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