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우수한 내신 [2] 수학 과학실력+α [3] 뚜렷한 목표 ‘3대 포인트’

  • 입력 2009년 9월 1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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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목록 - 동아리 활동 등
자연스러운 기록에 후한 점수
수상 실적 등 스펙, 당락 좌우 못해
여학생, 면접 능력 우수해 강세

《동아일보는 2010학년도 KAIST 학교장 추천 전형에 지원한 전국 651개교에 연락해 합격 여부를 확인하고 합격생의 성적과 특징을 조사했다. 합격생의 특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교사들이 가장 많이 한 답변은 ‘스스로 공부한다’는 것이었다. 추천서를 쓸 때도 이 면을 부각하려 애썼다는 교사가 대부분이었다. 교사들로부터 “수학 과학은 독보적이다. 이미 대학 수준을 공부한다”는 평가를 받은 학생도 적지 않았다. “학교장 추천을 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딱 이 학생이다’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는 답변도 많았다.》

○ 수학 과학은 단골 1등

서울 K고는 KAIST 학교장 추천 전형에 자연계 내신 1등급 학생을 보냈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이 학교 교감은 “KAIST에서 원한 게 좋은 성적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KAIST에 합격한 학생들 성적은 최상위권에 속했지만 1등급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한 지방 고교 교감은 “내신 1등급 학생들은 서울대 기회 균형 선발을 노리기 때문에 KAIST 지원을 꺼린다”고 말했다. 이번 합격생 중에서도 서울대에 진학하겠다며 등록을 포기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그 대신 다른 과목에 비해 수학 과학이 뛰어난 학생들이 KAIST의 문을 두드렸다. 경기 성남시 송림고 탁진형 군은 전체 내신은 2.5등급이지만 세계수학올림피아드에서 상을 탈 정도로 탄탄한 수학 실력을 갖췄다. 탁 군 외에도 “다른 과목도 잘하는 편이지만 특히 수학 과학만은 1등”이라는 평을 듣는 학생이 많았다.

KAIST 특성에 맞게 어릴 때부터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꾸준히 공부한 흔적은 입학사정관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됐다. 경기 연천군 전곡고 이신혜 양은 중학교 때부터 독서록을 작성한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노트 한 권 반 분량인 독서록은 이 양이 수학 과학 서적을 탐독한 역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세 바퀴로 가는 과학자전거’와 같은 수학 과학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새로 알게 된 사실을 메모해놓고 다시 읽을 만한 페이지를 적어놓기도 했다. 이 양은 “200∼300권이 독서록에 담겨있는데 한 줄짜리 간단한 메모부터 자세한 설명까지 모두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을 옮겨뒀다”고 말했다.

과학동아리 활동도 같은 이유로 도움이 됐다. 경기 안양시 충훈고 김중규 군은 교내 과학동아리 ‘충훈CSI(과학수사대)’에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과학 실험, 각종 경진대회에 참여한 경험을 남길 수 있었다.

입시전문가들은 “KAIST는 성격이 특수하지만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로 학생 준비 상황을 점검할 것”이라며 “일부러 정리한다기보다 어릴 때부터 학생 활동을 꼼꼼히 정리해 두면 자연스러운 기록으로 남아 입시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 KAIST 진학 의지와 다양한 활동도 도움

서울 자운고 송찬경 군은 지난해에도 조기 졸업생 신분으로 KAIST에 진학하려다 실패한 뒤 다시 도전해 합격했다. 부산 대연고 송경우 군은 1학년 때부터 KAIST에 가고 싶어서 KAIST 하계 캠프에 매년 참가했다.

이번 전형에선 입학사정관들이 직접 지원자 학교로 찾아가 면접을 실시했기 때문에 일반 전형보다 더 학생의 준비 상황과 KAIST 진학 의지를 꼼꼼히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지방고 교감은 “입학사정관이 학교를 찾았을 때 ‘서울대 안 가고 꼭 올 것이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했다”고 전했다.

리더십이 주요 평가 요소로 쓰이면서 학생회 간부 경력도 도움이 됐다. 경기 평택시 송탄고 학생회장 출신 전형훈 군은 중학교 때도 학생회장이었다. 전 군은 지난해 미국에서 열린 세계로봇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할 정도로 실력파이기도 하다. 간부 경력이 없더라도 교내 연극제를 주도적으로 기획한 경험이 있는 이정호 군(경기 부천시 상동고)처럼 리더십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 밖에 매주 어머니와 꽃동네 양로원 같은 곳을 찾는 이윤석 군(충남 천안쌍용고)처럼 봉사 활동에 열심인 것도 이번 전형에 도움이 됐고, 신설 학교에 ‘스승의 날 상 드리기’ 문화를 만든 류혜인 양(충북 청원고)처럼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경험도 입학사정관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요소였다.

