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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2월 1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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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였던 지난해 12월 24일 오전 8시. A은행 김모 지점장(54)은 양복 상의를 벗고 사무실 책상에 앉으며 PC를 켰다. ‘드르륵 드르륵….’ 전원을 넣은 PC의 하드디스크드라이브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며칠째 수십 번도 더 들락거렸던 사내 전산망 화면이 모니터에 떴다. 화면 구석에 있는 ‘특별 준정년 퇴직제’라는 작은 글씨를 클릭했다. 입행한 지 26년, 마우스 몇 번 클릭으로 인생의 절반을 보낸 직장을 마감할 수 있다니…. 한 달 넘게 고민해 왔기 때문일까. 인적사항을 입력하고 마지막 ‘확인’ 버튼을 클릭하는 순간 김 지점장은 담담할 수 있었다. 같은 달 30일 짐을 싼 그는 31일자로 퇴직했다. 》
喜 55~70년
콩나물 수업에도 “하면된다”
怒 71~80년
유신 독재… 10·26… 5·18…
哀 97년~2000년
풍요의 과실 삼킨 외환위기
‘落’ 2009년
714만명 ‘퇴장’시기 빨라져
김 전 지점장은 1955년생. 6·25전쟁이 끝난 뒤 출산이 급격히 늘어난 때 태어난 한국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맏형이다.
아버지는 넉넉지 않은 사정에도 3남 3녀 중 장남이자 전교 1, 2등을 다투던 그를 일찌감치 서울로 유학 보내려 했다. 서울 명문 중학교 입시에서 낙방해 고향인 전남에서 중학교를 다닌 그는 3년 후 서울 명문고에 합격해 하숙생활을 했다. 한 반에 60명 이상이 들어찬 ‘콩나물시루’ 교실에서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명문 사립대 정치외교학과에 ‘75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2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뒤 사회가 민주화 열기에 휩싸인 1980년 대학에 복학했다. 그가 졸업장을 받은 1983년 국내 경기는 오일쇼크의 충격에서 벗어나 회복세를 탔고 경제성장률은 10.8%까지 치솟았다. 덕분에 A은행 말고도 여러 기업에 동시에 합격해 우쭐하기도 했다.
입행 이듬해인 1984년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작은 연립주택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집값은 다락같이 뛰었고 5번 이사한 끝에 1995년 서울 여의도에 30평대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었다.
“그때는 조기 퇴직이라는 건 생각지도 못 했죠….” 은행원을 천직으로 여겼던 그에게 1997년 말 외환위기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당시 50대에 접어든 7, 8년 선배 중 상당수가 구조조정의 칼바람에 휩쓸려 은행을 떠났다.
지난해 3월 미국 5위 투자은행(IB)인 베어스턴스가 무너졌다는 뉴스에 “설마…”하면서도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작년 9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뒤 은행 사정이 급속히 나빠지고 11월 말부터 회사가 명예퇴직을 받는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제 올 게 왔구나’ 싶었다”고 털어놨다.
12월 23일 본사 인사팀에서 전화가 왔다. 34개월 치 월급을 한꺼번에 받고 명예퇴직을 하거나, 임금피크제를 선택해 정년인 60세까지 50%의 연봉만 받으며 은행에 남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는 명예퇴직을 택하고 고향에 내려가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원래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는 1955년생이 정년(만 57∼60세)을 맞는 2012년경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김 전 지점장의 사례에서 보듯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국 경제가 극심한 침체 속으로 빠져들면서 이들의 퇴장 시기도 앞당겨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연구위원은 “모두 714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14.7%를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현직에서 떠나면 한국 사회는 소비 위축과 노동력 부족이라는 이중고(二重苦)를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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