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도 잠시 쉬어 가는…증도, 그 섬에 가고싶다

  • 입력 2008년 11월 11일 02시 58분


‘슬로 시티’ 증도에서 자전거는 느리게 사는 삶을 상징하는 교통수단이다. 주민들이 갯일을 나가기 위해 섬의 명물인 짱뚱어 다리 위에서 자전거를 끌거나 타고 가고 있다. 증도=박영철 기자
‘슬로 시티’ 증도에서 자전거는 느리게 사는 삶을 상징하는 교통수단이다. 주민들이 갯일을 나가기 위해 섬의 명물인 짱뚱어 다리 위에서 자전거를 끌거나 타고 가고 있다. 증도=박영철 기자
아시아 최초 ‘슬로 시티’서 느끼는 느림의 미학

짱뚱어 잡고… 자전거 타고… “느리게 사니 좋더라”

“여유를 찾아” 관광객 늘고 생태학습장으로도 각광

6일 오전 전남 신안군 증도. 물이 빠져 갯벌이 훤히 드러난 해안도로를 작업복 차림의 주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뭐든 빠른 게 좋은 줄 알았제, 근디 느리게 살아본께 좋은 게 더 많더라고.”

섬의 명물인 ‘짱뚱어 다리’ 앞에서 만난 최영준(65) 씨가 자전거를 가리키며 ‘슬로(slow)’ 예찬론을 폈다.

최 씨의 부인 박진심(64) 씨도 “트럭 대신 자전거를 타고 다니니까 건강에도 좋고 더 젊어진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1004개나 되는 신안군 전체 섬 가운데 증도는 7번째로 큰 섬이다. 무안 해제반도의 끝자락인 신안군 지도읍에서 배로 15분 거리다. 초승달처럼 생긴 섬에는 2200여 명이 살고 있다.

증도에는 요즘 도시의 첨단 생활문화처럼 여겨지던 ‘슬로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12월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슬로 시티로 지정되면서 주민들의 삶이 여유로워지고 ‘느림의 미학’을 느끼려는 뭍사람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 초스피드 시대 ‘우린 느린 것이 좋다’

슬로 시티 지정 이후 주민들은 ‘느리고 쾌적한 삶’이 주는 행복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주민들은 6월 ‘담배 연기 없는 건강의 섬’ 선포식을 열었다. 금연 서명을 한 1000여 명 가운데 현재 200여 명이 담배를 끊었다. 금연 조례를 제정해 해수욕장, 유원지를 자율 금연거리로 지정하고 관광객을 위한 담배보관소도 설치하기로 했다.

이종수(60) 방축마을 이장은 “2012년에 주민 가운데 흡연자가 한 명도 없는 금연의 섬을 만들기로 했다”며 “주민 참여 열기가 높고 성공하면 군에서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슬로 마인드’를 갖게 된 것도 큰 변화다.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민속촌을 건립하자거나 무농약 농사를 짓고 천연 세제를 사용해 수질 오염을 줄이자는 제안도 나왔다.

자전거는 증도의 상징이 됐다. 섬 곳곳에는 자전거 400여 대가 비치돼 있다. 주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관광객도 무료로 빌려 탈 수 있다. 신안군은 앞으로 전체 920여 가구에 자전거를 1대씩 보급할 계획이다.

슬로 시티 인프라도 하나씩 들어서고 있다. 800kW급 태양광 발전소가 3월부터 가동돼 400여 가구가 그린 에너지를 이용하고 있다.

박길호(47) 신안군 관광진흥담당은 “내년에 전기자동차 10대를 운행하고 골프장에서 쓰는 2인용, 6인용 카트를 보급해 섬에서 화석연료 자동차를 점차 줄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 청정 갯벌이 최고 자산

증도의 가장 큰 매력은 육지와 바다의 생태계가 만들어낸 423만여 m²의 청정 갯벌이다.

경남 창원에서 열린 람사르총회에 참가했던 습지 전문가 등 30여 명은 5일 갯벌을 보기 위해 증도를 찾았다. 이들은 짱뚱어, 칠게, 농게가 널려 있는 갯벌을 보고 생태관광지로서 가능성을 확인했다.

국내외 팸투어도 크게 늘어 3일 중국 지방정부 관광 관련 공무원 10명이 천일염을 생산하는 태평염전과 갯벌생태전시관을 찾았고 2일에도 한중 해외연수생들이 다녀갔다. 8월에는 일본 여행사들이 슬로 시티 여행상품 개발을 위해 답사하기도 했다.

매년 여름 섬에서는 갯벌 축제가 개최되고 태평염전 체험 행사가 3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진다.

증도는 올해 상반기에만 관광객 5만7000여 명이 다녀갔다. 지난해 같은 기간(3만9000여 명)에 비해 30% 이상 늘어나 자연생태학습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주민이 늘고 있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신안군의 76개 유인도(有人島) 가운데 올해 인구가 증가한 섬은 지도와 증도가 유일하다. 지도는 조선소가 입주해 인구 유입 효과가 있었고 증도는 ‘느리게 사는 섬’의 매력에 이끌린 외지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인구가 늘었다.

남상율(56) 증도 면장은 “최근에도 수도권에서 50여 명이 한옥을 짓고 살겠다며 전입신고를 했다”며 “민박집에 동백기름으로 불을 밝히는 남포등을 보급하고 나루터에 풍물장터를 개설하는 등 추억과 낭만,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섬으로 가꾸겠다”고 말했다. 문의 증도면사무소 061-271-7619.

:슬로 시티:

‘유유자적한 도시, 풍요로운 마을’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치타슬로(cittaslow)’의 영어식 표현. 전통보존, 생태주의 등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커뮤니티로 11개국 97개 도시가 인증을 받았다. 아시아에서는 신안군 증도와 전남 담양군 창평면, 장흥군 유치면, 완도군 청산도 등 4곳이 슬로 시티로 지정됐다.

증도(신안)=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동아일보 편집국 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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