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교과서뒤집어읽기]죽을 권리의 인정,존엄사(尊嚴死)

  • 입력 2008년 6월 9일 03시 01분


헌법소원까지 간 안락사논쟁, 법도 제도도 중요하지만…

‘웰다잉’ 사회-문화적 토양이 우선 아닐까

▒ 생각의 시작

최근 뇌사 상태에 빠져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는 할머니의 자녀들이 “정부가 ‘존엄사(尊嚴死)’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는 소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환자에게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로, 국내에선 첫 사례다. 이를 계기로 또다시 안락사(安樂死)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

안락사는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로 나뉜다. 적극적 안락사는 약물을 투여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환자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단축시키는 것을 말한다. 소극적 안락사는 사망이 임박한 환자에 대해 생명유지에 필요한 처치를 하지 않거나 생명 연장 장치를 제거하는 것으로 존엄사라고도 한다.

과연 인간에게는 자신의 죽음을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또한 이를 도와줄 수도 있는가?

▒ 뒤집어 보자

범죄가 성립하려면, 사람의 행위가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여야 한다. 살인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살인의 의사(意思)로 행위를 통하여 그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하여야 한다. A가 B의 부탁을 받고 C를 살해했을 경우에는 A는 촉탁살인죄가 되어 살인죄로 처벌받게 된다. 따라서 환자의 부탁을 받고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의사의 행위는 적극적 안락사(안락사)든 소극적 안락사(존엄사)든 살인죄가 되는 것이다. 생명은 인간의 존엄권에서 파생되는 최고의 가치로 어떤 경우에도 제한되거나 함부로 다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법과사회 교과서 요약]

오직 한 번 밖에 없는 살 권리는 천부적이고 절대적이다. 존엄사를 긍정하는 이론은 극한상황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필요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인간의 생명을 타인의 판단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를 허용했을 경우 부작용 또한 크다. 소생할 희망 없이 고통 받는 환자를 구하려고 시작한 일이 나중에는 ‘귀찮고 쓸모없는 인간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의 오진 가능성이나 장기매매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

▒ 한 번 더 뒤집어 보자

인간 존엄의 핵심은 자유로운 자기결정에 있다. 누구나 생의 종말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결정할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품위 있는 죽음은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때 가능하다. 말기 환자가 요구하는 무의미한 치료의 중단은 손해를 줄 수 있는 행위를 피해야 한다는 ‘악행금지의 원칙’에 따르는 것이며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한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 생명이 신성불가침하다는 원칙을 내세워 우리가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빼앗는다면 이것 또한 인간의 존엄권에 반하는 것이다. 헌법 제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이런 사례들을 생각해 보자.

―네덜란드: 환자가 온전한 정신 상태에서 스스로의 판단으로 일관되게 요구하고, 환자의 고통이 참기 어려우며, 합리적인 다른 치료대안이 없다는 조건이 충족될 때에 한하여 엄격히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미국: ‘사전의사결정’을 통해 환자 자신의 사전 의사표시가 있을 경우에 한해, 죽음의 순간에 의학적으로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기계적 호흡이나 심폐 소생술 등을 시행하지 않도록 하는 법률이 마련돼 있다.

법적·윤리적 논쟁을 넘어 사회와 개인이 죽음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이 형성되어야 한다.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철학적 접근이 없다면 존엄사의 논쟁은 의미가 없다.

존엄사를 인정하는 데는 당사자의 인간적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매우 신중하고 엄격한 제한과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 웰빙(well-being)만이 아니라 웰다잉(well-dying)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때가 된 것이다.

남경석 청솔아우름 통합논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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