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오피니언 리더들은 한국의 ‘문화적 자산’이 선진국 수준을 웃도는 데 비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은 크게 뒤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수준도 선진국에 비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품격(品格)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성교육과 준법정신의 정착이 선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22일부터 27일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의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한국의 국격(國格)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선진국과 비교할 때 한국이 각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뒤떨어진 분야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국격의 비교 대상으로 삼은 ‘선진국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가운데 1인당 국민소득이 중간 수준인 캐나다,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싱가포르 6개국으로 규정했다. 동아일보는 설문 결과 드러난 제안을 바탕으로 ‘국격 제고’ 방안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6회에 걸쳐 연재한다.
선진국 수준을 4점이라고 할 때 각 분야 전문가들은 ‘예술인과 문화상품이 국가 위상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만 이를 웃도는 4.74점을 줬다. 이에 비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나 세종시 원안 수정 등 주요 이슈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수준을 묻는 질문에는 2.35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줬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이를 보완하려면 ‘토론과 논리교육을 강화하고’(33.7%) ‘초법적인 떼거리 문화에 엄정하게 대처해야’(21.6%) 한다고 제안했다.
‘의회와 정당정치의 효율성’에 대해 2.41점으로 낮게 평가한 것도 ‘정치가 갈등의 진원지’라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시각을 반영했다.
곽준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는 다양성과 상호존중에 입각한 갈등 조정 메커니즘이 필요하다”며 “정치인들의 노력, 시민의 자발적 견제, 제도화를 통한 정부의 책임성 강화 등이 국격 제고의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사회 지도층이 보여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도덕적 의무 실천)’ 수준에 대해서도 2.59점의 비교적 낮은 점수가 나왔다. 설문에 답한 전문가들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제도 마련’(23.2%) ‘인성교육 강화’(22.7%) ‘시민 의식 개혁운동 전개’(20.1%) 등을 통해 이런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국격이 떨어진다는 것은 ‘시민적 덕성(Civil Virtue·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시민들의 자질)’이 제대로 성숙해 있지 못하다는 것”이라며 “초단기간에 급속히 진전된 근대화와 이 과정에서 발생한 천민 자유주의, 감성적 애국주의 등이 그 원인”이라고 말했다.
법과 질서를 준수하는 수준에 대한 평가 역시 2.87점으로 선진국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사회 구성원이 볼 때 ‘법을 어긴 것에 대한 비용’이 ‘그 법을 어김으로써 발생하는 효용과 이익’을 훨씬 초과하지 않는 한 사람들이 법을 지킬 이유가 많지 않다”며 “법률의 ‘비준수 비용’이 ‘비준수 효익’을 초과하도록 만들려는 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정부가 외교적으로 활발한 국격 제고 활동을 벌이는 것처럼 국력이 성장한 만큼 국제사회에 대한 역할과 책임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저개발국에 대한 물적 인적 지원은 물론 한국의 개발과 성장 경험을 공유하는 활동도 필요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국격 제고를 위한 사회 구성원의 노력 못지않게 국가 브랜드를 선정하고 육성하는 정부의 노력도 중요한 과제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세계 15위권인 한국이 지난해 안홀트 국가 브랜드 지수에서는 조사 대상 50개국 가운데 31위에 그친 것도 ‘국가 이미지 형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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