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8주년]“교육의 質 높일 능력 없는 대학 도태시키는 게 당연”

  • 입력 2008년 4월 3일 03시 01분


“일본의 교육이 되살아나려면 가정과 학교, 지역과 행정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하는 게이오대 안자이 유이치로 총장. 그가 그리는 미래의 대학은 한창 일하던 사회인들도 다시 찾아와 공부하고 새로운 인생을 열어나갈 수 있는 터전 같은 곳이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일본의 교육이 되살아나려면 가정과 학교, 지역과 행정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하는 게이오대 안자이 유이치로 총장. 그가 그리는 미래의 대학은 한창 일하던 사회인들도 다시 찾아와 공부하고 새로운 인생을 열어나갈 수 있는 터전 같은 곳이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안자이 유이치로 日 게이오大 총장 인터뷰

《“어른들도 계속 공부하지 않는 나라에 미래는 없습니다.” 일본의 명문 사학 게이오기주크(慶應義塾·게이오대)의 안자이 유이치로(安西祐一郞) 총장에게 일본 사회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교육개혁을 이끄는 양대 기구에서 중책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문부과학성 자문기구인 중앙교육심의회(중교심)에서 대학분과회장을 맡아온 그는 지난달 25일 출범한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의 교육개혁 자문기구인 ‘교육재생간담회’에서도 좌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이에 앞서 2월 초에는 중교심 대학분과위원 4명 명의로 ‘대학교육의 전환과 혁신’이라는 제목의 제언을 내놓아 비상한 관심을 끌기도 했다. 2025년까지 대학교육이 이뤄야 할 각종 목표를 담은 이 제언은 ‘비현실적’이라는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인구 감소 시대에 안자이 총장이 바라보는 대학의 미래는 무엇일까. 지난달 26일 도쿄 신주쿠(新宿)에 있는 게이오대 시나노(信濃) 정캠퍼스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최근 일본에서는 ‘교육재생(敎育再生)’이란 단어가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교육재생회의’를, 후쿠다 정권은 ‘교육재생간담회’를 만들었는데 여기서 ‘교육 재생’이란 무엇을 뜻합니까.

“‘평생 공부하는’ 자세를 회복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란 단순한 암기나 독서가 아니라 통찰력이나 판단력, 윤리적인 태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학생뿐 아니라 어른들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과거에 일본은 가난해도 국민이 근면하고 공부하는 나라였지만, 지금은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어른들이 늘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공부하라, 나쁜 짓하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어른은 나쁜 짓을 한다면 아이들은 따르지 않죠. 가정 학교 지역 행정이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야 교육이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유토리교육 등으로 인한 학력저하에 대해 상당히 문제제기가 많았습니다만….

“중교심은 지난해 ‘유토리 교육 반성문’을 내놓고 교육현장의 지침서인 학습지도요령을 개정해 수업시간과 학습량을 늘리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수업시간만 늘린다고 학력저하가 해결될지는 의문입니다. 대학의 경우만 봐도 지금은 ‘대학전입(全入·입학 희망자수와 대학정원이 일치하는 것)’시대, 즉 고교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시대입니다. 고교졸업생의 10∼20%가 대학생이 되던 시대보다 지력(知力)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들의 지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틀이 필요합니다.”

―얼마 전 내놓은 ‘대학교육의 전환과 혁신’이라는 제언은 2025년을 목표로 대학진학률을 현재의 54%에서 62%로 늘리고 유학생 25만 명(현 10만 명), 사회인학생 75만 명(현 5만 명)을 받아들이며 이를 위해 고등교육에 대한 공적 재정지출을 현재의 2조6000억 엔에서 5조5000억 엔으로 늘리자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개인의 학비 부담은 줄이고 기부금 등 민간의 지원을 늘릴 필요성도 지적했습니다. 일종의 사회개조론으로도 보입니다만, ‘저출산 시대 대학의 생존책’이라는 눈 흘김도 상당한 듯한데요.

“저출산 문제보다는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는 2025년쯤에 그런 사회가 되어 있지 않으면 큰일이라는 위기의식이 컸습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출산율은 줄어드는 시대에 성인의 능력을 살리지 못하면 국가를 활성화시킬 수 없습니다. 30대, 40대라도 재교육을 통해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즉 그 정도로 유연한 사회가 아니라면 활력을 잃게 되지요. 글로벌 지식기반사회에서는 지력이 국력입니다. 날로 치열해지는 인재획득경쟁 속에서 선진국은 경쟁적으로 고등교육 투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이를 무시한다면 쇄국적 발상이 아니겠습니까. 5조5000억 엔이 요즘 일본의 재정사정에 비추어 쉽지 않은 숫자라는 점은 압니다만, 그 정도는 재정투자를 해야 현재의 미국 대학과 비슷한 수준이 됩니다.”

