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건 그 후]<1>강호순 연쇄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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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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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도 제 죽음 앞에선…정남규 자살후 강호순 동요

■ 강호순 사건

《2006년 12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강호순(40)이 경기 서남부 일대를 중심으로 8명의 부녀자를 납치해 연쇄 살해한 사건. 경기 군포에서 여대생을 납치해 살해한 혐의로 2009년 1월 27일 경찰에 검거된 강호순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여성 7명을 살해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져 전국을 경악하게 했다. 모두 10명의 부녀자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6일 경기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의 한 도로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경기남부지역은 범죄의 사각지대로 꼽혔지만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이 벌어진 뒤 2000대 안팎이었던 경기지역의 방범용 CCTV는 올해 말까지 종전의 2배인 4000대로 늘어난다. 안산=변영욱 기자
6일 경기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의 한 도로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경기남부지역은 범죄의 사각지대로 꼽혔지만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이 벌어진 뒤 2000대 안팎이었던 경기지역의 방범용 CCTV는 올해 말까지 종전의 2배인 4000대로 늘어난다. 안산=변영욱 기자
5일 오전 경기 안산시 상록구 팔곡동의 모 빌라 안으로 들어가니 아무도 살지 않는 산속 흉가처럼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코끝으로 느껴지는 청국장 냄새를 통해서 ‘여기에 사람이 산다’고 알 수 있을 뿐이었다. 4층으로 올라갔다. 402호. 연쇄살인범 강호순(39)의 집이다. 기자는 올 1월 사건 발생 이후 수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문을 두드렸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앞집의 벨을 누르자 문을 살짝 열고 얼굴만 내민 주민은 “강호순 사건 이후 아무도 안 산다”고 말하고는 문을 쾅 닫아버렸다. 강호순의 혈육인 두 아들은 사건이 나고 2주일 후 친척들이 데려가 다른 학교로 전학을 시켰다고 한다.

○ 강호순 충격에 시달리는 주민들

1년 전만 해도 강호순은 주민에게 서글서글한 이웃으로 통했지만 올 1월 부녀자 8명을 납치해 살인한 흉악범인 것으로 밝혀졌다. 동네 주민들은 사건 후 1년이 된 시점에서도 ‘강호순 트라우마(충격 후 스트레스성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강호순에 대해 물으면 기억도 하기 싫다는 듯 민감하게 반응했다. 강호순 집 근처의 한 슈퍼마켓 여주인은 기자에게 “물어보지 마라. 짜증난다. 나도 당할 뻔한 셈 아니냐”며 고개를 돌렸다. 인근 순댓국집 주인 김모 씨(37·여)는 “그 사건 이후 동네 사람들이 달라졌다. 다들 밤에 다니길 두려워해 가게 영업에 지장을 받을 정도”라고 밝혔다.

이날 오후 1시 반경 경기 군포시 대야미동 군포보건소 앞 버스정류장. 지난해 12월 19일 강호순이 자신의 에쿠스 차량으로 마지막 희생자인 여대생 안모 씨(당시 21세)를 납치한 곳이다. 30분간 버스가 몇 대 지나갔지만 타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아직… ‘살인의 추억’에 밤이 두렵다

납치 버스정류장 인적 없어
유족 보상금 제대로 못받아
사건후 CCTV설치 2배로


○ 강호순, 사형 집행될까 불안

1년… 아물지 않은 상처
지난해 12월 19일 강호순이 자신의 에쿠스 차량으로 마지막 희생자인 안모 씨(여·당시 21세)를 납치한 경기 군포시 대야미동 군포보건소 앞 버스정류장. 주민들에게는 여전히 강호순의 악몽이 남아 있는지 6일 오후에도 이곳에는 버스를 타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군포=변영욱 기자
1년… 아물지 않은 상처
지난해 12월 19일 강호순이 자신의 에쿠스 차량으로 마지막 희생자인 안모 씨(여·당시 21세)를 납치한 경기 군포시 대야미동 군포보건소 앞 버스정류장. 주민들에게는 여전히 강호순의 악몽이 남아 있는지 6일 오후에도 이곳에는 버스를 타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군포=변영욱 기자
강호순은 현재 경기 의왕시 포일동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2월 구속 기소된 후 2005년 10월 장모 집에 불을 질러 아내와 장모를 살해한 혐의가 추가돼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7월 항소심에서도 사형이 선고됐고 강호순이 상고를 포기해 그대로 형이 확정됐다.

구치소 측은 요즘 강호순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강호순이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돌발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13명을 죽인 연쇄살인범 사형수 정남규가 지난달 21일 교도소에서 목을 매 자살한 후 강호순은 심한 심적 동요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은 좋은 편이지만 자신에 대한 언론보도에 극도로 민감하다고 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나영이 사건’ 등으로 사형 논란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면서 정남규가 자살했다”며 “사형수들은 이런 보도를 보면 혹시 곧 사형이 집행되는 것 아니냐는 극심한 공포감을 보인다”고 말했다.


▲ 동아일보 변영욱 기자

○ 유가족들 보상금도 못 받아

강호순이 살해한 피해자 유가족들은 강호순의 이름 석자조차 생각하기 싫어했다. 여대생 희생자 안 씨의 언니는 “기억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드니 제발 질문하지 말아 달라. 부모님도 몸이 많이 아프다”며 괴로워했다. 유가족들은 아직 보상금도 못 받았다.

4월 수원지법 안산지원 민사1부는 유가족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3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강호순의 재산은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상가, 은행 예금, 안산시 팔곡동 빌라 임차보증금 등 7억5000만 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유족들이 최소 1억 원 이상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유족 측 대리인인 양진영 변호사는 “상가는 강호순이 대출을 받아서 산 것이라 이자를 못 갚자 은행에서 경매 중이며 예금 2억8000만 원은 존재하지 않아 금감원에 조회를 요청한 상태”라며 “안산 빌라와 수원 축사의 전세보증금은 집주인이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전세준 것을 이들이 다시 강호순에게 세준 것’이라며 돈을 주지 않아 소송 중”이라고 밝혔다.

한 피해자 가족은 “사고 1년이 지났는데 제대로 된 보상이 없어 답답하다”며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무언가 위로와 보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사건 이후 경기지역 치안 강화돼

경기남부지역은 대규모 택지개발로 인구가 급속히 늘고 있다. 그러나 치안수준은 이를 따르지 못해 곳곳이 범죄 사각지대로 방치됐다. 강호순의 범행 장소도 대부분 신도시 외곽이나 신구 도심의 중간지대였다.

그나마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이 지역의 치안여건은 크게 나아졌다. 올 4월에는 동두천시, 의왕시, 하남시에 경찰서가 생겨 1시군 1경찰서 시대가 열렸다. 또 사건 해결의 일등공신이었던 폐쇄회로(CC) TV도 크게 증가했다.

올해 초 2000대 안팎이었던 방범용 CCTV는 사건 이후 꾸준히 늘어 올해 말 4000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강호순의 범행무대였던 안산시와 군포시 등지의 주요 연결도로에서는 과속단속용 CCTV보다 방범용 CCTV가 더 많이 눈에 띄었다.

김광식 안산상록경찰서 형사과장은 “강호순의 범행현장은 물론이고 안산 전역에 치안시설이 크게 늘어났다”며 “이 때문에 강호순 사건 이후로는 현재까지 이렇다 할 강력사건이 없었다”고 말했다.
안산=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수원=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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