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으로 신세망친 치과의사

  • 입력 2008년 11월 7일 21시 04분


사채를 끌어다 주식투자를 했다가 큰 손실을 본 의사가 빚 독촉을 피하는 과정에서 살인사건에 연루돼 철창 신세를 지게 됐다.

월 소득 3000만 원이 넘는 치과의사였던 정모(39) 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올 7월까지 사채업자 원모(36) 씨에게서 5억5000만 원을 빌렸다. 우연히 알게 된 코스닥 상장사의 미공개 정보로 주식투자를 해 단기간에 큰 돈을 벌겠다는 욕심에서였다.

하지만 정 씨가 사채까지 빌려 10억 원을 투자한 주식은 연일 하한가를 기록했고, 계좌 잔고는 원금의 20분의 1 수준인 5000만 원까지 줄어들었다.

돈을 제 날짜에 갚지 못하자 빚 독촉이 시작됐다. 원 씨는 6월 정 씨를 찾아가 정 씨가 장인 명의로 산 시가 5억 원 상당의 롤스로이스 팬텀 승용차를 빼앗고, 8월에는 "빨리 돈을 갚지 않으면 재미 없다"고 협박해 병원과 아파트를 담보물로 받아냈다.

정 씨가 뜻하지 않게 살인 사건의 공범이 된 것은 빚 독촉을 피하는 과정에서였다.

정 씨는 7월 주식투자를 함께 했다가 손해를 본 최모 씨가 고용한 조직폭력배 조모 씨로부터 "손실금 1600만 원을 물어내라"는 협박을 받던 중 지인에게서 폭력조직 두목 박모(38·수배 중) 씨를 소개 받았다.

박 씨는 정 씨가 보는 앞에서 조 씨에게 전화를 걸어 1000만 원에 합의를 보도록 도와줬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두 달 뒤인 9월 9일 박 씨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사채업자 김모 씨를 흉기로 살해했고, 범행 직후 피 범벅인 채로 정 씨를 찾아갔다. 정 씨는 차를 빌려달라는 박 씨의 부탁을 뿌리치지 못했고 같은 달 22일 범인도피 혐의로 구속됐다.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조사부(부장 김주선)는 7일 원 씨를 대부업법 위반, 공갈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최 씨와 조 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원 씨의 집에서는 전국 90개 폭력조직 소속 320여 명의 연락처가 적힌 종이가 발견됐다. 검찰은 명단에 적힌 이들이 불법 채권추심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원 씨는 지난해 4월 채무자 김모(36) 씨를 부산 칠성파 간부 공모 씨의 장례식장에 데려가 조폭들과의 친분을 과시해 겁을 준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성철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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