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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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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계 학생 논리적 글쓰기
| 달리던 자동차가 브레이크의 고장으로 앞에 있는 물체와 충돌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때 달리던 자동차가 콘크리트 벽과 충돌하는 경우와 쌓여 있는 짚더미와 충돌하는 경우를 비교하면, 짚더미와 충돌하는 경우가 콘크리트 벽과 충돌하는 경우에 비해 자동차가 손상되는 정도가 적을 것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라. [가톨릭대 2008학년도 모의논술] |
[학생 답안]
달리던 자동차가 콘크리트 벽과 충돌하거나 짚더미에 충돌하거나 모두 ①운동량의 변화량이 같으므로 충격량도 같다. 하지만 ②충돌 시간은 콘크리트 벽에서 짧아지며 짚더미에서는 길어진다. ③충격량이란 충돌에서 받는 힘과 그 힘이 작용하는 시간의 곱이므로 ④콘크리트 벽과 충돌하는 경우, 충격력은 커지게 된다. 따라서 비록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큰 충격력을 받게 되는 ⑤콘크리트 벽과의 충돌에서 자동차는 더욱 큰 손상을 입게 된다.
[논증 분석]
학생의 주장은 논거 4개와 결론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운동량의 변화량은 충격량이다(논거①). 충돌 시간은 콘크리트 벽에서는 짧고 짚더미에서는 길다(논거②). 충격량은 충격력과 충돌 시간의 곱이다(논거③). 따라서 콘크리트 벽과 충돌할 때 충격력이 더욱 크다(논거④). 그러므로 콘크리트 벽과 충돌할 때 더 큰 손상을 더 입게 된다(결론).
논거들 간의 관계, 즉 논증구조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은 그림으로 나타난다.
논제가 비교적 쉽기는 해도 잘못된 개념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문제라서 주의가 필요하다. 개념이나 원리를 잘못 이해하고 있어도 글 자체는 논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개념을 심각할 정도로 잘못 사용하면 결론도 거짓이 되어 결국 출제자를 설득할 수 없는 답안이 되고 만다.
논거①의 의미는 충돌 방식이 다를지라도 충격량은 같다는 것인데,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운동량의 변화량은 충격량과 같다’는 전제와 ‘콘크리트 벽과 충돌하거나 짚더미와 충돌하거나 충돌 전후의 운동 상태가 같다’는 전제가 그것이다. 원리적으로 옳은 첫 번째 전제와는 달리 두 번째 전제는 일반적으로 거짓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자동차가 짚더미와 충돌했다고 하자. 충돌 직후 자동차의 속도는 다소 감소할지언정 정지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정지하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지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두 번째 전제가 일반적으로 합당하지 못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는 합당성의 문제이며, 추후에 논리성과 합당성 간의 관계에 관한 글을 올리도록 하겠다. 어쨌든 이 점을 고려하여 논거①은 ‘콘크리트 벽과 충돌한 자동차의 충격량이 짚더미의 경우보다 크다’로 바꿀 것을 권한다.
다음으로 손상의 크기가 충격력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겠다. 논거⑤는 ‘손상과 충격력은 비례한다’라는 숨겨진 전제를 바탕으로 논거④로부터 추론해낸 것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손상은 물체에 작용하는 충격력의 크기가 물체의 내구력을 상회할 때 일어난다. 따라서 내구력 이하의 충격력은 물체에 손상을 입히는 정도가 극히 미미할 것이다.
충격력을 물리량의 세기에 관한 질적 개념으로 본다면 손상이란 양적 개념이다. 즉 충격력만으로는 손상을 입은 정도를 직접적으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러한 관계는 사우나의 온도와 화상의 문제에서도 나타난다. 온도가 질적 개념이라면 화상은 체내로 열이 유입되는 속도, 즉 양적 개념이다. 따라서 얼마나 화상을 입는가의 문제는 온도만 가지고 결정할 수 없다. 이러한 인식을 기초로 논거⑤를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다. ‘충격력이 내구력을 상회하는 경우에는 충격량이 클수록 손상도 증가한다. 따라서 충격량과 충격력이 모두 큰 콘크리트 벽과의 충돌에서 자동차는 더 많은 손상을 입을 것이다.’
이제 정리해보자. 논거들 간의 관계를 밝히기 위한 논증구조는 논거의 반복 또는 불필요한 논거의 등장을 막아준다. 또한 빠진 논거가 무엇인지, 숨겨진 전제의 참과 거짓은 무엇인지 집중적으로 생각도록 해준다는 점에서도 유용하다.
특히 자연계 논술에서는 개념을 잘못 이해하여 애써 논리적으로 쓴 글이 나쁜 평가를 받기 쉽다. 논술고사를 대비할 때 개념이나 원리를 정확하고 정교하게 사용하려는 자세를 갖자.
회전목마 위의 나는 등속운동을 하지 않는다?!
■ 과학, 논술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