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半자율형 사립고

  • 입력 2009년 6월 1일 02시 54분


내년 개교하는 자율형 사립고에 대해 학부모들의 관심이 높지만 사학들은 소극적이다. 서울에서 142개 사립고를 대상으로 자율형 사립고 전환 신청을 받은 결과 33개교가 참여했다. 예비조사에선 67개교가 전환할 뜻을 밝혔으나 정식 신청에서 반으로 줄어들었다. 이 중 적극적인 의사를 지닌 학교는 10개 정도라는 관측이다. 금천 도봉 성북 용산 중랑구에선 신청 학교가 없었다.

▷현재 운영 중인 자립형 사립고와 자율형 사립고는 다른 형태의 학교다. 자립형 사립고는 재단 측이 등록금 총액의 25%에 해당하는 금액을 학교운영비로 낸다. 학생 선발은 자율이다. 반면에 자율형 사립고는 재단 부담액이 광역시 지역은 5%, 도(道) 지역은 3% 이상인 대신에 학생 선발은 교육감 규제를 받는다. 현재로선 추첨 선발이 유력하다.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하면 고교당 한 해 평균 24억 원에 이르는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 학생선발권이 없는 반쪽짜리 자율 학교에 ‘국가 돈을 받지 않을, 손해 보는 자율만 있다’는 말이 나온다.

▷자립형 사립고인 상산고는 지난해 등록금으로 50억 원을 받았고 재단이 13억 원을 내서 63억 원으로 살림을 꾸렸다. 예산을 집행한 결과 교사 등의 인건비가 등록금 총액보다 많이 들었다. 재단이 낸 돈을 합쳐도 살림이 빠듯했다. 상산고와 같은 규모라고 가정할 경우 광역시의 자율형 사립고 재단은 2억5000만 원의 지원금을 내면 된다. 그러나 이 돈으론 운영이 어렵다는 계산이 나온다. 사학이 자율형 사립고 전환을 주저하는 이유다. 별 매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자율형 사립고 설립은 정부가 추진하는 고교다양화 정책의 핵심이다. 2012년까지 전국에 100개 학교를 만들어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을 확대하고 학교 간 경쟁을 유도해 공교육을 살리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라면 큰 틀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사학들도 좋은 학교를 만드는 데 좀 더 헌신적으로 나와야 한다. 기업의 지원과 참여도 필요하다. 일본의 가이요 중등교육학교는 도요타 등 3개 기업이 200억 엔(약 2600억 원)을 내놓아 2006년 설립했다. 최고의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 학교가 훌륭한 인재를 키우면 기업이 가장 먼저 혜택을 볼 수도 있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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