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학원서 SAT문제지 유출 조직적 지원” 어느 스타강사의 고백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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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학부모에 수억 요구”…“큰 학원들 부유층 명단 확보해외 시험때 학원장도 동행”

문제 유출에 이어 학원 강사 납치 폭행사건까지 불거지며 흉흉해진 서울 강남구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학원가. 기자는 1일 오후 11시 강남구 도곡동의 한 카페에서 SAT 학원 강사를 만났다. 이 분야에서 3년 정도의 경력을 갖고 있는 김연우(가명) 씨는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복마전이나 다름없는 SAT 학원가의 실상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그는 학원 강사들 사이에서 문제지 유출은 오래된 관행이었으며 그 배후에는 SAT를 위한 해외출장에 학원장이 동행하는 등 학원의 조직적인 지원이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태국에서 문제를 빼내려다 불구속 입건된 김모 씨뿐만 아니라 독해, 작문 분야의 유명강사라면 다들 한 해에 몇 차례씩 태국 등 감독이 허술한 동남아 등지에서 시험을 치렀어요. 문제 확보에는 고전적인 수법이지만 ‘찢기’가 가장 확실하니까요. 아예 강사와 학원장이 함께 해외에 가기도 해요.”

그는 “학원 강사의 비행기 삯과 호텔비 등 시험을 치르기 위해 해외에 나가는 경비를 학원에서 다 대준다”며 “혼자 해외로 나가는 유명 강사에게는 경비 외에 문제지 유출의 위험부담까지 감안해 고액의 연봉을 지급한다”고 단호히 말했다.

김 씨는 이른바 ‘VIP 명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R어학원을 비롯해 큰 학원들에는 모두 VIP 명단이 있어요. 재벌급이나 돈 많은 강남 쪽 엄마들에 대한 정보를 갖고 VIP 그룹을 우선 추린 뒤 이들한테는 수억 원을 요구하는 대신 가고 싶은 대학을 보장하죠. 제대로 수업을 하고 이걸 지키면 좋은데 편법으로 시험지 넘겨줘서 보장하는 식이에요. VIP라는 것이 결국 다른 것이 아니라 시험지를 주는 거예요. 학부모들은 다 알죠.”

그는 실제로 자신과 가까운 한 학생도 미국 컬럼비아대에 갈 만한 성적이 아닌데 합격해 의아해하며 물었더니 ‘시험 전날 시차를 이용해 먼저 시험을 친 강사에게서 국제전화로 가장 어려운 여섯 문제를 전해 듣고 미국에서 시험을 치렀다’고 고백했다고 전했다.

“수업엔 관심없고 일확천금 노려 돈에 눈먼 자들의 이상한 동네”
돈만 주면 강의중 학원 옮겨… 관련 강사들 줄소송 걸리기도
“학원서 날 끌어가려 협박” 몸값 높이려 거짓말 다반사


“어떤 엄마는 이번 일 터지고 나서 자기는 VIP가 아니었다고(문제지를 먼저 못 받았다는 뜻) 기분 나빠하고, 어떤 준재벌가 사모님은 만점 받게 해주겠다는 한 학원장의 말에 오히려 겁이 나 학원을 관뒀는데 ‘우리 애한테 시험지라도 쥐여줬으면 어쩔 뻔했느냐’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라고요.”

“정말 어떨 때 보면 다들 돈에 눈이 멀어 이성을 잃은 것 같아요. 이상한 곳이에요. 이쪽이….” 이 강사는 중간 중간 괴로워하며 한숨을 내뱉으면서도 가슴속에 쌓인 얘기가 많은 듯 쉼 없이 쓴소리를 이어나갔다. 일부 강사들 얘기를 할 때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떤 강사들은 돈만 많이 준다고 하면 ‘지옥에라도 갈 사람들’이란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수업을 꾸준히 하려고 하기보다는 다들 일확천금을 꿈꿔요. 계약이 끝나기도 전에 돈 많이 준다고 하면 강의를 하다 말고 학원을 옮기고 또 옮기고…. 그러니 소송에 걸리는 일도 비일비재하죠. 이번에 납치당했다는 강사도 학원을 옮기는 문제로 법정 다툼을 벌였어요. 다른 곳에서 3년에 수십억 원의 금액을 제시받은 뒤 R어학원의 계약에서 벗어나려고 계약서 안 쓰고 피해 다니며 애를 썼다고 하더라고요.”

학원가에서는 자신의 이름값을 높이기 위한 강사들의 거짓말도 들끓는다고 털어놨다. “유명 학원에서 자기한테 매달린다는 소문이 퍼져야 인지도가 올라가니까 ‘걔네가 나한테 자기네 학원 오라고 압박하더라’는 식의 말을 본인이 스스로 퍼뜨리기도 하고…. 지금 여러 사람이 협박당했다는 소문은 나돌지만 과연 그중에 몇 명이나 사실일까요? 전 아니라고 봐요. 일부 강사는 애들에게까지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한순간에 퍼지는 것이지요. 애들 입장에서는 무협소설처럼 재밌으니까.”

인터뷰를 마칠 무렵 그는 이번 파문을 계기로 SAT 학원가가 자정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돈에 눈먼 강사들과 학원들의 행태가 전체 학원가를 어지럽게 해요. 이젠 서로 말 지어내며 공격할 때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자성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정말 이건 아니거든요.”

한편 SAT 학원강사 납치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지방경찰청은 재계약을 거부한 학원 소속 유명 강사 손모 씨(38)를 납치해 협박한 것으로 알려진 R어학원 대표 박모 씨(40)를 3일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은 손 씨가 문제지 유출의 원조라는 의혹에 대해 “조사과정에서 문제지를 빼낸 정황이 포착되면 그 부분도 함께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손 씨는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나는 문제지 유출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학원에서 주거나 학생들이 다른 학원에서 가져오는 문제를 받은 것밖에 없다”고 밝혔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 동아논평 = 나라 망신시킨 미 SAT 문제 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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