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반납하고 출장 나섰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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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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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안된 아이-7세 딸 남겨두고…

농식품부 7명 포함 공무원 8명 ‘태안 참변’
짙은 안개속 백사장 야간 운전
6m 높이 바위 못봐 충돌한 듯
농식품부 사상 초유 사고 침통
각 계 조문행렬 줄이어

농촌 현장 출장에 나섰던 농림수산식품부 직원 7명이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장태평 장관 등 농식품부 간부들이 27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합동분향소에서 분향하고 있다. 사진 제공 농림수산식품부
농촌 현장 출장에 나섰던 농림수산식품부 직원 7명이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장태평 장관 등 농식품부 간부들이 27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합동분향소에서 분향하고 있다. 사진 제공 농림수산식품부
“같이 놀러 가자고 했잖아… 어디 간 건데….”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최유진 양(7)은 고사리 손으로 어머니 한희경 전문관(38)의 영정을 붙잡고 울먹였다.

최 양은 “엄마가 따뜻해지면 놀러가자고 했잖아. 빨리 와, 오란 말야”라며 서럽게 울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훔쳤다. 한 전문관을 비롯해 전날 교통사고로 숨진 농림수산식품부 지역개발과 소속 공무원 7명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장례식장은 가족들의 오열 소리로 가득했다.

○ “월요일엔 격려 메일 보내던 과장님…”

황급히 빈소로 달려온 배선자 실무관(39)의 남편 이석봉 씨(36)는 “저 어린 것을 두고 어떻게…”라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배 실무관은 돌도 채 안 된 딸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부부가 함께 농식품부 소속 공무원이던 황은정 실무관(37) 역시 여섯 살, 두 살 난 아이들을 남긴 채 변을 당했다. 남편 이기풍 주무관(38)은 허탈한 표정으로 “믿을 수 없다”는 말만 되뇌었다.

1948년 농림부라는 부서가 창설된 이래 가장 큰 사고를 당한 농식품부는 충격에 휩싸였다.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한꺼번에 사고를 당한 것은 1993년 위도 페리호 사고 당시 경제기획원 직원 17명이 사망한 이후 처음이다. 농식품부의 한 국장은 “모두 가족 같은 사람들”이라며 “늘 만나던 동료들이 없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행시 39회로 주요 보직을 거친 김영준 과장(47)에 대해서는 “농민과 농촌을 위해 헌신하던 인재가 세상을 떴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김 과장은 지난해 8월 장관 비서관에서 물러나면서 수석과장 격인 농업정책과장 제의를 받았으나 ‘선배들보다 앞서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지역개발과장을 맡았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역개발과는 업무가 많아 과를 둘로 나눠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힘든 곳이지만 김 과장은 농촌개발과 문화사업에 대한 신념으로 지원했다”며 “매일 늦게까지 업무에 매달리면서도 월요일 아침마다 직원들에게 격려 e메일을 보낼 만큼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빈소에는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28일 윤진식 청와대 정책실장을 통해 위로의 뜻을 전했고 임태희 노동부 장관,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 등도 빈소를 찾았다.

○ 짙은 안개로 인한 사고 추정

사고는 26일 오후 9시경 충남 태안군 ‘별주부 마을’ 인근의 한 백사장에서 발생했다. 태안해경은 태안군청 문선호 도시계획계장(46)이 운전하던 승합차가 해안가에 튀어나온 5∼6m 높이의 ‘자라 바위’에 부딪혀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농식품부 소속 공무원들은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주민설명회를 위해 이곳을 찾았다. 농식품부는 “지역 주민의 참여가 필수적인 사업이라 현장 방문이 많다”며 “이번 방문도 전래 설화 ‘별주부전’의 발원지로 알려진 이 마을의 농촌문화사업 개발을 상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해경 관계자는 “짙은 안개로 앞이 잘 안 보이는 가운데 문 계장이 주변 지리를 잘 알고 있어 속도를 줄이지 않고 운전하다가 바위를 못 본 것 같다”며 “문 계장은 평소 술을 마시지 않고 이날 식사 자리에서도 술을 마시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직원들이 휴일도 반납하고 출장을 갔다가 변을 당한 만큼 모두 1계급 특진시키는 한편 순직 처리하는 것을 행정안전부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사망자 7명에 대한 합동영결식은 29일 오전 7시 삼성서울병원에서 농림수산식품부장(葬)으로 치러진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태안=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사망자=김영준 지역개발과장(47), 허훈 사무관(36), 임명근 사무관(41), 강동민 사무관(44), 한희경 전문관(38·여), 배선자 실무관(39·여), 황은정 실무관(37·여·이상 농림수산식품부), 문선호 태안군 도시계획계장(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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