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죽기 싫어요!”

  • 입력 2008년 9월 16일 03시 08분


국내유일 고층습원 인제 대암산 용늪 육지화 ‘신음’…

서식 희귀식물들 ‘비명’

국내 유일의 고층 습원(濕原), 람사르 협약 등록 국내 1호 습지, 4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자연사 기록물….

강원 인제군 서화면 대암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습지인 ‘용늪’을 가리키는 수식어들이다. ‘용이 승천하다 쉬었다 가는 곳’이라는 뜻으로 이름 붙여진 용늪은 해발 1280m에 위치해 있는 데다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돼 1994년부터 10년이 넘도록 일반인의 접근이 통제돼 왔다.

하지만 10일 이곳을 찾았을 때 용늪은 ‘늪’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2곳으로 나뉜 늪 중 특히 ‘작은 용늪’은 습지로서의 기능을 대부분 상실했다. 작은 용늪을 걸어 가로지르는 동안 신발엔 물 한 방울 묻어나지 않았고, 운동장 같은 맨땅이 그대로 드러나는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땅에 지나지 않았다.

용늪이 늪지가 아닌 맨땅으로 변해가는 ‘육화(陸化)’가 진행되는 가장 큰 원인은 늪과 맞닿아 있는 군부대 때문이다. 늪 주변에 작전도로가 나 있고, 훈련을 하거나 비가 올 때 토사가 늪으로 흘러들어 육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늪 바로 옆에 진지를 만들어놓고 늪을 가로질러 다닌 흔적도 뚜렷했다. 작은 용늪 한가운데엔 차량의 바퀴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늪을 도로처럼 이용한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큰 용늪’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지만 사면의 맨땅에서 유출된 토사가 가장자리부터 쌓여가는 등 곳곳에서 육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1970년대 큰 용늪의 한가운데에 군용 스케이트장을 건설했던 흔적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용늪은 식물체가 완전히 분해되지 않은 채 퇴적된 이탄(泥炭)이 1년에 0.1∼2mm씩 4500여 년 동안 쌓여 이뤄진 습지다. 가장 깊은 이탄층은 180cm 정도로 분석을 통해 4500년간 이뤄진 생물체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빗물 의존, 양분 부족, 산성 등 독특한 조건 때문에 자랄 수 있는 식물이 한정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육화가 진행되면서 작은 용늪에는 습지식물이 거의 사라지고 보통 땅에서 자라는 꼬리조팝나무, 가는오이풀 등 초목본류가 군락을 이뤘다. 큰 용늪의 가장자리에도 육상식물이 침투했다.

그렇지만 용늪은 여전히 생태적 가치가 높다.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인 기생꽃, 조름나물 등이 자라고 식충식물인 개통발이나 금강초롱, 비로용담, 왕삿갓사초 등 특이식물이 상당수 남아 있다.

복원을 위해 원주지방환경청은 도로를 친환경 소재로 포장해 토사 유입을 막고, 사면에는 식생을 되살리기로 했다. 또 늪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인간의 활동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용늪 위쪽의 군부대를 이전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양구군 생태환경산림과 주광영 박사는 “이탄 습지인 용늪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탄소 흡수 저장능력이 뛰어나고, 희귀한 식물의 서식지, 자연사적 기록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습지가 사라지면 생태계 순환의 한 고리가 끊어지는 것이고, 이는 생태계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어 복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라져가는 습지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조약인 ‘람사르 협약’에는 한국을 포함한 165개국이 가입해 있다. 다음 달 28일∼11월 4일 경남 창원시에서는 ‘제10차 람사르 당사국 총회’가 열린다.

인제=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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