반면 수상 실적은 당락을 좌우할 만한 요소는 아니었다. 전국 대회 수상 경력 없이 교내 경시대회에서 상을 탄 게 제일 큰 상인 합격자도 여럿이었다. 한 고교 교사는 “KAIST에서 원하는 학생은 단지 스펙이 좋은 학생이 아니라 학교생활에 열심인 친구들이었다”며 “또 지금 실력보다 수학 과학 분야 영재성과 잠재력을 많이 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 이유 있는 여학생 강세

KAIST 재학생 중 여학생 비율은 23%에 불과하지만 이번 전형 합격생의 40%인 60명이 여학생이다. 윤달수 KAIST 입학관리팀장은 “여학생 지원자 비율이 30%로 예년에 비해 10% 늘어났기 때문에 그만큼 합격자 중 여학생 비율도 높아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전에 KAIST 합격자가 없었던 상당수 여고가 이번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합격자를 배출했다. 올해 처음으로 KAIST 합격자를 배출한 광주의 한 여고 교감은 “보통 여학생은 남학생에 비해 KAIST에 대한 관심도가 낮은 편이라 지원 희망자가 거의 없는데, 입학사정관제가 새로운 기회로 여겨지면서 지원자가 생겼다”고 말했다.

또 윤 팀장은 “방문면접, 심층면접 등에서 여학생들이 우수한 면접 능력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입학사정관의 질문에 답하거나 토론을 벌일 때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더 조리 있게 말하는 경향이 있어 면접 성적 상위권에 여학생이 많았다는 것이다. 윤 팀장은 “앞으로 입학사정관제를 계속 시행한다면 전체 학생 중 여학생 비율이 조금씩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꾸준한 봉사활동 - 사교육 안받은 창의적 인재에 높은 점수

■ 학교 추천 어떻게

학교장 추천 전형은 학교당 1명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교는 합격 가능성이 높은 학생을 추천하기 위한 자체 선발과정을 거쳤다.

처음으로 KAIST 합격생을 배출한 대전 호수돈여고는 학생들에게 지원 신청을 받은 뒤 수학 과학 교사와 진학 담당 교사의 협의를 거쳐 추천 대상자를 선정했다. 협의 과정에는 지원자의 1학년부터 3학년까지의 담임교사가 참여해 성적, 학습 습관, 발표 능력, 봉사활동 실적, 수상 실적 등을 검토했다. 최종 선발된 학생은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고 좋은 내신 성적을 거둔 점과 평소 탁아시설, 노인요양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던 점이 높게 평가됐다.

인천 삼산고는 각 반 담임교사가 추천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감과 수학 과학 교사들로 구성된 심의위원회에서 최종 선발했다. 심의위원회는 KAIST 입학요강에 따라 점수표를 만들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을 선발했다. 점수표는 △수학 과학 분야의 창의성과 영재성 △미래잠재능력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 △리더십 △대외 봉사활동 △영어수업 수학능력 등의 항목으로 구성됐다.

서울 동대부고는 자체 심층 구술 면접시험을 통해 학생을 선발했다. 각 반에서 추천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 과학 교사들이 출제한 다양한 문제를 풀게 하고 문제해결 능력을 평가했다.

각 학교는 추천서 작성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입학사정관제를 통과한 학생들의 추천서에는 수학 과학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재능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충남 예산여고 현유나 양은 원서 접수를 하면서 우연히 만난 친구들과 ‘우리는 친구들’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만들 만큼 적극적인 성격이 강점이었다. 현 양의 추천서에는 해비타트운동(집짓기 봉사활동) 경험도 들어 있다.

부산 남일고 박의윤 군은 과학 과목이 좋아 2학년 때 인문계에서 자연계로 진로를 바꿨다. 자연계 수학 과학에 적응을 못해 성적이 갑자기 떨어졌다. 박 군의 내신 성적은 2.5등급으로 높지는 않았지만 계열을 바꾸는 모험을 감수할 만큼 수학 과학에 관심이 많다는 점이 높게 평가됐다. 학교는 박 군이 계열 변경 이후 부단한 노력으로 꾸준히 성적이 올랐다는 점을 강조했다.

강원 강릉문성고 윤나연 양은 3년 전 과학고 입시에 실패했다. 윤 양 어머니는 “중학교 때 전교 1, 2등을 놓치지 않았지만 여러 형편 때문에 선행학습을 받기 어려워 경시대회 점수가 없었다. 아이한테 너무 미안했다”고 말했다. 윤 양은 학교에 마련된 ‘문성신기과학반’에서 과학도의 꿈을 키웠다. 학교는 KAIST가 표방한 ‘사교육 없이 창의적인 인재’에 윤 양이 가장 가깝다는 점을 추천서에 강조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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