―졸속으로 세워진 대학이 난립하는 등 대학 스스로의 문제도 있는 것 아닐까요.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대학은 도태시켜야 마땅합니다. 우선 학생선발부터 제대로 해야 하고 입학 뒤에도 그 대학에서 어느 수준까지 도달해야 졸업할 수 있다는 식의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교육의 자율성을 존중하되 어느 정도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해야 하죠. 다만 ‘정원미달 학교는 무조건 문을 닫아야 한다’는 식은 곤란합니다. 도쿄 집중현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지역에 공헌하는 대학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국제경쟁력을 가진 대학을 전국에 50개 정도 육성하고, 지역 활성화에 공헌하는 거점 대학을 100개 정도 만들어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실현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문제는 돈입니다만, 일본의 경제력으로 불가능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회의론도 엄청납니다만….(웃음) 인재를 육성하려면 재정지원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이건 일본사회의 미래와 직결됩니다. 가령 지금 일본의 회사 중 세계적 경쟁력을 유지하는 곳은 일부 대기업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 수준의 기업들입니다. 사원 수준을 올리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일본 사회에 막대한 영향이 올 겁니다.”

―교육재생간담회 첫 회의(3월 25일)에선 어떤 내용을 논의했습니까.

“21세기 교육의 바람직한 모습을 논의했습니다. 후쿠다 총리는 ‘학생의 학력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며 먼저 대학 전입시대의 고교교육과 대학입시, 유학생 수용 확대와 영어교육 문제 등을 논의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여 일본 교육의 청사진을 짜 나갈 계획입니다.”

―올해는 ‘일본 근대화의 정신적 지주’라 불리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1858년 에도(江戶)에 게이오대의 전신인 ‘란가쿠주쿠(蘭學塾)’를 연 지 꼭 150년이 됩니다.

“150년 전과 오늘날은 ‘패러다임의 전환기’라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당시 유불선(儒佛仙)이 뒤엉킨 일본 전통문화가 구미식 민주주의와 부딪쳤다면 지금은 글로벌리즘까지 가세해 세 가지가 부딪치고 있습니다.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일본은 관(官)이 주도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관 주도의 국가로는 글로벌리즘의 조류 속에서 침몰하게 됩니다. 전환기를 이끌 힘은 민(民)에서 나옵니다. 저는 그런 인재를 사학이 배출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인재를 말합니까.

“후쿠자와 이래 강조해온 개념은 ‘독립해서 사는 힘(獨立)’과 ‘협력해서 사는 힘(協生)’ 양쪽을 가진 인재입니다. 오늘날에는 여기에 ‘세계에서 활약할 인재’가 추가됩니다. 2025년쯤이면 국경을 넘는 여러 가지 관계가 형성될 겁니다. 이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표현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춘 인재를 기르고 싶습니다.”

―경영의 글로벌화와 교육의 국제화는 바야흐로 세계 모든 대학의 과제인 듯합니다.

“게이오대는 미국 보스턴대, 영국 런던대를 비롯해 해외 220개 이상의 기관과 협정을 맺고 있습니다. 한국의 연세대 고려대 등 7개 대학과도 연대교류협정을 맺고 있습니다. 앞으로 국경을 건너뛰는 인재 교류는 더욱 활발해질 겁니다. 많이 받아들이고, 많이 내보낼 생각입니다.”

:안자이 유이치로 총장:

△1946년생

△1969년 게이오대 공학부 졸

△1974년 게이오대 공학연구과 박사

△1976∼78년 미국 카네기멜런대 연구원

△1981∼1982년 미국 카네기멜런대 객원조교수

△1985년 홋카이도대 행동과학과 조교수

△1988년 게이오대 전기공학과 교수

△1989년 캐나다 맥길대 객원교수

△1993∼2001년 게이오대 이공학부 학장

△2001년∼게이오대 총장

△현재 중앙교육심의회 대학분과회 회장, 교육재생간담회 좌장, 문부성 대학설치 학교법인심의회 위원, 환태평양대학 협회 부회장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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