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목욕관리사’ 학원 중년가장-주부 수강생 늘어

  • 입력 2009년 4월 27일 02시 58분


“자존심? 묵은 때 밀듯 밀어 버렸죠”

“가족-아이들 위해서라면…”
강사 설명따라 실습 구슬땀
취업땐 月收 200만원 넘어

“갈비뼈가 끝나는 지점부터 허리 사이의 옆구리는 팔의 힘을 빼고 몸의 곡선을 따라 반달모양을 그린다는 느낌으로 때를 밀어 주는 게 중요합니다. 등을 밀 때처럼 힘을 주면 살갗이 까질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23일 서울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부근의 한 ‘목욕관리사’ 양성 학원. 목욕관리사 경력 10년째인 나득원 강사(53)가 옆구리의 때를 미는 방법에 대해 강의하고 있었다.

수강생들은 목욕탕 구조를 본떠 만든 실습실에서 강사의 설명에 따라 때를 밀고 동료 수강생의 실습을 위해 몸을 빌려주다 보면 웃통을 벗고 있어도 온몸이 이내 땀으로 흥건해진다. 하지만 수강생들의 눈은 기술을 하나라도 더 익히겠다는 열의로 진지하다 못해 경건하기까지 하다.

“지방 건설현장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감이 끊겨 그만두고 목욕관리사 학원에 등록한 지 4주 됐습니다. 목욕관리사는 공사장 일처럼 경기나 계절을 타지 않아서 나만 열심히 하면 안정적 수입을 올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모 씨(48)는 충북 청주에 있는 집에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두고 서울로 올라와 친척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학원을 다니고 있다. 그의 꿈은 하루 빨리 목욕탕에 취직해 경제적 기반을 닦은 뒤 가족을 서울로 불러 함께 사는 것이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목욕탕에서 때를 미는 방법 등을 가르치는 목욕관리사 양성 학원을 찾는 발길이 늘고 있다.

나 강사는 “평소 한 달에 10명 수준이던 목욕관리사 지망생이 지난해 말부터 조금씩 늘기 시작해 지금은 20명 정도 된다”며 “서울 시내에 목욕관리사 학원이 6, 7개 되는데 다른 학원도 수강생이 늘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목욕관리사 학원 관계자는 “외환위기 직후 1, 2년 동안 수강생이 폭발적으로 늘었던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며 “사회적 편견 때문에 목욕관리사가 되겠다고 결심하기가 쉽지 않은데 지망생이 늘고 있다는 것은 더는 물러설 데가 없는 절박한 상황으로 몰린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때를 밀어서 돈을 벌겠다고 학원을 찾는 수강생들의 연령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40, 50대 중년 남성이 많지만 비교적 짧은 기간에 기술을 익혀 취업전선에 나설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30, 40대 주부 수강생도 적지 않다. 학원에서 4주 과정으로 시원하게 때를 미는 법과 경락 마사지, 스포츠 마사지 등을 익혀 목욕탕이나 사우나 등에 취업하면 남성 목욕관리사가 벌어들이는 월수입은 200만 원 선이다. 단가가 비싼 마사지를 받는 손님이 많은 여성 목욕관리사는 300만 원을 넘는 경우도 있다.

벌이는 좋지만 사회적 편견 때문에 직업을 떳떳이 밝히지 못하는 아픔이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자녀들이 엄마 아빠의 직업 때문에 상처받을까 봐 ‘학원에 다닌다’거나 ‘회사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서는 수강생들도 있다.

남편이 실직한 지 3개월 만에 목욕관리사 양성 학원에 등록한 이모 씨(40·여)는 “다른 건 다 줄여도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의 학원비는 도저히 줄일 수가 없다”며 “내가 조금 고생해서 우리 가족과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자존심이 뭔 대수냐”고 말했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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